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29번의 크리스마스 - 29 잘츠부르크
꼭 29번의 잠, last 크리스마스
+++
결국 29번의 잠을 잤다
멋진 29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오늘을 후회 없이 잘 마무리하고 나면 그간 있었던 모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해 크리스마스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살면서 이런 충동적인 결정을 또 할 수 있을까
아주 계획적이고 조심스러운 사람이 어떤 일에 갑자기 대범해지고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것
그건 살면서 손에 꼽을 몇 번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서
오직 나를 위해 특별하고 소중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한 일과
그걸 이렇게 이뤄낸 일, 이것은 오늘부로 살면서 가장 잘한 일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그리고
그 일의 하루가 아직 남아있다
낮
일찍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am11시 체크아웃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체크아웃을 마쳤다
짐 보관을 부탁하고 가볍게 나선 라스트 크리스마스 데이, 잘츠부르크는
마지막에 예의를 차리는 나쁜 애인을 결국 미워할 수 없듯이
오늘에서야 환하고 맑은 얼굴을 보여주어 두고두고 생각나는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마지막에는 결국 보여준 것이 고맙기까지 하다
특별히 조바심이 생기지 않아서 그냥 부유하듯 걸어 다닌다
구시가지 입구에서 긴 횡단보도를 건너면 구시가지와 다르고 우리네와는 다르지 않은
여러 업종의 상점들이 늘어선 평범하고 일상적인 거리가 나오는데
오늘은 그곳으로 갔다
일상의 길들과 가게들도 좋다
나는 내가 사는 곳의 일상들도 특별하게 느끼는 사람이다
옛 거리의 매력을 뛰어넘을 순 없을지라도 사는 모습이 정겹게 가깝게 느껴진다
오스트리아라면 흔하게 유명한 스와로브스키 매장을 지나치려다가
엄마가 좋아하는 브로쉐와 아빠와 이모를 위한 펜을 두 개 구입한다
선물에 대한 압박감을 일찌감치 떨쳐버리면
나머지 시간의 맘이 편해서 좋다
Bio Burger Meister 수제버거 가게는 두 번째 방문했을 때에도
좌석이 없어 결국 먹는 걸 포기했고 대신
내 장바구니를 신나게 채워줬던 SPAR에서 기차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산다
그리고 다시 강 산책길을 걸어 짐을 찾으러 돌아가는 길
떠나는 자에게 저미는 아쉬움은 옅고 왜인지 푸른 하늘 따라 마음이 푸르다
마지막이라는 것은 시원섭섭이 언제나 세트다
밤
pm4시 즈음 짐을 끌고 오늘 세 번째 지나는 강 산책로
여행의 일정이 길어 필요한 짐만 챙겼으므로 (여행이 쌓여 노하우가 생겼다)
캐리어 하나 끌고 쭉 뻗은 길들을 다니기가 힘들지는 않다
내키지 않아 보류했던 어제의 마음 대신 좋은 인사를 하고 싶은 오늘의 마음이
해가 지는 강변에서의 하늘과 풍경을 오래 바라본다
이 도시의 해 질 녘, 이 도시의 밤의 불빛을 오늘에야 제대로 목도한다
드디어 오늘의 해가 지고 도시의 불빛들이 잠들려는 어둠을 깨우기 시작할 때
천천히 구시가지로 향하는 오늘의 걸음은
사진을 찍기보다는 눈과 마음에 꾹꾹 새기며 길의 모든 풍경을 통과한다
이제 밤이 깊어지면 기차역으로 향할 것이고
이제 한 달간의 크리스마스를 잘 접어둘 것이고
이제 새로운 한 달간의 특별한 밤을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아주 행복한 고군분투,
+
+
오늘이 지나면 별안간 소망했던 길고 긴 크리스마스가 끝이 난다
원 없이 잘 지냈으므로 이 해의 특별했던 크리스마스와 잘 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헤어진다고 추억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서 완전한 이별은 아니지만
.. bye ..
나의 모든 크리스마스의 날들
+
나는 또 살아가고 또 여행한다
꼭 29번의 크리스마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