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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Feb 27. 2021

근대 상해탄으로의 여행

상해영시성과 셔산이 있는 송쟝구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가나, 송쟝!


19년 4월 21일. 평소 같았으면 여유롭게 늦잠을 잤을지도 모를 일요일이었지만 이날은 일정이 있었다. 바로 상해 교외로의 나들이! 중국어 학습을 위해 다니고 있던 어학원에서 주최한 봄나들이 행사였는데, 몇 주 전부터 학원 게시판에 붙어있어 약간 고민하다가 참가를 결정했다. 참가를 결정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목적지가 혼자서는 가기가 힘들 것 같은 교외에 있었기 때문이다. 상해 권역이기는 하지만 워낙 시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이런 계기가 없으면 다녀오기 힘들 것 같았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지역전문가 파견 전까지는 이 나들이의 목적지였던 송쟝구(松江区)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예전 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내가 맡았던 거래선 중 한 곳의 공장이 이곳에 있었는데, 출장으로 올 때마다 고객에게 너무 쪼였던 기억만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어두운 기억이 많았던 송쟝에는 생각보다 가볼만한 곳이 꽤 있었고, 이 나들이 이후에도 몇 번 목적지를 달리하여 제 발로 찾아갔다. 이런 기회가 있어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을 즐겁고 유쾌한 일들로 덮어둔 채 복귀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얄궂게도 출발하는 날의 일기예보는 좋지 않았다. 하늘은 내내 흐림, 심지어 가끔 비까지. 지금 다시 사진을 보며 글을 쓰자니 날이 조금 더 좋았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계기로 멀리까지 구경올 수 있었던 점에 대해 감사하며 그 날의 기록을 남겨본다.



20세기 초반 상해로의 여행, 상해영시성(上海影视城)


1998년 완성되었다는 상해영시성은 20세기 초반 상해의 모습을 재현한 곳이다. 조계지, 서양 문화로 가득한 난징루는 물론이고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그 당시 푸동의 모습까지 실감 나게 재현해놓았기 때문에 이미 30편 이상의 드라마와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되었을 정도. 한국 iTV에서 방송해준 적이 있었던 <안개비연가(情深深雨蒙蒙)>라는 드라마도 이곳에서 일부 촬영했다고 한다. 대로에 설치된 노면전차를 타고 난징루를 달려보는 것은 이곳에 오면 해봐야 할 일 중 하나다.


날이 흐렸던 상해영시성의 입구


꾸물거리는 날씨 속에 영시성 앞에 도착했다. 그래도 비가 쏟아붓지 않은 것을 감사히 여겨야 했을까. 입구 앞에는 라오상하이(옛 상해를 일컫는 말)로 돌아가 보자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근대 상해를 살아가던 상인들과 은행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구역이 나타났다. 기름 가게, 곡물 가게, 솜 가게, 심지어 향을 파는 가게까지. 모형으로 만들어둔 사람이 너무 진짜 같아서 깜짝 놀랐다.


얼마나 진짜 같았는지 정말 사람을 써서 운영하는 줄 알았던 가게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1928년에 세워져 지금까지도 상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카이쓰링(凯司令)이 나온다. 내가 살고 있던 난징시루 근처에 실제로 카이스링이 있었는데, 이 여행을 올 때만 해도 그 역사를 잘 알지는 못했어서 그저 사진만 남겨두었다. 그 외에도 난징루(南京路)의 곳곳을 재현해놓은 듯한 길이 쭉 펼쳐져 있었는데, 사진에 보이는 노면 궤도가 노면전차를 위한 궤도다. 실제 당시 난징루에는 이런 노면전차가 있었다고 하며, 그때를 다룬 드라마에도 이 모습이 종종 나온다.



이곳을 돌아다니면서 재밌다고 느꼈던 것 중 하나는 근대 상해에 실제 존재했던 다양한 제품들의 광고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에 유행했던 화장품이나 약, 담배 등 그 당시 난징루를 거닐었던 사람들이 관심이 있었을 법한 제품들의 광고가 건물에 걸려있었다. 그런 풍경 속에서 걷다 보니 정말 1930년대 상해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편 작은 이벤트 같은 것도 준비되어 있었는데, 영시성 안에 있는 소극장에서 진행하는 상해탄(上海滩) 공연이었다. 느와르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상해탄의 내용을 잘 알지는 못했는데, 짧은 연극을 보며 대강이나마 허문강(许文强)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 특유의 까만 중절모가 아직도 생각난다. 또 싸우는 장면에서 울려 퍼지던 남자 관객들의 환호성도.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영시성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작은 강과 다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다리를 건너니 그 어떤 건물도 없는 시골 동네가 나왔다. 궁금해서 여긴 어디냐고 물으니 여기가 바로 당시의 푸동이란다. 지금은 동방명주, 푸동 삼 형제 등 마천루가 잔뜩 들어서 있는 푸동이 그때만 해도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시골마을이었다니. 마치 서울의 강북과 강남을 보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푸동에 너무 아무것도 없어서 (푸동에 대해 이런 서술이 가능할지 몰랐다!) 다시 강을 건너 푸시로 넘어왔다. 역시 푸시가 좋다. 화려한 번화가. 그리고 그때 눈앞에 노면전차가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열차에 타서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저 열차에 타 난징루를 걸으면 정말로 당시 상하이에 떨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



