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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Feb 07. 2021

중산릉에선 사진을 남겨 보자

난징(南京) 지역연구 2일차 (2)

(지난 편에서 계속)


중산릉에선 사진을 남겨 보자


짧은 명효릉 탐방을 끝내고, 앞서 40분 먼저 갔다고 문 앞에서 거절당한 중산릉으로 향했다. 중산릉을 떠올리면 간담이 서늘해지는 에피소드가 있다. 지역연구 출발 전날, 일행들과 모여 훠궈를 먹으며 전야제를 하는데, 중산릉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가 '거기 예약이 필요하던데?'라고 한 마디 던졌다. 당장 내일 출발을 해야 하는데, 게다가 우리는 이동량이 가장 많은 주말에 갈 예정인데,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급하게 예약 방법을 찾아보니 위챗에서 중산풍경구(钟山风景区)를 검색하면 나오는 페이지에서 하루 전까지 예약을 하면 된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가 중산릉에 가는 것은 이틀 뒤의 일이라 예약은 가능한 상황이었다. (19년 4월 기준, 이 페이지를 통해서만 예약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따중뎬핑(大众点评)과 같은 플랫폼에서도 예약이 가능하다.)


하지만, 예약 페이지에 들어간 순간 우리는 크게 잘못 생각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예약을 시간대별로 하게 되어 있는 데다 시간대별 예약 가능 인원수가 한정되어 있었다. 우리가 가려는 시간대가 토요일 오후, 황금시간대라 이미 대부분의 시간대가 다 차 버렸고, 남은 시간대는 16:30-17:00 한 타임뿐이었다. 듣기로 계단도 많고, 무척 넓다던데 30분으로 뭘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절망에 빠졌다. 사실 이런 이유로 먼저 좀 들어가 보려고 했던 건데, 그마저도 거부당했다. 비록 계획 없이 가는 여행이 로망이라고는 하나, 그 어떤 계획도 없이 가게 될 경우 소중한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미 한 번 다녀가 꽤 낯익은 중산릉 구역으로 돌아온다. 각종 상점이 모여있는 휴게 구역을 지나면 오른쪽 사진과 같은 문이 나타난다. 혹시 타이베이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 분이라면 비슷한 모양의 문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장개석을 모신 타이베이 중정기념당에 가면 이런 문이 보인다. 푸른 기와로 덮인 문. 중산릉의 특징적인 색은 역시 푸른색이다. 대만 국민당의 상징색이기도 한 이 색은 중산릉이 세워질 당시에 중국이 아직 중화민국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쑨원이 사망한 곳은 난징이 아니다. 어렵사리 신해혁명을 진행해 군주제의 역사를 끊어놨는데 위안스카이의 방해를 받은 쑨원은 난징에 임시정부를 세우고 북경에서 위안스카이를 위시한 군벌들과 싸우는 중이었다. 그러다 병이 위독해져 사망을 하게 되는데, 생전에 묻히고 싶어 했던 곳이 난징이라 이곳으로 시신을 이송하여 매장하였다. 쑨원이 왜 난징에 묻히고 싶었는지는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자신이 세운 첫 공화제 국가의 수도로 삼은 곳이자 신해혁명의 정신을 기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중산릉에는 그런 쑨원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기제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중산릉 입구부터 그의 묘실이 있는 가장 꼭대기까지, 중산릉 곳곳에는 쑨원이 생전에 소중하게 생각했던 이념들로 채워져 있다. 중산릉 입구의 문 위에 쓰인 박애(博愛)라는 글자, 두 번째 문 위에 적힌 천하위공(天下爲公, 세상의 모든 일을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한다)이라는 글자, 꼭대기의 제당에 가면 보이는 천지정기(天地正氣), 그 밑에 쓰여있는 쑨원의 삼민주의 키워드 - 민족(民族), 민생(民生), 민권(民權)까지. 모두 쑨원이 생전에 쓴 글씨인 이 글자들은 그의 인생의 궤적을 담고 있다. 두 번째 문에서 제당으로 올라가기 전에는 비석이 있는데, 여기에는 '중국 국민당 총리 손 선생을 여기에 안장하다'라는 뜻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제당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392개의 계단이 있는데, 이는 당시의 중국 인구 3억 9천2백만 명을 상징한다고 한다. 죽어서까지 이 나라와 이 나라의 사람들을 마음에 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앞서 예약시간이 16:30-17:00이라 절망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괜한 걱정이었다. 알고 보니 이 시간은 입장이 가능한 시간의 범위이고, 17시 이후에는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지, 참관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쫄보인데 외국인이라 쫄보 지수가 더욱 급상승했던 우리는 막상 여유롭게 이곳을 참관하는 다른 중국인들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좀 더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계단이 너무 많아서 천천히 가지 않고서는 체력적으로 너무 딸렸다. 마지막 관문인 392개 계단 전에도 300여 개의 계단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갔을 때는 계단을 오르는 동안 여행객들이 혹시 좀 지루해할까 봐 작은 이벤트가 있었다. 그건 바로 사진 찍기 이벤트. 중간쯤에 작은 파라솔이 있고, 아저씨가 무료라면서 사진을 찍어준다고 부른다. 나름 예시 사진들이 있길래 보니까 풍경이 괜찮아서인지 사진도 괜찮게 나오는 것 같다. 게다가 무료. 잃는 것은 내 초상권이요, 얻는 것은 사진이니, 뭐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아서 일단 카메라 앞에 서본다. 무료라서 그런가 내 뒤에 줄을 선 대기자도 엄청 많아 사진사 아저씨도 속전속결로 촬영을 마무리한다. 찍은 사진은 꼭대기에 가서 녹색 파라솔을 찾으면 거기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작전으로 나를 끝까지 올라가게 하다니. 물론 내 초상권은 찾아야 하니까 올라가 본다.


