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짓는 일, 살아가는 일

-4 네 번째 일상

by 윤에이치제이

4.

게을러지기 좋은 시간이 도래하면 어떻고, 밥상과 태도가 좀 달라지면 어떻고



여름이라면,

자연스러운 구김이 멋진 리넨 이불 위에 큰 대자로 벌렁 드러누워 있는 기분을 아는 사람은 안다. 혹시라도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고,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큰 대자로 드러누워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는 기분을 아는 사람은 안다.

비 오는 날이면 파전 생각이 난다는데 나는 파전 생각이 안 난다. 빈대떡 생각도 안 난다. 이런 날에는 이런 음식이 떠오르고 저런 날에는 저런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법칙이, 모든 사람이 좋아할 법한 법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꼭 나에게도 행복해지는 방법인가. 그렇지 않다. 비 오는 날이면 음식 지글거리는 소리보다 비가 여기저기 떨어지며 내는 다양한 소리를 듣는 게 더없이 좋다. 빗소리 신호에 본능적으로 자동 재생되는 비 오는 날 어울리는 음식 오만 가지 중 단 한 가지도 해 먹지 않고 오랜 인생을 살아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제법 쏟아질 것 같던 비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 버리고 빗소리도 떠나간다면 그래도 좋다. 잠깐 동안의 만족감으로도 충분하다. 대신 큰 대자로 드러누워 있다가 한껏 흐트러지고 늘어진 자세로 옆으로 돌아눕는다. 그러다 다시 저쪽으로 돌고 다시 이쪽으로 돌고. 그것도 지루해지면 다음엔 엎드려 누워 이불이나 베개에 얼굴을 폭 파묻는다. 그러다 잠깐 낮잠 속으로 도망치기도 한다.

다른 계절이라면 사실 누워 있는 것도 낮잠을 자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잠자리에는 잠잘 때만 눕는 게 좋다. 그런데 그게 예외일 때가 여름이다. 특히 비 내리는 여름날이 더 그렇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 나름대로의 규칙을 부여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필요한 거니까. 살면서 예외는 언제나 존재하는 거니까. 그게 숱하게 허용되는 계절이 여름이다.


여름에는 사는 것도 틀어지고 먹는 것도 틀어진다. 그래서 몸의 균형이 틀어지기도 한다. 그런 때도 있는 거지. 흐트러짐 없이 바락바락 모든 계절을 사는 게 흐트러진 대가로 후유증을 앓는 것보다 더 큰 곤란을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은가. 삶의 규칙을 완벽하게 성취해 내려다 뻣뻣해지고 곤두서서 부러질 것 같은 위기를 겪는 것보다는 때로는 유연하게, 살짝은 고의적으로, 무너지는 순간도 필요하다. 내 삶을 좀 더 잘 지켜 내기 위해서. 그래서 여름에는 먹는 것도 부실하고 움직이는 것도 부실하고. 그래서 하루하루를 최선으로 채운 구석이 없고 틈이 많다. 허술하고 게으르다. 그게 지금을 사는 방식이다.


그런 여름을 위해 준비해 두는 편리한 음식 재료들이 있다.

오트밀, 냉동 과일, 버터, 잼, 견과, 식빵, 국수 등등.

오트밀은, 먹기 몇 시간 전이나 전날 밤에 우유에 미리 불려두었다가 끈적끈적한 식감이 완성됐을 때 호두, 아몬드 등의 견과와 냉동 블루베리를 넣어 우유를 조금 더 추가한 뒤 블루베리 짙은 빛깔이 하얀 우유를 만나 연보랏빛으로 변하는 걸 즐거워하면서 먹는다.

더 더워지기 전에 미리 사서 얼려 둔 바나나와 냉동 망고는, 너무 더운 날 먹으면 오히려 단내와 텁텁함이 괴로운 아이스크림 대신 우유를 적당히 넣고 갈아 슬러시를 만들어 먹는다. 여름 내내 먹고 또 먹어도 질릴 기색이 없다.

버터와 살구잼, 사과잼, 무화과잼의 조합 (취향을 꼭 밝힐 필요가 있을까 싶긴 한데 나는 딸기잼을 좋아하지 않는다), 혹은 버터와 꿀의 조합은 너무 좋아서 바싹 구운 토스트에 발라 한 입 베어 물고 난 뒤에 진한 커피 한 모금을 살짝 머금으면 입안에서 만난 조화로운 맛과 향을 혀가 가장 먼저 느끼고 난리를 친다.


여름이 아니라면 여기에 스크램블을 곁들이기도 하는데 사실 무더위에 배달된 상한 계란을 먹고 탈이 난 후부터는 녹거나 상할 염려가 있는 재료들은 여름 식탁에 영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앞서 말한 재료들도 더워지기 전에 미리 준비해 냉장고 위 칸, 아래 칸에 잘 보관해 두고 쓰임새가 폭발하는 순간을 인내하며 기다린다.


없던 입맛도 돌아오게 하는 특별한 애정을 가진 재료는 국수 소면이다. 멸치를 넣고 우린 그 맑디맑은 육수를 냉장고에 보관해 두고 시원한 냉국수가 생각날 때 얼른 소면을 끓여 찬물에 헹궈내 그 뽀얀 면발을 맑은 멸치 육수에 담그면 두 그릇은 그냥 술술 넘어간다. 배가 부르다 못해 점점 더부룩해지다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많은 양의 국수를 먹고는 아- 이 미련 곰탱이,라고 자책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멸치 육수에 국수만 넣어도 맛있는데 야채양념간장을 살포시 얹어도 먹고 참기름과 깨를 듬뿍 넣어 버무린 김치를 얹어도 먹고. 멸치 육수 만들어 둔 게 없다면 간장에 식초와 꿀과 참기름과 깨를 적당한 비율로 넣어 반나절쯤 둔 간장소스에 그냥 국수를 비벼 먹어도 얼마나 맛있는지. 곰이 되는 순간들을 충분히 감내할 음식이 바로 국수다.


