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29번의 크리스마스 - 28 잘츠부르크
꼭 28번의 잠, 일곱 번째 도시에서의 스물여덟 번째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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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고통스러웠다
여행 중에 가장 심한 두통이 왔다 어제부터 낌새가 안 좋긴 했다
아마도 세 번째 타이레놀 처방 그래도
한 달 동안 낯설고 축축한 겨울 속에서 이 정도면 잘 버틴 거다
문 앞에 '방해 마시오'를 걸어놓고
약 기운이 제대로 듣기를 바라며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am 11시가 다 된 시간까지 누워 있다가 60% 정도 회복되었다 싶을 때 일어났다
집이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pm12시가 넘은 시각에 나가는 건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오전 시간을 다 까먹어서 조바심이 났다 한 달의 일정이 끝나가는 탓이다
숙소에서 강으로 바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알게 되어 그 길로 구시가지로 간다
내 몸의 판단으로는 (컨디션도 한 몫했을 수도 있다) 12월의 겨울 중 오늘이 가장 춥다
겨울이라도 해가 있으면 견딜 수 있는데 잘츠부르크는 내내 회색이다
그럼에도 강의 산책길을 걸으며 보이는 풍경이 보상이 된다
나머지 통증을 잊는 방법은 지금 내겐 이게 유일하다
강을 따라 걷다가 남산이 떠오르는, 자물쇠가 촘촘하게 채워진 다리를 발견한다
어느 곳이나 사랑과 결속에 목마른 표식들이 빼곡하다
잘츠부르크의 자물쇠 다리는 구시가지 입구의 다리에서 강을 따라 조금 내려와야 한다
반대편으로부터 걸어왔으므로 구시가지의 반대편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며 간판거리로 가려는데 크리스마스 마켓이 딱 나타난다
정석대로 시작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길의 끄트머리는 언제나 나의 취향이고
화려한 중심부로 들어서면서 점점 인파와 물건들로 길 구석구석이 북적거린다
그래도 게트라이데(간판 거리)는 못 넘어가지
맛있는 길거리 음식이 출출한 위장을 유혹하지만
이미 식사시간이 지났음에도 추위에 야외 취식은 끌리지 않고
잠시 들어간 교회에서도 오늘은 도통 차분해지지 않는다
이 거리를 천천히 담아가고 싶은데 의무적으로 셔터를 누르며 다른 날과 다르게 직진하고 있다
두통 때문에 건너뛴 커피 생각에 익숙한 간판의 가게로 들어갔다
아메리카노는 없는 맥도널드에서 카푸치노와 애플파이를 주문하고 사실은
그냥 잠시 멍을 때리며 몸을 녹인다
30여분 정도 그렇게 생각 없이 따뜻한 기운의 보살핌을 받으니 그제야
남아 있던 두통이 가라앉은 걸 안다
그렇다고 해도 오늘은 도저히 또 다른 필수 스폿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늘이 안되면 내일이나 그다음 날을 기약하면 되는 서울이 아닌데도
이렇게 마음이 걸음을 멈추게 하는 건 처음이다
이 거리가 끝이 나면 돌아가자고 결심한다
내일이 한 달이 꽉 채워지는 마지막 크리스마스 일정이지만
오늘 고작 4시간 여 정도밖에 걷지 못했지만
기약을 한다고 하면 또 몇 년 뒤가 될지도 아니면
미룬 시간을 후에도 영영 도모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되돌아가겠다는 마음이 이미 단호하다
여행 중에 이런 일 저런 일이 단 하루도 없을 수는 없다
예측하지 못했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은 살면서도 얼마든지
살아가는 중의 한 조각인 여행 중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여행도 삶이니까
돌아가는 길목, 조금은 한산해진 거리가 그래도 마음의 깃을 살포시 붙잡는다
결심보다 느려진 걸음으로 오늘을 남기며 돌아오는 길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거리의 풍경들이 내겐 아름다워서
돌아선 마음이 조금 좋아지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거리의 크리스마스가 따사롭게 스며든다
가는 길이 멀어 이미 오늘의 해는 기울고
늦은 외출과 늦은 귀가가 오히려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지금조차
포기했다 싶은 오늘의 나에게 더 많은 걸 안겨 주는 것 같다
이래서 여행이다
의도하지 않게 포착된 여행의 모든 순간이 그저 고마울 뿐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