중산릉 꼭대기에서 바라본 산 아래


앞만 보고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꼭대기에 도착했다. 뒤를 돌아보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중국어로 '부왕츠씽(不枉此行)'이라는 말이 있다. 와보길 정말 잘했다는 말이다. 나는 난징 중산릉에서 이 말을 정말 실감했다. 눈 앞에 방금 올라온 길 뿐 아니라 난징이라는 도시가 쫙 펼쳐지는데, 난징에 와서 중산릉을 안 가면 바보라는 말이 정말 와 닿았다. 이런 곳을 사전 예약해야 하는 걸 모르고 못 와봤다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한참 발아래를 바라본다. 땀도 식힐 겸.


땀도 좀 식혔으니 이제 내 초상권을 되찾으러 가봐야겠다. 아저씨가 말씀해주신 대로 꼭대기에 초록 파라솔을 찾아간다. 내 사진은 그새 인화되어 작은 열쇠고리에 담겨있다. 열쇠고리는 공짜다! 그런데 영 사진이 작다. 여기까지만 딱 공짜고, 큰 사진을 갖고 싶으면 돈을 내야 한단다. 그러면 그렇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사실 나는 여행에서 내 사진 남기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내게도 중산릉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큰 사진을 찾으려면 비용이 10위안~20위안 정도였던 것 같은데,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한 장 사고 싶어 졌다. 게다가 사진을 안 사면 그냥 버려질 텐데, 낯선 곳에 내 초상권이 버려지는 것도 싫고. 그래서 사진을 사겠다고 했더니, 오, 그냥 주는 게 아니라 무려 코팅도 해주고, 중산릉 소개가 적힌 간단한 팸플릿에 끼워서 준다. 생각보다 고퀄이라 좀 놀랐다. 아, 참고로 이런 사진을 찍어주는 파라솔이 계단 중간중간에 한 두세 곳 있었다. 본인이 원하는 높이에서 찍으면 더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꼭대기에는 이 사진 찾는 부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묘역에서 가장 중요한, 손중산 묘실이 여기에 위치해 있다. 다만 이 묘실은 당연하게도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돈을 주면 대략 요런 느낌. 사진은 코팅되어 있어서 팸플릿에서 뺄 수 있다.


한편 이런 생각이 든다. 중국 정부에게 있어 중산릉은 어떤 의미일까? 하나의 중국 이념을 그렇게 부르짖고 중화민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중국 정부에게, 중화민국의 국부나 다름없는 손중산의 묘역은 남기고 싶은 곳일까, 아니면 당장이라도 없애고 싶은 곳일까? 혹시 중국과 대만이 서로 손중산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양쪽에서 잡아당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괜히 궁금해진다.


지역연구로 난징을 다녀온 이후로 나는 누군가 난징을 간다고 팁을 좀 달라고 하면 으레 중산릉을 가장 먼저 추천하곤 했다. 사진도 웬만하면 남기라고 추천한다. 물론 명효릉에서 느낀 바와 같이 여기도 일면식 없는 외국인의 묘역에 불과하긴 하지만, 명효릉에서 보는 발아래 풍경과 중산릉의 발아래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이 풍경 하나만으로도 이곳에 올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날씨가 좀 도와줘야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흐린 날 가게 되면 좀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만약 해가 좀 길 때 가게 된다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16:30-17:00 타임으로 예약하고 가는 것도 좋겠다. 다른 시간대는 예약하려는 사람이 많아 빨리 차기도 하고, 막상 마지막 타임으로 예약을 해도 볼 수 있는 것은 다 볼 수 있다. 애매한 시간에 예약하게 되면 루트만 꼬이니, 차라리 마지막 코스로 잡고 관람이 끝난 후 바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것을 추천한다.



민국 풍경 난징1912에서 맥주 한 잔


중산릉에서 폐장시간 직전까지 그 탁 트인 풍경을 즐기고 난 뒤, 우리가 향한 곳은 난징1912 거리. 쑨원이 1912년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이 된 장소인 난징 총통부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이곳은 그 유래를 감안하여 민국 풍경으로 꾸며져 있고, 이름도 난징1912로 명명되었다. 난징1912 거리는 2004년에 처음으로 대중에게 개방되었는데, 당연하게도 이곳의 건물은 진짜 민국 시기의 건물은 아니고, 총통부에 어울리는 테마로 설계된 건물들이다. 비록 진짜 역사적인 건물들은 아니긴 하지만 최대한 당시의 느낌을 연출하려고 노력했고, 혹자는 상해에 신천지가 있다면 난징에는 1912 거리가 있다고도 한다. 개인적인 느낌은 라오먼동+1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그래도 라오먼동보다 물가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더 나은 것 같았다.



