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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Feb 28. 2021

북경에서의 짧은 추억팔이

북경 오리엔테이션과 제2의 모교 구경

오랜만이야, 북경!


19년 4월 22~23일. 학교 수업을 들어야 할 평일이었지만 이날은 중국 지역전문가들의 현지 오리엔테이션 일정이 생겼다. 거점도시가 중국인 모든 지역전문가가 북경에 모여 참석해야 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사전에 공문을 준비해주었고, 학교 선생님들께 공문을 제출하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는 일자는 23일 화요일이었지만, 화요일 아침 8시 30분에 시작될 예정이었으므로 거점도시가 북경이 아닌 나는 22일에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MU5155, 중국에 있던 1년간 정말 수도 없이 많이 타게 된 동방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22일 오후, 북경으로 출발했다.


수도공항에서 내려 북경 시내로 들어가는 길, 북경 톨게이트의 위엄


북경에 체류 가능한 시간은 1박 2일. 오리엔테이션이 둘째날 오전이라 끝나고 비행기 시간 전까지 약간의 자유시간이 있었다. 북경이 처음이었던 다른 지역전문가들은 이 자투리 시간에 어디를 가볼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내게 그곳들은 대부분 가본 곳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게는 이번이 벌써 3번째 북경 방문이었다. 2009년,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북경사범대학(北京师范大学)에서의 한 달, 2012년 북경인민대학(北京人民大学)에서 교환학생으로 체류했던 한 학기 동안 북경의 웬만한 유명한 곳들은 대부분 다녀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혹시 자투리 시간이 남으면 인민대를 가보기로 했다. 대학 졸업 후 현업에 있으면서 북경 땅을 밟을 일이 거의 없었기에 가보지 못했던 나의 제2의 모교.



북경에 왔으면 뭐? 카오야(烤鸭)~


가는 길도, 오는 길도, 비행기에 연착이 없던 아주 Lucky한 일정이었는데도, 시간이 꽤 빡빡해서 공항 도착 후 시내에 거의 도착하니 이미 다섯 시 반이 넘었다. 일단 숙소에 가서 체크인을 먼저 마치고, 북경 지역전문가 동료들과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향했다. 파견 전 교육 후 각자의 거점도시로 파견되었으니, 그래도 한 두어 달 만에 보는 셈이다. 메뉴는 당연히 북경 지역전문가들의 소개로, 베이징 카오야(北京烤鸭, 북경식 오리구이)로 하기로 했다. 괜찮은 집이었던 것 같은데 식당 이름을 못 찾겠다. 그릇이나 휴지 등에 그 단서가 있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 사진마다 단서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요리 사진만 올려본다.




오리엔테이션과 북경의 미세먼지


북경 지역전문가들과 짧은 회동 후, 둘째날은 이른 아침부터 오리엔테이션을 참석하러 교육장으로 향했다. 교육은 국제무역센터(国贸) 근처 해항실업빌딩(海航实业大厦)에서 진행했는데, 중국법인 사무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리엔테이션 내용이야, 예상대로 중국에 파견 나온 지역전문가들에게 회사에서 기대하는 바를 이야기하고, 몸도 마음도 건강한 지역전문가 생활을 하라는 조언이었지만, 중국으로 파견된 모든 지역전문가가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것과 그 덕분에 북경을 한 번 더 올 수 있다는 점만으로 나쁘지 않은 기회였다.


교육이 끝나고 난 뒤, 점심 먹을 곳으로 이동하다가 뒤편에 삼성빌딩(三星大厦)이 있다는 말을 듣고 뒤를 돌아보니 특이한 형태의 중신빌딩(中信大厦)이 보였다. 그리고 그 꼭대기층을 보려고 했을 때 눈에 들어오는 북경의 미세먼지! 3월 중순 막 상해로 파견 나갔을 때 북경 지역전문가들이 북경은 공기가 참 좋다고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정말 북경의 공기질은 종잡을 수가 없다.


