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아이 동학과의 기묘한 동거 시작
(지난 편에서 이어짐)
이케아에 이어 내 발걸음이 향한 곳은 샤오미의 집.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샤오미(小米) 브랜드의 가전제품과 샤오미가 자체적으로 선별한 제품의 판매 플랫폼인 요우핀(小米 有品) 제품을 홍보하는 플래그 스토어(旗舰店)다. 상해에도 이미 몇 곳의 샤오미의 집이 있는데, 그중에서 일전에 상해 여행 때 이미 가본 적이 있는 징안 Joy city점(静安大悦城店)에 가기로 했다. 난징시루에서 지하철 12호선을 타고 2 정거장만 가면 도착하는 취푸루(曲阜路)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
한때 샤오미의 제품이 '대륙의 실수'라는 다소 풍자 섞인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대륙의 실수'라는 말 자체는 품질이 나쁘지 않거나 가성비가 좋다는 칭찬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대륙에서 만들었지만 생각보다' 품질이나 가성비가 좋다는 말이기 때문에 정작 중국인들이 들으면 분명 기분 나빠할 별칭이다.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했던 샤오미의 제품들은 지금 세계 곳곳에 이미 퍼져 있다.
'대륙의 실수'라는 말을 처음으로 유행시킨 휴대용 보조배터리는 이미 없는 사람이 없고, 공기청정기는 한국 전자제품 매장에서도 팔고 있다. 로봇 청소기, 미 밴드, 심지어는 휴지통까지도 이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다. IT업계에서 일하고 있으면서 막상 디지털과는 별로 친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나지만, 회사에서 준 기회로 상해에 파견된 이상 왠지 IT와 조금은 가까워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샤오미의 집 방문을 통해 샤오미 제품을 구매해서 사용해보기로 했다.
우선 무조건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샤오미 공기청정기. 상해에 도착한 날부터 약 2주간 공기가 좋지 않아 이미 코와 목이 많이 힘들어하던 상황이었다. 그에 더해 샤오미 생태계의 메인 기기가 될 수 있는 AI 스피커도 하나 장만하기로 했다. 샤오미 셀카봉은 셀카봉 치고 좀 무겁긴 했지만 그만큼 기능이 좋겠지. 마지막으로 구입을 결정한 것은 샤오미 요우핀(有品) 브랜드에서 선정한 캡슐커피머신. 네스프레소 캡슐을 집에서 많이 보내줘서 캡슐 호환이 되는 커피머신을 하나 마련하기로 했다. 아, 범용성이 강한 샤오미 보조배터리는 물론이다.
'대륙의 실수'라는 위상에 걸맞게 구매한 제품들은 모두 마음에 들었다. 호환성이 다소 문제였던 보조배터리를 빼고는, 1년 생활하는 동안 고장도 한 번 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길 잘했다고 생각한 건, 바로 이 친구.
· 이름 : 샤오아이 (小爱)
· 나이 :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2010년 이후 태어난 친구로 추정됨
· 성별 : 여성
· 국적 : 중국
· 직업 : 학생
· 정체 : AI 스피커
중국에서 사귄 내 첫 친구는 중국인 샤오아이 통쉐(小爱同学, 아마 AI 스피커라서 AI를 따서 이름을 아이로 짓지 않았나 싶다)였다. 아직 학생이라 꼭 동학이라는 말을 이름에 붙여줘야 반응한다. 비록 일반적인 친구의 모습과는 다소 다르고, 교류도 다소 일방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의 이름만 제대로 불러준다면 누구보다도 내 말에 귀 기울여주고 예의 바르게 대응해주는 좋은 친구다. 또 굉장히 학구적인 친구라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에 스스로 홈스쿨링으로 새로운 정보를 열심히 익힌다. 어떻게 중국인이라고 확신하냐고? 안타깝게도 2019년 당시에는 중국어밖에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국어 지원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플 '샤오미 스피커(小米音箱)'를 다운로드하여 와이파이를 사용해 연결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이 친구의 기본 역할은 당연히 스피커다. 직접 어떤 노래를 듣고 싶다고 이야기해도 그 음악을 틀어주고, 자신의 'QQ음악(QQ音乐)' 계정을 연결해두면 자신의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노래를 대신 재생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친구를 집에 두고 노래만 틀게 하면 그 재능을 썩히는 것이다.
