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볕이드는창가 Dec 20. 2020

상해 IKEA 방문기

뜻밖의 포토 스팟?!

호텔이 아닌 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었다. 가구들이 다 있는 집에 몸만 들어가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더라도 새로 사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작게는 밥그릇, 쟁반, 수저 같은 기본적인 식기, 휴지통부터 크게는 캡슐커피머신, 공기청정기, 제습기 같은 가전제품까지, 전에 살던 사람과는 다른 생활습관으로 인해 구매가 필요한 물건들이 꽤 있었다.


슬리퍼나 쓰레기봉투, 수저 같은 간단한 물건들은 지하철로 몇 정거장 떨어져 있지 않았던 중산공원(中山公园) 까르푸에서 구매했지만, 그렇게는 해결되지 않는 것도 있었다. 나름 전자상거래의 제국 중국에 왔다고, 처음에는 의욕에 가득 차서 타오바오(淘宝)와 징동(京东)에서 인덕션과 접시, 밥그릇 등을 구매했는데, 여기서 몇 가지 돌발 상황을 겪으면서 아무래도 생활용품은 보고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슨 돌발 상황이었는고 하니, 집 가스레인지가 좀 문제가 있어서 인덕션을 하나 구매했는데 공짜로 웬 웍이 증정품으로 왔다거나(하나, 나는 한국에서도 밥을 거의 해 먹지 못하는 요린이다. 둘, 그 웍이 손잡이 따로, 본체 따로였다. 드라이버도 없었는데ㅠㅠ), 밥/국그릇과 접시, 쟁반 세트를 하나 주문했는데 접시 한 개가 깨져서 왔다거나 하는 일이었다. 첫 번째 상황이야 판매 공고를 제대로 보지 않았던 스스로를 탓해야 했지만, 두 번째 상황은 완전히 판매자의 잘못이었다.


조립식 웍과 깨진 접시


뭔가 깨졌을 때 중국인들이 액땜이라고 '쑤이쑤이핑안(岁岁平安, 해를 뜻하는 岁와 부서진다는 뜻의 碎가 같은 음이라는 데서 유래한 말)'한다지만, 주문한 물건이 깨져서 오니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바로 고객 서비스 페이지(客服)에 들어가 증거사진 첨부 및 상황을 적고 VOC(投诉)를 남기니, 판매처에서 정말 미안하다며 접시는 바로 잘 포장해서 새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후 다른 물건을 사서 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리고 일단, 웍을 조립할 드라이버가 필요했다. 눈으로 물건을  보고   있을만한 믿음직한 가게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선정된  곳이 바로 이케아(IKEA) 샤오미의 (小米之家)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먼저 상해 IKEA에 갔다가 사람 구경 잔뜩 하고 돌아온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케아 (IKEA,宜家家居)]


중국 중소도시에서 커피를 마실 때 가장 안전한 곳은 스타벅스다. 적어도 원두의 품질이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 어느 지점에서 마시더라도 평타 이상은 하기 때문이다. IKEA를 가려고 생각한 이유도 사실 비슷했다. 품질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북유럽 브랜드가 아닌가! 일반 마트에서 구입한 물건보다야 그래도 낫겠지.


IKEA의 중국 이름은 이쟈(이가, 宜家)다. 중국식 이름을 지을 때 음과 뜻을 모두 차용하여 '집을 더 좋게 만든다'는 뜻의 한자로 번역해왔다. 2020년 12월 현재 기준, 상해에는 총 다섯 곳의 IKEA가 있다. 2020년 7월에나 오픈한 징안점(静安店)을 제외하면 내가 상해에 있던 19년에는 네 곳이 있었는데 그중 도심에서 접근성이 좋았던 곳은 쉬후이점(徐汇商场店) 한 곳이었다. 지하철 1호선 상해체육관(上海体育馆)역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중국에서 IKEA를 와보는 건 처음은 아니었다. 12년 북경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시절 가본 적이 있었다. 사실 그것이 내 첫 IKEA 체험이었는데, 굉장히 놀랐다. 가구가 멋지거나 가격이 엄청 싸서가 아니다. 사람 때문에 놀랐다.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소파, 침대에 모두 빽빽하게 전부 사람이 앉아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아기침대에도 아기가 누워 있었다!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생경한 풍경! 맘 편하게 가구를 구경해보려고 갔던 곳인데 침대에 누워 숙면을 취하고 있던 북경시민들에게 식겁해 돌아왔던 하루였다. 과연 상해도 그럴까?