중신 빌딩, 아마 그 뒤로 보이는 것이 삼성 빌딩일 것이다

얼화음과 펑츠(碰瓷)로 시작한 인민대학


교육을 함께 마친 다른 지역전문가들과 간단한 점심을 먹고 나니, 비행기 시간까지 그래도 조금 남아있었다. 다른 지역전문가들이 798 예술구 등 근처에 가볼만한 곳들을 가기로 결정한 것과 달리, 나는 마음먹은 대로 인민대학을 다시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비록 우리가 있던 곳에서 인민대학까지는 동쪽에서 북서쪽으로 이동하는 셈이라 택시로 가도 30분 정도 걸릴 거리였지만, 짧게 둘러보는 한이 있어도 꼭 가보고 싶었다.


2012년엔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인민대학 동문


동료들과 헤어져 디디추싱(滴滴出行) 앱으로 택시를 잡고, 인민대학 동문으로 출발했다. 문득 2012년 교환학생으로 캐리어 하나 들고 북경으로 왔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만 해도 지금의 디디추싱 같은 어플이 없어서, 택시를 타면 무조건 목적지를 말해야 했다. 공항에서인지, 아니면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들어와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캐리어 들고 대중교통 탈 엄두가 나질 않아서 잡은 택시에서 "인민대학 동문으로 가주세요(请到人民大学东门。)."라는 내 중국어를 그렇게나 알아듣지 못하던 택시기사 아저씨. 몇 번 같은 말을 반복하니 아저씨가 갑자기 "아~! 인대 동문(人大东门儿)~"하며 달리기 시작했던 기억. 성조도 맞고 발음도 틀린 곳이 없었는데, 그와 나의 다른 점은 딱 두 개였다. 얼화음(儿化音)과 줄임말. "런민따쉐 똥먼(人民大学东门)"이라고 말하면 안 됐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럴따 똥멀(人(儿)大东门儿)"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과연 북경. 얼화는 필수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북경에 와서도 순간 "아! 내가 북경에 왔구나!"하고 실감한 때가 있었다. 호텔에서 석식 장소까지 택시를 탔는데, 어플을 이용하지 않고 호텔 앞에 대기하던 택시를 잡아 탔기에 요금을 직접 지불해야 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기사님께서 "$@^%$콰이(块, '위안'의 구어식 표현)"라고 요금을 말씀하셨다. 뇌가 아직 상해에 머무른 상태였던 나는 순간 그 말을 못 알아듣고 그 소리를 되새기기 시작했다. 여기가 북경임을 감안할 때 그의 말에는 분명 얼화가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가 말한 숫자는 이 숫자다! 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아저씨에게 "28 위안, 맞죠? (二十八块, 对吧?)"라고 되물었고, 아저씨는 뭘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 손을 내민다. 28의 중국어 발음은 '얼스빠', 아저씨의 발음은 한 '얼르빠' 정도 됐겠다.


얼화의 추억에 잠시 빠져있는 동안 택시는 '럴따 똥멀'에 도착했다. 이 신성한 학교 교문 앞에서 나는 또 이상한 일을 당하게 된다. 도착했다고 내리라는 택시기사님 말을 듣고 내리려고 문을 여는데 기사님께서 갑자기 '엇! 조심하세요!'라고 외치셔서 나는 급하게 문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그때 어떤 자전거를 탄 할아버지가 택시 뒤에 넘어졌다. 이상한 건, 분명 내가 택시 문을 다시 잡았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여기 부딪혔을 리는 없는데 계속 넘어져서 일어나질 않고 있었던 점이다.


