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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Feb 21. 2021

2019 상해 모터쇼 관람기

모터쇼는 왔는데 자동차를 몰라서

(※ 2019년 기준으로 쓰인 글입니다)


"상해에서 무척 큰 모터쇼가 열린대!"


4월 초부터 동료 지역전문가들 사이에서 돌던 말이다. 한국에서 모터쇼라고 하면 흔히들 미녀들이 유명 브랜드 차 옆에 서서 미모를 뽐내는 모습을 가장 처음 떠올리는 데다, 워낙 평소에 차에 관심이 없어서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눈길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파견지인 상해에서 열리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행사인 데다, 회사도 최근에 자율주행 등 전장 산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터라 혹시 업계 관련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얼결에 일정에 반영하게 되었다.



상해 모터쇼는 1985년부터 개최된 행사로, 격년에 한 번 열린다. 아시아에서 정상급에 속하는 모터쇼라고 하는데, 2019년에는 "함께 만들어요 아름다운 생활(共创美好生活)"이라는 슬로건을 달고 개최되었다. 진행되는 전시장은 국가 전시 컨벤션 센터(国家会展中心). 상해 지하철 2호선 종점인 쉬징동(徐泾东) 역 근처에 있다. 보통 2호선을 타고 홍챠오 공항 이후로는 잘 가질 않기 때문에, 이런 큰 박람회가 있을 때만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컨벤션 센터 동쪽에 홍챠오공항이 있다.


모터쇼 입장권은 98위안에 구매했는데, 분명 정식 플랫폼에서 구매했음에도 약간 암표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커스 보러 갈 때 표를 구매했던 플랫폼인데, 당시에 실물 표 교환은 티켓 부스에서 이뤄졌던 반면, 이번에는 전시장에서 도보로 한 10분 이상 떨어진 버스 정류장 같은 곳에 굉장히 껄렁하게 생긴 아저씨가 나타나서 무슨 당근 마켓 거래하듯 내게 표를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대규모 행사일수록 이런 일이 잦은 것 같은데, 믿을만한 플랫폼에서 표를 구매했더라도 꼭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기를 추천한다. 뭐 어쨌든 표를 손에 넣었으니 됐지만.


자, 들어는 왔는데, 뭐부터 봐야 하나? 차에 대해 잘 모르는데, 어쩌지....?



차는 안 보고 : 각종 신기술의 향연


상해 모터쇼는 입구에서부터 5G 라이브 방송 부스를 설치해 이 박람회가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전시장 중에서는 국내 브랜드관에서 유난히 다른 전시장들보다 첨단 기술을 강조했다. 추측컨대 수입차 전시장보다 낮은 브랜드 인지도를 첨단 기술과 각종 퍼포먼스로 보완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국내 브랜드관에 전시되어 있던 대부분의 차는 내부에 대형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있어 스마트 주행의 보편화를 보여주었다.


입구에 있던 모터쇼 5G 라이브. 목소리는 흘러나오는데 안에 있는 사람은 말을 안 한다. 라이브 맞나?


다양한 전시 내용 중 눈에 띄었던 점 하나는 '무인·자율주행'에 대한 관심이었다. 리무진처럼 생겼지만 핸들이 없었던 자율주행 차량과 China Mobile(中国移动)에서 선보인 자율주행 청소차 및 버스, 전시장 안에서 영업을 하고 있던 로봇 카페까지. 그 사회적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상용화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북경 방산(房山)에서 5G 자율주행 시범구역을 운영한다고 하니, 그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관절까지 구현된 로봇이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 머리카락-safe 커피를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으로 눈에 띄었던 점은 중국 기업 간 제휴를 통해 진행되는 신기술 구현이었다. 장안 자동차(长安汽车)와 화웨이(华为)의 제휴를 통해 진행된 Smart Car-Home Connection. 한텅 자동차(汉腾汽车)와 바이두(百度)의 제휴를 통해 진행된 자율주행 프로젝트 모두 자국 기업 간 협력을 통한 신기술 구현 케이스다. 자국 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엿볼 수 있었다.


상단 왼쪽부터 사진 1, 2, 3, 4


위 사진 1~3은 장안 자동차와 화웨이의 제휴 전시관에서 찍은 사진이다. 화웨이와 장안 자동차는 19년 1월 중순 연합 연구개발센터를 세우고 IoT, 자율주행, 커넥티드 카 등 영역에 있어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1은 화웨이 AI 스피커 샤오이(小易)의 모습. 사진 2는 집에서도 디스플레이 조작을 통해 차량의 상태를 확인하고 일정을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이며, 사진 3은 식탁에 디스플레이를 설치해 뉴스를 보고 메뉴 추천을 받는 등 스마트홈이 구현된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사진 4는 한텅 자동차와 바이두의 제휴를 통해 진행되는 자율주행 프로젝트 자동차다. 두 회사는 모터쇼 현장에서 계약을 맺고, 자율주행 제도 구축과 고속도로 자율주행, 자율 주차 등 기술 공동 연구개발을 약속하였으며, 2021년에 해당 기술을 구현할 차종을 양산키로 협의했다.



차는 안 보고 : 관람객과의 활발한 상호 작용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금번 상해 모터쇼는 상해 지하철 2호선 종점역인 쉬징동(徐泾东) 역 근처에 위치한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되었다. 박람회 당일 지하철역에 내리니 가족단위로 내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최 장소가 한국으로 치면 일산 킨텍스 같은 곳이다 보니, 아마도 모터쇼 말고 유아 관련 박람회도 동시에 진행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 모든 가족단위 관람객이 모터쇼를 보러 온 사람들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이를 데리고 모터쇼에 와서 뭘 보지?"라고 생각한 스스로가 우스울 만큼, 박람회 내에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관람객과의 활발한 상호작용(互动)을 잘 구현한 부스들이 참 많았다.