도착하여 가장 먼저 저녁식사 장소로 향했다. 둘째날 저녁 메뉴는 한식. 이미 몇 차례의 잇단 중국 음식에 다소 지친 일행들이 이미 골라둔 한국 음식점 '경선원(庆善园)'에 갔다. 사실 여행에서 절대 한국 음식은 먹지 않는 것이 개인적인 철칙인데, 일행들이 원한 것도 있었고, 이미 그날 점심으로 난징 요리를 얼추 먹었다는 생각이 들어 군소리 없이 따랐다. 이때야 첫 지역연구니까 한식을 그리워하는 오빠들의 마음이 깊게 와 닿지는 않았는데, 여행을 몇 번 다니고, 상해에서의 체류가 길어지고 나서는 점차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던 것 같다. 꼭 김치가 먹고 싶고, 고추장이 먹고 싶고 이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소울 푸드'라는 것이 있긴 한 것 같다. 물론 한국에서 먹는 그것만 하겠냐마는, 그래도 돼지고기를 구워 김치찌개와 함께 먹으니 평소보다 조금 더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보니 참 많이도 시켰다


밥을 먹고 나서 소화도 시킬 겸 1912 거리를 둘러보았다. 가장 높은 건물도 3층 높이를 넘지 않는 이곳은 라오먼동보다는 좀 더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중간에 작은 철도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위로 아이들이 탈법한 모노레일이 지나갔다. 아이가 오면 좋아할 것 같다고 하는 오빠들의 말이 어쩐지 좀 외롭게 들렸다.


1912 거리에 있는 스타벅스는 상해 신천지의 스타벅스가 그런 것처럼 주변 풍광에 어울리는 민국 풍경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시티 머그가 어떤 도안 일지 궁금해서 들어가 봤는데, 오늘 막 참관하고 돌아온 명효릉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별 것도 아닌데 반가웠다.



사실 우리가 이 거리에 오게 된 건, 저녁을 먹으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그건 바로 크래프트 비어! 난징의 유명한 크래프트 비어 브랜드 Master Gao (高大师)의 탭하우스가 이곳에 있다고 하여 가보기로 한 것이다. 사실 지역마다 이미 브랜드 맥주가 있는 중국에서 크래프트 비어 역사는 길지 않다. 그렇지만 그 역사의 시작에는 난징에서 만들어진 이 브랜드도 한몫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파는 맥주 중에는 쟈스민차 맛, 계수나무 꽃 맛 등 다소 중국적인 특징이 있는 맥주도 있지만, IPA나 Stout 같은 보편적인 맥주도 있다. 맥주 맛도 괜찮았지만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곳의 시스템이었는데, 처음에 종이로 된 칩 같은 것을 인당 하나씩 주고, 칩의 색깔에 맞는 맥주를 한 잔 더 마실 수 있게 해 줬다. 요즘도 이렇게 운영되는지는 모르겠지만 19년 난징의 인심은 꽤 후했다.



1912 거리의 저녁 분위기가 은은한 조명과 어우러져 편안한 느낌을 주어서인지, 맥주도 더 맛있게 느껴졌다. 알콜이 조금 들어가니, 난징에 온 지 이틀째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다음날이면 상해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첫 지역연구라 그런 것일까? 일행들도 비슷한 마음이 들었는지 괜히 이틀 동안 다녀온 곳들에 대해 감상을 말해본다. 왕의 무덤과 총통의 무덤, 대만과 중국, 그리고 일본. 그 어느 하나도 가볍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중국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이 사실은 더 깊이 다가온다.





[난징 2일차 일정]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난징에서의 둘째날. 오늘의 테마는 "역사 기행".

[사진 1] 난징대학살기념관.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번 와본 적은 있지만, 그 당시 내 중국어 실력은 형편없었으므로 그때 기억은 거의 나질 않는다. 중국어를 좀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곳을 참관하니 느끼는 바가 확실히 달랐다. 무고하게 희생된 생명들을 위해 기도하며, 우리 모두가 평화롭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사진 2] 난징따파이당! 난징의 특색 요리를 정말 많이 먹었다.

[사진 3] 명효릉! 황제의 위엄이 느껴진다.

[사진 4&5] 중산릉! 정말 와보길 잘했다. 명효릉+중산릉의 규모는 정말 크다. 하지만 이곳을 보고 느낀 점 또한 무척 많았다. 계단을 올라갈 때 기념사진을 찍을 수가 있는데, 나같이 사진 찍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도 중산릉의 풍경에 빠져서 군말 않고 바로 찍었다. 육조고도는 역시 다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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