멸치국수가 특별한 것은 여기에 항상 자동 재생되는 추억이 있기도 해서다.

돌도 씹어 먹을 나이인 학창 시절, 더 구체적으로는 고3 때. 아침을 먹고 가서도 점심시간 전에 도시락을 해치우고, 점심은 교내 식당에서 푸짐하게 사 먹고, 그 짧은 쉬는 시간에도 매점으로 뛰어가 또 배를 채우고, (쉬는 시간에 컵라면에 빵이나 핫바를 추가해 흡입하는 건 일도 아니라는 것을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저녁시간이면 잘 참고 남겨 둔 두 번째 도시락을 먹고, 야간 자율학습이 시작되면 그 길고 지루한 시간 중 한 번 정도는 덧신 신은 발로 탈출해 학교 앞 분식집을 털고 다녔다. 그때는 왜 그렇게 자주 배가 고팠는지. 그래서 고3 때 최고 몸무게를 찍는 경우도 많다는데 신기하게도 내 경우는 그렇게 먹고도 고등학교 내내 체중 증가 없이 같은 몸무게를 유지했다. 물론 축복받은 특별 케이스였던 건 아니어서 그때 경험하지 못한 과체중의 공포를 대학 졸업 후에 뒤늦게 겪으면서 패닉이 왔지만.

어쨌든 그 추억이라는 건, 야간 자율학습까지 마치고 10시가 넘은 시각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가 자주 해 주셨던 야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야식이 바로 멸치국수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멸치국수.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곧 수능이 임박해 온다는 것이었고 나 역시 다른 수험생들처럼 집에 돌아와서도 막바지 수능 공부에 매진하는 모양새를 취하곤 했는데, 물론 잘 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밤샘 공부도 식후경이라며 매번 멸치국수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더 잠이 쏟아졌을지도 모를, 그 기억이 지금도 감칠맛 나게 남아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식성이 변한다고 한다.

나도 그걸 서서히 겪어 왔지만 다른 건 변해도 그때나 지금이나 멸치국수를 좋아하는 건 변하지 않았다. 잘 먹지 않는 라면 대신 국수를 흡입하며 내 마음대로 면을 사랑하는 사람들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거기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의 체통을 지켜왔다. 한국 사람의 면 리스트 최상위 등수 일지 모를 라면을 덜 좋아한다는 사실이 용납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국수는 말할 것도 없고 파스타면도 우동면도 좋아해서 매일 한 끼니는 면 요리를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니 나의 면 자부심을 숨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잠깐 샛길로 샜는데,

그렇게 여름이면, 여름다운 간단한 음식들이 있고 여름답게, 요리법의 게으름이 밥상에 스며든다. 여름을 살아내는 형식은 여름 식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잘 먹지 못하면 잘 살아내지 못하고 그건 당연한 거라서 게을리 먹은 딱 그 정도의 허술한 시간을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그런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게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차피 인간은, 인간인 나는,

완벽을 추구하지만, 그 간절한 마음은 계속되지만, 어느 순간도 완벽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그걸 반복해서 겪다 보면 완전함을 얻기 위해서 애쓰기보다는 거기에 이르려는 과정에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는데 감사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체되는 것만 같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다 오래전의 일이다. 정체하고 싶지 않았던,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던 혈기왕성한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은 완벽을 지향하기보다는 그저 내게 주어진 삶을 마지막까지 잘 완성하기 위해 천천히 전진하는 과정에서 너무 애쓰지 않고 흐르는 대로 흘러갈 뿐이다. 허술하고 불완전한 시간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삶을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많은 시간과 경험을 통해서 삶의 방식들을 다듬고 보완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내게 남은 시간을 무방비 상태로 버려두지 않기 위해서다. 어느 때는 잠시 게을러질 수 있고 어느 때는 그렇지 않은데도 외부의 시선에 한껏 게으른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나는, 내 식대로, 나의 형식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밥상의 형태와 질도 달라지고 삶의 태도와 방향도 달라진 것이다.


인생을 단순하게 계절의 반복이 반복되는 것으로 본다면,

반복되는 쳇바퀴 속에서 한 번씩 나사가 풀어지거나 발을 헛디딜 때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라도 숨통이 트일 틈을 주지 않으면 긴 인생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힘을 내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릴 수 있을까. 인생의 반복되는 주기 속에서 여름 같은 어느 즈음에는 풀어진 나사를 조이며 한숨 돌려가고 힘이 풀려버린 다리를 주무르며 기력을 회복하고. 덕분에 다시 힘을 내어 나만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면 뒷걸음질 칠일 없지 않을까. 애써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는 일이 없지 않을까. 혹시라도 잠시 뒤로 굴러간 시간은 거기서 주저하지 말고 다시 또 나아가면 되긴 하지만 이 또한 여러 번 반복되면 버티기 힘들어질 테니까.


우리는 스스로를 좀 더 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어느 때보다 많이 듣고 있다. 스스로도 그래야 한다는 걸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러려면 완급 조절이 필요할 것이다. 자신에게 너무 인정머리 없이 채찍을 휘두르지 말고 외부의 어떤 위로보다 스스로를 잘 위로하고 다독일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치열하게 열심히 살겠다는 사람들의 선택도 옳은 것이지만,


몸보다 우리의 마음을 위해

우리는 우리가 게으름 좀 피우는 요령도 수고롭게, 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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