좌측 사진은 Audi에서 준비한 아웃도어 운전 체험. 아빠와 아이가 태블릿으로 운전 체험을 해보고 있다. 우측 사진은 Buick에서 준비한 가상 주행 체험. 많은 아이들이 앞에서 설레는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는 동난 자동차(东南汽车) 전시장.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질러 데시벨 정도에 따라 미니카를 움직일 수 있고, 그렇게 경주 대결을 하는 게임이었다. 꼬마 숙녀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아이들만 놀고 싶은 게 아니다. 어른들도 놀고 싶다! 왼쪽 사진은 Lynk&Co 전시장. 처음에는 단순히 오락실을 전시장 안에 구현해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Volvo와 지리 자동차(吉利汽车)의 합자회사였다. 관람객에게 각종 즐거운 경험을 제공함과 동시에 브랜드까지 홍보하는 일석이조의 홍보 전략인 셈이다.


오른쪽 사진은 Bosch 전시장. 회사 간부가 직접 등장해 젊은이들의 질문에 대답해주고 있다. 기업에 대한 질문뿐 아니라 취업과 관련된 질문도 답을 해주고 있었는데, 현장에서 좋은 인력이 발견되면 직접 채용도 고려한다고 한다. 업계에 관심이 있는 젊은 인력을 모터쇼라는 계기를 통해 발굴해내려는 것이다.



차는 안 보고 : 캐치 프레이즈 수집


모터쇼장은 정말 대륙 스케일로 컸다. 그래도 본전은 뽑으려고, 차를 전시해둔 전시장은 모두 한 번씩 돌아봤다. 차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글자는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모든 브랜드를 아다니면서 캐치 프레이즈를 찍어 봤다.


고대부터 적은 글자 수에 많은 뜻을 내포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중국인들인지라, 짧은 캐치 프레이즈 안에도 최대한 브랜드의 고유 가치를 담아보려는 시도가 엿보였다. 이는 외국계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업계가 업계인지라 미래로 달려 나간다는 뜻을 담은 캐치 프레이즈가 많았다. 개중 인상적이었던 캐치 프레이즈를 내 맘대로 순위 매겨보면 이렇다.


1위 Bentley, '翼百年,诣非凡'


'백 년을 날아 비범함에 다다르다'라는 뜻의 캐치 프레이즈를 1등으로 뽑아 봤다. 익백년(翼百年)은 일백 년(一百年)과 중국어 발음이 같아 100년을 강조함과 동시에, '날개'라는 글자로 Bentley의 심벌인 날개와 '달려왔다'는 뜻을 모두 표현하고 있다.



2위 Lexus, '领未见,探非凡'


'미지의 세계를 이끌어 비범함의 경지를 찾아낸다'는 뜻의 캐치 프레이즈. 라임을 맞춘 것도 인상적이지만, 보다가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혹시 见과 凡 두 글자의 마지막 획이 모두 L처럼 보이는 것은 Lexus가 노린 것일까 하는. 뜻뿐 아니라 글자의 형태까지 생각해 지었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2등으로 꼽아봤다.



3등 BYD, '向新而行'


중국계 브랜드도 하나 있어 줘야지. '새로움으로 나아가다'라는 뜻의 캐치 프레이즈. 단 4글자로 신기술을 활용하는 BYD를 잘 표현했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차, 차, 차.....


모터쇼까지 갔는데, 차를 안 본 건 절대 아니다. 어느 쪽이냐 하면, 오히려 너무 많이 봤다. 문제는 내가 길에서 심벌을 보고도 어느 브랜드의 차인지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완전한 문외한이라는 데 있었다. 데이터베이스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차만 잔뜩 보니 돌아가는 길에는 길거리에서 차만 봐도 졸려올 지경이었다. 그래도 혹시 차 사진이 보고 싶은 분이 계실지 몰라 넣어본다. 지식이 없으니 설명은 생략..




3만 보를 걷고 얻은 것


생전 처음 가본 모터쇼가 한국도 아니고 중국에서 열린 것이라니,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전시장을 돌아다니던 중 같이 참관한 동료 지전가에게 계속 물어봤다. "모터쇼가 원래 이렇게 큰 행사인가요?" 그들의 대답은 "아니, 여기가 너무 큰 거야." 나중에 보니 이날 3만 보를 넘게 걸었더라. 덕분에 집에 가는 길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래도 뜻깊은 경험이었다고 본다. 비록 문외한이지만, 그렇기에 모터쇼에서 차 이외의 것들을 보고 다른 시각으로 관람이 가능했던 것 같다. 모터쇼를 보고 왔지만 차보다는 사람을, 그리고 분위기를 더 많이 보았고, 그 또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본다.


다리는 후들거리지만 지하철 종점까지 왔는데 구경도 안 하고 가기가 아쉬워서 들르게 된 곳이 홍챠오톈디(虹桥天地) The Hub. 전시장에서 나와 조금만 걸으면 바로 보인다. 벼룩시장 같은 것을 하고 있어서 구경을 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가 보니 아기 상어. 아기 상어가 벌써 중국에까지 진출했는 줄은 몰랐기에 놀라웠다. 역시 귀여운 캐릭터는 어느 나라를 가나 다 좋아하는 것 같다. 뜻밖의 아기 상어와 함께 차로 가득했던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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