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西安) 지역연구 3일차 (2)
숙소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잠시 개인 정비 시간을 갖고 화청지(华清池)로 향했다. 당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만들었다는 목욕탕, 화청지. 사실 대학 다닐 때 학과 답사로 서안에 왔을 때 한 번 가본 적이 있어 화청지 자체에 대한 궁금함은 없었다. 아직도 당시에 봤던 양귀비 조각상이 기억에 생생했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단 하나, 장한가(长恨歌) 공연 관람. 그래서 화청지에도 거의 다섯 시 즈음 도착했다. 다만 공연은 저녁 8시 10분에나 시작할 예정이었고, 화청지는 성수기에 저녁 6시 30분까지 오픈, 공연을 보려면 7시 30분부터 다시 입장해야 했기에 약 한 시간 반 정도가 뜨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단 들어가서 화청지를 둘러보면서 시간을 좀 떼우기로 했다.
이날 날이 너무 안 좋아서 사실 화청지의 풍경을 봐도 큰 감흥이 없었다. 어디를 보나 안개가 드리워져있었고 부슬부슬 비마저 내렸다. 그래도 들어왔으니 양귀비가 목욕했다는 탕은 구경해야지. 들어가 보면 아래 사진처럼 양귀비 조각상이 있고 양귀비가 목욕을 했다는(?) 장소도 마련되어 있다.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화청지 입장표에 장한가 그림은 그렇다 치고, 저 군복 입은 아저씨들은 뭔가,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다. 사실 화청지에는 '서안사변(西安事变)'이 일어났던 오간청이 있다. 여기는 국공내전이 진행될 때 장제스(蒋介石)가 묵었던 장소다. 이전에 선양(沈阳) 지역연구 때 적었던 장씨수부(张氏帅府)와 관련된 인물 장쉐량(张学良)은 국공내전과 관련 장제스와 생각이 달랐다. 국민당이 공산당보다 당장 일본을 먼저 내쫓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장쉐량은 1936년 12월 12일 이곳 오간청에 장제스를 연금한다. 이로 인해 2차 국공합작이 이뤄지고, 이는 결국 이후 공산당이 이기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지금도 오간청에 가보면 당시 공격했던 총탄의 자국이 있다. 국민당에게는 뼈아픈, 공산당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장소다. 당시 사진을 찍어놨는데 기술적인 이슈로 사진이 사라져서, 이와 관련해서는 글로 갈음한다.
돌아다니다 보니 '맹세대(盟誓台)'라는 곳이 있고 그 앞에 마치 남산 앞 자물쇠처럼 나무패가 붉은 실에 매달려 잔뜩 걸려 있다. 설명을 읽어보니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의 맹세를 기념하는' 곳이란다. 아마 저 나무패들은 정말 남산 자물쇠마냥 연인들이 사랑의 맹세를 담아 걸어둔 징표이리라. 역사적인 의미는 없다. 오해 마시길...
아래 사진에 보이는 곳이 조금 있다 우리가 보게 될 장한가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인 듯하여 찍어봤다. 낮에는 조명도 없고 하여 해가 지고 어떤 식으로 공연이 진행될지 궁금해졌다.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분주해 보인다.
날이 좋지 않고 으스스해서 대충 구경하고 화청궁 밖으로 나왔다. 공연 관람을 위해 문이 다시 열릴 때까지 한 한 시간 넘게 남은 상황. 비는 계속 내리고,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안 좋았다. 공연을 하긴 할까, 취소되는 건 아닐까, 같이 간 사람들과 불안에 떨었다. 비가 오더라도 공연이 강행된다면 우산은 못쓸 것 같아 정문 앞 매점에서 우비를 샀다. 간단히 소시지 등으로 요기를 하고 공연을 기다렸다. 다행히 부슬비 수준이라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되는 듯했다. 338위안, 우리 돈으로 6만 원이 넘는 공연이다.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궁금했다.
공연을 관람하려는 사람이 워낙 많고 7시 30분이 되자마자 다들 입장을 서두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공연장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던 기억이 있다. 공연장 도착 후에도 자리를 찾고, 사람들 사이에 낑겨서 의자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주 힘들었다. (물론 이건 공연이 끝나고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인파란..) 심지어 비까지 내려 다들 우비를 입고 있는 통에 이동할 때 더 불편했던 것 같다. 겨우겨우 자리를 찾아 앉은 게 8시. 7시 30분에 재입장을 했으니 공연장 찾고 자리 찾고 앉는 데 30분이 소요된 것이다. 위 사진은 8시에 자리에 앉아 겨우 찍은 공연 전 무대 사진이다. 준비 중일 때 찍었던 사진에서 조명이 더해지니 아까 그 풍경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 해가 지지 않아 그의 진면목은 드러나질 않는다.
8시 10분, 일몰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은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에 근거해서, 당 현종과 양귀비가 만나게 되고, 당 현종이 며느리였던 양옥환을 황후로 들이고, 중국어로 정말 轰轰烈烈하게 사랑하다가 안록산의 난으로 양귀비를 떠나보낸 뒤에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 그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사실 주변이 소란스러워서 공연 내용을 따라가긴 어려웠지만 무대 장치나 소리 등으로 흐름을 파악할 순 있었다.
며느리를 황후로 들인 당 현종의 그것이 참사랑이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에겐 분명 사랑이었을 것이라 믿는 것이 나의 정신건강에 좋겠다. 이 문제는 차치하고, 공연을 보면서 주변 지형이나 조형물들을 무대장치에 활용한 것이 아주 적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중국 정원의 조경이란 게 별 거 있겠냐마는, 이 평범한 조경과 풍경을 예술로 바꿔버리는 연출이 마음에 들었다. 배경을 위해 무대를 따로 세우는 게 아니라, 기존 화청지에 있던 산, 나무들을 배경의 요소로 사용하였다는 점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실제 풍경을 활용한 공연(实景演出)의 훌륭함을 이때 특히 느꼈다.
비가 오는 날을 싫어하는지라 돌이켜보면 이날 참 날씨가 좋지 않아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래도 노란 우비를 입고 홀딱 젖어가면서 공연을 봤던 일은 뭔가 아련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아이돌 콘서트도 안 가는 내가 언제 또 이렇게 우비를 입고 공연을 볼까 싶고 말이다. 서안에서의 세 번째 날이 저물어간다.
[시안 3일차 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