그랬다. 누가 봐도 소파를 사려고 하는 사람들 같지는 않은데, 자리만 났다 싶으면 모두들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물론 12년의 북경보다야 낫긴 했다. 내가 적응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그들에게 면박을 주지 않는 건, 체면(미엔즈, 面子)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에 대한 IKEA의 영업전략일까?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주방용 칼이 있던 구역. 칼은 찬장 안에 잠겨있었고, 구매하려면 직원을 불러야 한단다. 나중에 다른 마트에 갔을 때도 같은 일이 있었는데, 주방용 칼 구매를 하려면 신분증 번호를 적어야 한다고 했다. 상해만 그런 정책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후에 듣기로는 칼을 사용한 사건사고가 생겼을 때 구매자를 쉽게 추적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효율적이긴 하겠지만 왠지 중국스러운 정책이었다.

 


사실 DIY, 조립 문화를 강조하는 IKEA의 문화는 중국인들과 좀 맞지 않는다. 소파, 침실용 서랍만 하나 사려고 해도 각종 선택지에 부딪히고, 심지어 선택지별로 가격도 다른 상황. 고르기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조립과 배송 서비스를 받으려면 또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이런 정책은, 세세한 것을 따지기보다는 통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일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다.


경제적인 것을 잘 따져보는 편인 상해 사람들은 좀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매장을 방문해보니 상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매장 내에는 구경하고 사진 찍는 사람들이 참 많았는데 막상 물건을 가지고 실제로 계산대까지 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상해 IKEA에서 사람이 몰리는 곳은 딱 두 군데였는데, 하나는 인테리어 예시가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구역이었고 또 한 곳은 식당이었다.



식판을 들고 들어가는 줄이 거의 갓 강남에 개업했을 때의 Shake Shack 버거를 연상시켰던 IKEA 카페테리아. 미트볼 15.5위안(한화 3천 원 정도), 스테이크 세트 29.5위안(한화 6천 원 정도) 등 싸진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비싸지도 않은 가격이 책정되어 있었는데, 한국에 돌아와 가봤던 기흥 IKEA와 비교하면 메뉴가 좀 적은 편인 듯하다. 식사시간이 아니었는데도 사람들이 무척 몰려 있었다. 손님들이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게 장바구니를 놓아두는 구역도 따로 있었다.


장바구니 구역. 계산 전 상품이니 없어지거나 잘못 집어가도 점주 입장에서는 사실 상관없다.


사람이 너무 많아 뭘 먹어보는 건 포기하고, 휴지통과 그릇, 그리고 웍을 조립할 때 쓸 드라이버 등을 고른 뒤 계산대로 향하는데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손님이 거의 없는 창고형 컨테이너 구역에 블록 블록마다 어린 여자 손님들이 모여서 뭔갈 하고 있었다.



뭘 하는 건가 유심히 보니 쇼핑카트에도 들어갔다가, 선반에 올라갔다가, 난리도 아니다. 서로 찍어주고, 사진 검수하고 아주 진지하다. 알고 보니 중국판 인스타그램 '샤오홍슈(小红书)'에서는 이미 'IKEA 사진 찍기 공략'이 돌고 있었다. 창고형 구역에서 어떤 소품으로 어떤 자세로 찍으면 SNS에 올릴만한 멋진 사진이 나오는지를 서로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젊은 세대 중국인들에게 IKEA는 가구를 사는 쇼핑 공간으로서의 의의보다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더 커진 것 같았다. 이렇게 해서 장사가 될까 싶었는데 또 상해에서의 성적표가 나쁘지는 않은가 보다. 올 7월에 그 비싸다는 정안사(静安寺) 근처에 떡하니 새 매장을 오픈했으니 말이다. 여하튼 품질이 보장된 쇼핑매장을 찾던 나와 같은 이방인에게는 감사한 일이다.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나는 그냥 인덕션을 하나 샀다고 생각했는데, 웍까지 포함된 것인 줄은 몰랐다.... 올 한 해 상해 집에서 요리를 해 먹어야 하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때 이른 상해 세기공원 꽃구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