일단 사람이 넘어졌으니 기사 아저씨도 나도 택시에서 내려서 할아버지를 보러 갔는데, 할아버지가 택시기사님과 내게 뭔가 중국어로 계속 소리를 치셨다. 잘 들리진 않았지만 뭔가 싸우려고 하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다치시진 않았는지 스스로 일어나셨는데, 그러자 택시기사 아저씨가 할아버지께 '괜찮으시죠(您没事吧)?'라고 묻더니 나를 보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얼른 가란다. 내가 쭈뼛쭈뼛 거기 서있자 택시 아저씨가 손님이랑은 관계없으니 얼른 가라고 계속 말씀하셨다. 찝찝하긴 했지만 괜히 번거로운 일이 벌어질까 싶어 일단 자리를 피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것이 바로 펑츠(碰瓷)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도자기를 부딪히다'는 뜻의 펑츠(碰瓷)는 흔히 얼화음을 붙여 펑철(碰瓷儿)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자해공갈단 같은 느낌인데, 달리는 차에 뛰어들거나 슬쩍 부딪혀서 심하게 다친 것으로 위장해 돈을 뜯어내는 사기를 말한다. 파견 전 교육을 받을 때 외국어생활관에서 중국인 선생님들이 조심하라고 했던 것 중 하나였는데, 이렇게 눈앞에 갑자기 닥쳐올 줄이야! 그래도 택시기사 아저씨가 선량한 분이어서 그렇지, 까딱했으면 승객인 내게 모두 뒤집어씌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북경, 많이 독해졌다. 한편으론 펑츠에 북방 지역의 특색인 얼화음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인 것을 보면 주 발생지가 북방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짧은 교환학생 추억팔이


우여곡절 끝에 인민대 교정을 밟았다. 현재 상해교통대학 어언 연수생 신분인지라, 교통대에서 오리엔테이션 때 나눠준 책가방을 메고 왔는데, 어쩌다 보니 북경인민대학에서 상해교통대 책가방을 메고 돌아다닌 셈이 되었다. 2012년과는 다르게 요즘은 캠퍼스에 관광객이나 외부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입구에서 막는다는 말을 들어서 최대한 학생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구경했다. 그래서 이곳의 사진은 모두 휴대전화로 찍은 것들 뿐이다.



동문을 들어서면 바로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모택동이 쓴 인민대학의 교훈 실사구시(实事求是). 이 교훈이 새겨진 돌은 하북성에 있던 혁명지역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인민대학은 그 기원을 파고 들어가면 사실 굉장히 정통적인 공산당 당교다. 그 전신인 섬북공학(陕北公学)은 1930년대 혁명구였던 연안에서 만들어졌고, 그것이 신중국 성립 이후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된 것뿐이다. 지금의 인민대학 캠퍼스는 사실 북경대나 청화대에 비해서는 규모가 많이 작지만, 그건 인민대 소속 단과대들을 개별 대학으로 다 분리시켰기 때문이고, 분리된 학교들을 모으면 사실 어느 대학보다 규모가 큰 학교다.



들어오자마자 우선 내가 교환학생 때 살았던 유학생 기숙사부터 찾아갔다. 2012년엔 경비가 삼엄하지도 않았고, 경비원 청년들과 눈인사만 하면 들여보내 주는 느낌이었는데, 슬쩍 보니 지금은 카드를 찍고 들어가게 되어 있다.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왠지 좀 인간미가 없어진 느낌이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파란 줄무늬 가방을 가진 아저씨. 앗! 페트병 수집 할아버지다. 교환학생 때 내가 앞을 지나가면 "학생~학생~(妹妹,妹妹)"하며 비어있는 봉투를 보여주시던 분이었는데, 아직 기숙사 앞에 계신다. 벌써 7년이나 흘렀는데, 이 아저씨만큼은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구나.



밤마다 종종 운동하러 나왔던 운동장도 보인다. 일과 중이라 그런지 뛰고 있는 친구들은 없다. 12년에만 해도 저녁만 되면 동네 주민까지 다 몰려와 트랙을 돌곤 했었는데, 외부인을 통제하는 모양새를 보니 이젠 안 될지도 모르겠다.