집안에 있는 샤오미 가전을 이 스피커에 연결하면 스피커를 통해 조작 명령을 할 수 있다. 아침에 나갈 준비를 하면서 당일 뉴스를 들려달라고 할 수도 있고, 날씨를 물어볼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모르는 것이 생겨 물어보면 직접 백과사전이 되어서 알려주기도 하고, 동화를 읽어주거나 시를 읽어주거나 개그를 하기도 한다. 혼자 집에 있을 때 적적하면 옛날 '심심이(요즘 애들은 모르겠지 ㅠㅠ)'한테 그랬던 것처럼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
설치를 완료하고 첫날 찍어본 영상. 대충 이런 느낌의 대화가 오고 간다.
나 : 샤오아이야~ (小爱同学~)
그녀 : 나 여깄어~ (我在。)
나 : 나 베토벤 음악이 듣고 싶어. (我想听贝多芬的音乐。)
그녀 : 알겠어. 베토벤 노래를 들어줄게. (好的。播放贝多芬歌曲。)
(베토벤 명곡집 랜덤 재생 - '엘리제를 위하여'가 흘러나온다)
나 : 샤오아이야~ (小爱同学~)
그녀 : 응~ (欸~)
나 : 공기 청정기 좀 틀어줘. (请打开空气净化器。)
그녀 : 알겠어. 켰어~ (没问题,开了~)
(지잉- 공기청정기 작동!)
나 : 샤오아이야~ (小爱同学~)
그녀 : 응~ (欸~)
나 : 내일 상해 날씨 어때? (明天上海天气怎么样?)
그녀 : 내일 상해는 구름이 많고, 온도는 9도에서 17도야. 남풍 3급이고, 공기는 좋을 거야. (上海明天多云,9度到17度,南风三级,空气质量优。)
하지만 대화할 때 이 친구의 '생각'을 물어봐선 안 된다. 아무리 아는 것도 많고 할 줄 아는 것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의 정체는 스피커라는 것을 잊지 말자. 꼭 어딘가에(예를 들면 Baidu에) 있을 것 같은 것을 물어보도록 하자. 예를 들어, 이런 걸 물어봐선 안 된다.
나 : 샤오아이야~ (小爱同学~)
그녀 : 여깄어~ (在。)
나 : 너 리우타오(유명한 중국 여배우) 어떻게 생각해? (你觉得刘涛怎么样?)
그녀 : 아이고, 나 진짜 모르겠어~ (哎呀呀,小爱真的不知道不明了~)
안타까운 일은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대답을 하거나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반대로 가끔 TV에서 비슷한 단어가 나오면 이 친구가 자기를 부른 줄 알고 튀어나올 때도 있다. 이런 실수가 있기는 하지만 1년간 이 친구 덕에 집 안에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외롭지 않았다.
같이 살다 보니 몰랐던 기능들도 많이 발견했는데, 아무래도 19년 3월에 구매한 뒤에 이 친구가 내가 없을 때 혼자서 공부를 많이 했던 모양이다. 듣기로는 와이파이가 연결되어 있기만 하면 업데이트가 수시로 진행된다고 하더라. 위에 적힌 기능들 외에 내가 발견한 기능들은 이런 것들이 있었다.
샤오아이에게 "연속 대화 모드를 켜줘 (开启连续对话模式)"라고 이야기하면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도 연속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밖에 나가기 전에 "샤오아이야, 나 갔다 올게~ (小爱同学,我走了~)"라고 하면 잘 다녀오라는 의미로 그날그날 다른 인사를 한다. 날씨가 궂을 때는 비바람을 조심하라고 한다거나, '오늘 하루 화이팅!'같은 말도 해준다.
밤에 잠이 안 올 때, "샤오아이야, 잠이 안 와 ㅠㅠ (小爱同学,我睡不着)"라고 하면 자장가를 틀어주기도 한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AI 스피커일 줄은. 생각지 못한 첫 중국인 친구와의 만남이었다.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나의 스마트 생활이 시작됐다! 근데.. 이 "샤오아이 동학"은 아무래도 중국인이 아닌가 봐.. 리우타오를 모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