시안(西安) 지역연구 3일차 (1)
시안에서의 셋째날 아침이 밝았다. 본래 계획은 화청지에 가는 것이었는데, 오전부터 내리는 비에 일정을 약간 바꿔 다음날 오전에 가기로 했던 박물관을 먼저 참관하기로 했다. 오전에 박물관 보고 나면 비가 그칠 줄 알았는데.... 뒷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흑흑
가보기로 한 박물관은 섬서역사박물관(陕西历史博物馆). 박물관에 가서 유물들을 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대상이 섬서성(陕西省)이라면 말이 좀 달라진다. 서주부터 당에 이르기까지 13개 왕조의 수도가 위치했던 곳, 기원전 11세기부터 기원후 907년까지의 긴 시간이 담겨있는 곳이 바로 중국 섬서성이기 때문이다.
'파면 나온다'는 말이 농담이 아닐 정도로 섬서성의 곳곳은 과거의 누군가가 남겨놓은 유물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유물들을 한 곳에 모아둔 박물관은 '고도의 진주, 화하의 보고(古都明珠,华夏宝库)'라고 불릴 만큼 그 엑기스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이 박물관, 하루 관람객을 4천 명만 받는다. 요즘은 어플로 예약하는 것으로 바뀐 듯하다. 뭐든 한정판은 왠지 갖고 싶지 않은가. 박물관이어도 해본다, 오픈런!
비가 꽤 많이 오는데도 이미 입구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기본 입장료는 무료인데, 일부 유료 관람 구역이 있어 거금 300 위안을 내고 표를 샀다. 기왕 보는 김에 다 보고 오겠다는 의지의 표현! 하지만 왠지 중국인들은 유료표를 안 사는 것 같기도 하다. 하하.
이 박물관은 민국 33년(1944년) 만들어진 섬서성역사박물관이 그 전신이고, 신중국 성립 이후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후 건설 작업 중 갑자기 유물이 나오는 일들이 생기면 복원 작업 후 이 박물관에 가져다 놓게 되었고, 그야말로 파면 나오는 섬서성인지라 중국에서도 귀한 유물이 많이 모여있기로 유명한 박물관이 되었다고. 기원전 원시인들이 썼다는 석기부터 당나라 이후의 유물들까지 백만 년 이상의 시간이 이곳에 꽉 들어차 있다.
관람한 지 3년이 넘게 지난 지금 사진을 보니, 유물들의 이름 같은 것들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게다가 귀하다는 그 유물님들의 사진도 별로 남기질 않은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몇 장 안 되는 유물 사진만 이곳에 공유하고자 한다. 스포일러란 건 적을수록 좋은 것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좀 해본다.
주나라 때 썼다는 술잔. 술잔에 정교하게 조각이 되어있어 유물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위 사진들은 모두 한나라 때의 유물들인데, 첫 번째 유물은 한고조 유방의 황후였던 여치(吕雉)의 옥쇄라고 전해진다. 그 옆에 있는 유물은 다 음료를 마시는 잔이다. 옛날엔 참 잔도 귀엽게도 만들었다. 왼쪽 하단에 있는 것은 금병(金饼)이라 하여, 한나라 때 사용된 금으로 된 화폐이고, 그 오른쪽에 있는 것은 아마도 한나라 때의 복식을 알 수 있는 도기 인형들이다.
수도로서 장안(长安)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때는 아무래도 중국이 가장 번성했다고 여겨지는 당나라 때가 아닐까? 이곳에는 당나라 때의 각종 유물들이 참 많다. 학창 시절 국사책에서 배웠던 당삼채, 당나라 때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각종 인형들과 무덤 벽화까지. 아쉽게도 남겨둔 사진은 저 두 장밖에 없지만 박물관에 보관된 시간의 흔적은 훨-씬, 정말 훨-씬 더 많으니 섬서성의 기나긴 역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방문해 보셔도 좋을 듯하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바깥엔 비가 더 많이 온다. 우리가 가져온 작은 삼단 우산으로는 도저히 커버가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박물관 앞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 근처로 이동하기로 한다. 도보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를 택시로 이동하려니 택시가 잘 잡힐 리 만무. 어플로는 도저히 잡히질 않아서 길 가는 택시를 겨우 잡고 일단 무작정 탑승했다.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니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찬다. 그 짧은 거리를 비 때문에 택시를 타다니, 너네 정말 운도 안 좋다고 약간 조롱하듯이 말한다. 외국인의 장점은 이럴 때 그냥 모른 척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고,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의 단점은 이런 말을 듣고 모른 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발이 필요하고, 택시에서 내릴 수는 없다.
숙소 앞에 도착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식당 이름은 서옥(西屋), Westhouse. 이야, 가장 중국적인 도시 시안에서 가장 서양적인 요리 버거, 치킨, 감자튀김을 먹다니. 기분이 묘하다. 맛은... 뭐 그냥 무난했다. 중국에서 먹는 서양 음식 맛. 그래서 그런가? 글을 쓰는 지금 찾아보니 이미 폐업한 듯. 이것도 혹시 미중무역분쟁의 영향인가? 하하. 농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