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29번의 크리스마스 - 25 할슈타트
꼭 25번의 잠, 여섯 번째 도시에서의 스물다섯 번째 크리스마스
+++
이틀 전부터 한국어-독일어 번역기를 동원해 만들어 낸
여섯 줄 가량의 문장이 적힌 쪽지를 TEA 케이스의 끈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극적으로 할슈타트에 머물 수 있게 된 메일 한 통
싱글 게스트에게 내어 준 따뜻하고 아늑한 더블 룸
진짜 크리스마스를 원하던 곳에서 보낼 수 있는 기회
가족들과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에 낯선 이를 받아주신 것에 대한 감사
쓰고 보니 더 고마움이 커지는 크리스마스, 그 아침에
Merry Christmas~, 용기 낸 명랑함을 리드미컬하게 내뱉으며
할머니께 small small, 을 반복하면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네드렸다
내 작디작은 마음이 잘 전달되었기를...
밤새 기온이 올랐는지 눈이 살짝 녹은 길을 걷는
크리스마스의 아침
더없이 고요한 길 속에서 익숙함과 작별해야 할 순간이 다가옴을 느낀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 차 온통 흐린 조명이다
내일 일찍 출발해야 하므로 오늘이 할슈타트에서의 마지막 산책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욕심을 부리지는 않기로 한다
다섯째 날이 되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마음이 드는 게, 로텐부르크 때와 유사하다
어차피 모든 계절을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잠깐이라도
누릴 수 있었던 것으로 만족하자는 마음이다
어제 오후에 찾았던 먼 호수의 길을 아침에 다시 걸어보고
가만히 서서 오래 바라보기도 하면서 풍경을 꾹꾹 담아본다
영영 잊지 않는다는 약속은 삶에서 절대 지켜질 수 없는 어떤 진실과 다름없다
그래도 형체는 사라진 채로 남아 있는 감정들이 어느 때면 마음을 몽글몽글 긁어댈 것이다
기억하고 있었던 사실을 되짚어보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되짚어 걷는 길, 하나하나 되짚어 보는 풍경, 하나하나 되짚어 찍는 사진
pm1시 즈음이 되어 돌아온 집 앞에서
1층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바로 마주 보이는 주방과 테이블에
6~7명의 가족이 함께 점심을 먹고 있다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크리스마스 인사를 했고
그들의 알아들을 수 있거나 그렇지 않은 뒤섞인 인사를 받자마자
신경 쓰지 말라는 어리바리하게 뱉은 말을 누군가는 알아듣길 바라며
서둘러 이층 방으로 올라왔다
어제부터 준비한 듯 이틀간 풍겨오던 음식의 냄새가 이층까지 올라왔지만
부러워하지 말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말며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말기를
이렇게나 노력형의 내향인은 잠시 전전긍긍하다가 고요가 이어지자
고독한 크리스마스에 지난 일들을 정리한다
오후에는 나가지 않기로 한다
그냥 방에 조용히 머물며 오랜 시간에 걸쳐 이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만히 욕심 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 시간도 귀하고 좋으니까
테라스에서 해가 지고 불빛이 켜지는 것을 본다
오늘 하루가 또 잘 지나가고 있고 그걸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