궁금할 땐 뭐? 해 본다! 나도 민국 시대 상하이의 일원이 되어 보고 싶은 마음에, 노면 전차에 몸을 실었다. 전차에 타서 난징루를 지나니 참 기분이 이상하다. 분명 우리 모두가 입고 있는 옷은 현대식 복장인데, 거리는 너무나도 민국스러운 풍경이라 신기했던 것 같다. 이래서 다들 노면 전차를 타보나 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던 점은 이 넓은 영시성 부지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말러 별장(马勒别墅)이었다. 이 말러 별장도 사실은 가짜. 진짜는 시중심 샨시난루(陕西南路)에 위치해 있다. 당시 유대인 선박 부호였던 말러라는 사람이 딸이 꿈에서 보고 그려준 성 그림을 바탕으로 만든 별장으로, 지금은 상해의 특별한 숙박업소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곳을 영시성 안에 재현해둔 것이다. 19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실제로 이 말러 별장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내부가 이곳에 재현된 모습과는 다소 달랐다. 진짜를 꼭 가보기를 추천한다.



운이 좋게도 이날 방문했을 때 실제로 드라마 촬영을 준비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웹드라마였던 것 같은데, 제목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의상을 갈아입고 촬영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어쩌면 내가 봤던 드라마들 중 몇 편은 이곳에서 찍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와보길 잘했다 싶다.


다들 단역이었을까?

상해에도 산이 있다, (佘山)


영시성 관람을 마치고 근처 로컬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간 곳은 상해에서 산이라고 부를  있는 유일한 , 셔산(佘山, )이었다. 평지밖에 없는 상해에서 그나마 좀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곳이 딱 두 군데인데, 다른 하나는 바다를 건너가야 해서 육지에서 갈 수 있는 곳은 셔산이 유일하다. 그래서 붙여진 셔산의 별칭은 '상해의 후원(大上海的后花园)'. 그렇다곤 해도 높이가 해발 100M 정도밖에 안 되니, 산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부끄럽긴 하다.


국가삼림공원으로 지정된 셔산의 입구

100M 건 아니건 등산을 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 돌로 된 계단을 오르다 보니 눈앞에 탑이 하나 나온다. 탑의 이름은 수도자탑(秀道者塔). 명나라 때 셔산의 한 사찰 사사(佘寺)에 수청(水清)이라는 방장이 있었는데, 본래 소림파의 일원으로 인덕이 높아 사람들이 모두 좋아했다고 한다. 당시 왜구가 들어와 탑과 사찰을 모두 불태우려고 할 때 그가 주변 승려들과 함께 그에 대항했는데, 지원군이 없어 전사하고 말았다. 백성들은 그들의 정신을 기려 셔산 정상에 그들의 시신을 묻었고, 거기에 석탑을 하나 세웠는데, 그것이 수도자탑의 유래라고 한다.


수도자탑과 수화사의 모습. 사실 다 90년대에 다시 세워진 것은 비밀.


암자 같은 느낌의 절을 보고 나서 또 한참 돌계단을 올라가니 보이는 상해의 전경. 아, 날이 좋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문득 지역연구 갔을 때 중산릉에서 본 풍경이 떠오른다.



조금 더 올라갈 수 있는 것 같아서 좀 올라가 보려고 했더니 리모델링 중인지 막혀 있는데, 보니까 이곳이 1863년 프랑스 선교사가 들어와서 세웠다는 셔산 천주교당인 것 같다. 리모델링이 아니었으면 들어가서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진입로가 모두 막혀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그저 먼발치서 바라볼 뿐. 예상했겠지만 이 건물도 사실 그 당시의 건물은 아니다. 문화대혁명 때 파괴되었고 84년에 다시 만들어졌다고 한다. 정말이지 수많은 유적들이 홍위병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산을 내려가며


날이 좋지 않아 산을 내려오면서는 다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주최 측인 어학원 스탭들의 표정은 망연자실. 어찌 됐든 본래 내가 참가를 결정했던 이유는 좀 편하게 송쟝까지 와서 평소에 혼자 와서 보기 힘든 곳들을 보고자 했던 것이었으니 그런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나들이나 여행에서 날씨라는 건 그저 운이라, 따라주면 좋지만 안 따라줘도 누굴 원망하리오.


다만 하루 일정을 마치면서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던 점은 있었다. 그 아쉬움은 나를 향한 아쉬움 혹은 책망. 바로 오게  장소에 대해 미리  조사를 해볼 걸, 하는 마음이었다. 영시성이든 셔산이든 도착하기 전까지 대략적인 것만 알았지 그곳에 가서 무엇을 봐야 좋을지에 대해서는 사전 조사가 안 되어 있었기에 막상 도착하고 나서는 우르르 사람들과 함께 몰려다니느라 봐야 할 것을 많이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똑같은 실수를 두 번 하면 안 되겠지. 즉흥적으로 어디를 가게 되더라도 그곳에 대해 그래도 좀 더 조사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외 나들이도 그렇지만 기차 타고 비행기 타는 지역연구일 경우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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