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만으로 여운이 남는 영화
■ 원어 제목: 호우시절 (好雨时节, 하오위스지에)
■ 장르 : 드라마 / 멜로
■ 년도 : 2009
■ 감독 : 허진호
■ 주요 배우 : 정우성, 고원원(高圆圆), 김상호 등
오늘 소개드릴 영화는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로 유명한 허진호 감독의 2009년 작품 <호우시절>입니다. 사실 한국 감독이 찍은 이 영화를 '중국 영상물'로 분류하기가 다소 애매합니다. 하지만 사실상 첫 번째 한중 합작영화인 셈이고, 100% 중국에서 촬영한 영화로 한국에 청두(成都, 성도)라는 도시를 알리는 데도 공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 이곳에 리뷰를 적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감독도 결코 무명 감독이 아니고, 정우성과 고원원(高圆圆)이라는, 한중 유명 배우가 나오는 영화라 이전에도 제목은 알고 있었죠. 하지만 두 배우의 팬이 아닌지라 딱히 영화를 볼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게 되는데, 호우시절이라는 제목 속 '호우'가 호우경보, 호우주의보 할 때의 그 '호우(豪雨)'를 일컫는 말인 줄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해 잘 알기 전, 저는 이 영화가 장마철에 마주치게 된 사랑을 다루는 영화인 줄만 알았죠.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된 계기는 2019년 8월 중하순 사천성 성도인 청두(成都)로 떠나게 된 지역 연구였습니다. 마침 오전에 두보가 청두에 머물 때 살았다는 두보초당(杜甫草堂)을 가게 되었는데, 시적인 분위기도 있고 한적하고 참 좋더군요. 그때 홀연 이 두보초당과 청두를 배경으로 했다던 영화 <호우시절>이 떠오른 겁니다. 일과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는데 내일이면 청두를 떠난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영화를 본다면 지금이 가장 알맞은 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영화의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됩니다.
好雨知时节 (호우지시절)
当春乃发生 (당춘내발생)
'좋은 비는 그 시기를 알아, 봄이 되면 이내 내려오네'. 아아, 영화의 제목은 호우경보가 아니었습니다.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한 구절에서 따온 제목이었네요. 그 말처럼, 영화는 언젠가 타이밍을 놓쳐 스쳐 지나갔던 인연이 다시 한번 급시우(及时雨)처럼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녀 주인공이 우연히 다시 만나는 장소가 바로 두보초당이죠.
한국에서 이 영화의 평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중국에서의 평가는 사실 별로 좋지 않습니다. 혹평이 많은데, 대부분의 비판이 배우 고원원의 연기와 영어실력이네요. 저는 사실 그 부분에서 나쁜 평가는 줄 생각이 없습니다. 영화의 흠을 굳이 말해야 한다면 스토리의 빈약함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 보고 나서도 그래서 뭘 말하려고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허무함이 좀 느껴졌거든요. 100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 타임을 오로지 옛 인연을 다시 한번 만났다는 소재 하나에 기대어 끌어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스토리가 이렇게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인상이 크게 나쁘지 않은 이유는,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청두의 모습과 예쁜 색감, 영상미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스토리가 참 좋아서 여운이 남는 경우도 있지만, '야- 참 예쁘다'라는 생각으로 여운이 남는 경우도 있잖아요? 이 영화는 제게 후자에 속합니다. 청두에 가지 않은 상태로 이 영화를 봤다면 청두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만큼, 이 영화는 청두라는 한 도시를 아름다운 색감으로 풀어냈습니다. 정우성의 잘생김과 고원원의 깨끗한 얼굴도 한몫했죠.
한편으론 이 영화를 생각지 못한 장면으로 기억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한 회사 상사분께서는 이 영화를 보고 마지막에 기억나는 건 현지 주재원 역할을 하던 배우 김상호 씨 하나라고 하더군요. 주재원으로써 출장자를 챙기며, 현지에 가볼만한 곳 소개해주고, 출장자 저녁 굶을까 봐 저녁 챙겨주는 모습이 예전 주재원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입니다. 물론 출장자 본인이 그것을 원했는지는 차치하고요.ㅎㅎ 이런 부분에서는 생각보다 현실 반영을 잘 해낸 듯합니다.
청두라는 도시의 매력을 영상으로 충실하게 담아낸 영화 <호우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궁금해서 찾아보니 여주인공 고원원(高圆圆)은 사천성 출신이 아니네요. 사천성 출신 미녀 배우들 많은데, 거기까지 맞춰졌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위챗에 올렸던 감상문을 공유하며 이번 리뷰를 마칩니다.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譯] 방금 정우성과 고원원(高圆圆)이 나온 <호우시절>을 다 봤다. 이런 영화가 있다는 건 원래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나질 않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두보초당에 갔을 때, 문득 오늘이 청두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쳐 영화를 보기로 했다. 사실 영화가 뭘 말하고 싶은지를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 속에 여러 차례 청두의 풍경이 나오고, 디테일에도 청두만이 가진 분위기를 잘 반영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요 며칠 청두 여행을 돌아보기에는 충분한 영화였다. 호우지시절(好雨知时节)이라,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 그것이 진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