세기관과 운동장을 오른편에 두고 왼쪽을 바라보면 내가 교환학생 때 가장 좋아했던 구역이 나온다. 바로 벽화 구역! 그래피티라고 하기에는 저항 정신이 좀 부족하니, 벽화라고 명명하는 것이 더 낫겠다. 시기에 맞게 그 주제를 바꿔가며 벽화가 바뀌는데, 2012년 당시에는 학내 각종 동아리들이 각자 홍보하는 벽화가 많았다. 동인지 모임까지 홍보하고 있던 터라, '이 학교 꽤 자유분방하네'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19년에 와서 보니 그런 자유분방한 홍보는 좀 줄어들었다. 대신 아마 2018년에 그려놓은 것 같은 개혁개방 및 학교 재개방(复校) 40주년을 동시에 축하하는 벽화가 대부분이었다.



그 벽화들 중에 꽤 성의 있다고 느껴졌던 벽화가 왼쪽에 보이는 경제발전 40주년을 그려둔 작품인데, 마치 바이두 지도의 모습처럼 1978년부터 2018년까지 경제특구 설정, 푸동신구 개발, 서부 대개발, WTO 가입 등 중국 경제의 궤적을 그려놨다. 물론 이렇게 체제 찬양적 벽화들 속에서 오른쪽과 같이 학내 음악회를 홍보하는 벽화도 숨 쉬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어쩐지 2012년이 훨씬 자유로웠던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학교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명덕루와 본과생 기숙사 구역, 문구류 벼룩시장이 자주 열렸던 도서관 앞. 문득 물시인비(物是人非)라는 중국어 표현이 떠오른다. 보이는 풍경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보는 사람은 달라졌다는 뜻으로 세상에 변치 않는 일은 없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육교를 건너 지엔빙을 사서 푸딩 밀크티를 먹으며 교정을 걸었던 2012년의 나는 상상이나 했을까? 언젠가 내가 이런 모습으로 다시 이 학교에 와보게 될 일이 생길지를. 그때만큼 순수한 열정으로 이 나라를 대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이켜보게 되는 풍경들이다.



아참, 그러고 보니 내가 너무도 사랑했던 학교 식당 학자거(学子居)는 원래 자리에서 서문 쪽 서구(西区)로 이사를 했더라. 같은 식당인지는 모르겠다. 들어가서 지삼선(地三鲜)만 시켜보면 바로 알텐데, 시켜보지 못한 점이 너무 아쉽다. 비행기 시간을 맞춰야 하는 터라 짧은 추억 여행은 여기서 마무리했다.



규정상 지역연구로 같은 지역을 두 번 갈 수는 없었지만, 이 1박 2일의 짧은 북경 일정은 출장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회사일로 간 것이니 출장이 맞긴 했다) 다행히 내게는 아직 한 번 더 북경으로 지역연구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지역연구를 나는 10월 초 국경절 연휴로 계획했다. 70번째 국경절을 맞아 중국의 수도 북경은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렇게 짧게나마 인민대를 다녀오지 않았다면 10월 북경 지역연구 일정에 어떻게든 인민대를 끼워 넣느라 고심했을 것이다. 다행히 이렇게 4월에 인민대에서 사전에 추억팔이를 조금 한 덕분에 10월 초에는 마음 편하게 북경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짧은 북경 일정을 끝내고 또다시 동방항공 MU5122를 타고 상해로 돌아간다. 또 보자, 북경!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2019년 4월 22일 

오랜만이야, 북경!


(譯) 2019년 4월 23일 

상해로 돌아가기 전에 남는 자투리 시간에, 나의 제2의 모교 인민대학에 들렀다. 비록 한 학기밖에 체류하지 않았던 교환학생이었긴 했지만 말이다. 상해교통대의 책가방을 메고 인민대를 돌아다니다니 ㅎㅎ 물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유학생 기숙사와 거기서 플라스틱 병을 사던 아저씨가 아직 계셔서 어느새 그때의 나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012년의 나는 비록 돈이 많지 않은 유학생이긴 했지만, 샤오빙(烧饼) 하나와 밀크티 하나면 충분히 행복했던 아이였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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