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29번의 잠 - 9 로마 주현절+대중교통투어+성과성당의야경+취조
꼭 8번의 잠, 로마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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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주방에 잘 등장하지 않는 아주머니는
마치 정보 담당인 듯 전해줄 내용이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난다
오늘은 어제도 얘기한 주현절 휴일이라서 나보나 광장에서 종일 festa (축제)란다
우리식으로 아저씨는 오지랖퍼고 아주머니는 츤데레다 나는 후자가 좋다
게다가 아저씨가 슬슬 선을 넘는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잠깐 잠잠해지면 햇살이 따가울 정도인데
문제는 거의 모든 순간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하다 보니 오늘은 어마어마한 대중교통 투어를 하게 됐다
여행자만을 위한 교통패스가 이렇게 유용하게 쓰인 날이 없다
버스를 타거나 트램을 타거나, 노선에 아는 지명만 나오면 무조건 교통편으로 이동
정오가 되기 전에 나가서 돌아올 때까지 대체로 모든 동선은 나의 다리가 아닌
다양한 바퀴에 맡겨졌다 이런 경험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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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트램을 타고 종점으로 향하며 창 밖으로 거리를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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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트램을 다시 타고 돌아오면서 미리 봐 두었던
콜로세움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내린다 드넓은 잔디의 길과 큰 나무들이
턱이 턱 벌어지는 장관을 이루고 있는 그곳을
큰 나무가 휘청거릴 정도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모래 바람을 뒤집어쓰며 끝내 걷다 온다
근처에서 발견한 (로마에서는 너무도 흔한) 교회에 들어가
잠깐 혼미해진 정신과 몸을 다시 바짝 치켜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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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51번 버스를 타고 베네치아 광장으로 향한다
또 한 번 낮의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보고 깜삐돌리오 광장까지 찍고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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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번 버스를 탄 것은 종일 축제일 거라는 나보나 광장을 가기 위해서였는데
하차하는 정거장을 당최 알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종점까지 가버린다
나보나 광장 가는 걸 아주 쉽게 포기해버리고 만다 다 날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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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으로 건너가 589번 버스 & 메트로를 타고 Barberni 역에서 내려
주변을 구경하고 봐 두었던 마트에서 과자와 피자를 샀는데 이번 피자는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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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피해 쉬면서 창 밖을 볼까 해서 노선이 긴 잘 모르는 3번 버스를 탔다
근데 이건 공항으로 가는 버스였던 것이다 점점 한갓져 가는 주변 풍경에 놀라
넓어진 도로의 공항 표지판을 확인하고 냅다 아무 데나 내렸는데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이건 큰일 날 뻔했다 그 당시에는 겁이 좀 났고 해가 지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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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내린 곳 정류장에서 (아는 이름이 있길래 가슴을 쓸어내리며) 280번 버스를 탔고
창 밖 거리를 유심히 확인하다 메트로 역이 나오는 곳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려는데
오늘 이미 탄 적이 있는 반가운 87번 버스가 있어 지하철 대신 좋아하는 버스에 올랐다
옆자리 아주머니께 나보나 광장 가는 길을 물어 두 번째 도착을 시도하지만
내 촉이 어딜 가겠나 이번엔 종점까진 안 갔어도 두 정거장을 잘못 내렸다
로마의 길은 통한다는 말을 믿고 길을 따라 걸어보지만
나보나 광장 찾기가 트래비 분수 찾기만큼 쉽지가 않다
결국 근처 예쁜 가게들을 실컷 구경하는 것으로 나보나 광장의 축제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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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향해가는 시간이 가까워 오고
어제 못 본 천사의 성과 베드로 성당 야경을 보기 위해 다시
81번 버스가 서는 정류장을 찾아 거의 30분을 버스를 기다려 (왜 왜 왜) 오늘
처음으로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했다
밤의 성과 밤의 성당이 꽤 오래 집으로 가는 발길을 붙잡았다
누적된 피로와 추위를 버틸 수 있게 하는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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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81번 버스를 타고 돌아오다가 언뜻 눈에 익은 (집 근처 어디에서 봤다) Migiovanni를
지나쳐 내렸는데 이번엔 방향을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꽤 헤맨 후에
(집으로 가는) 3번 트램을 타는 곳을 발견했다 날은 이미 깊숙이 어두워졌고
이제 그만, 오늘의 투어를 끝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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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 3번을 타고 돌아오다가 콜로세움 두 정거장 전에 내린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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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광장 + 포로 로마노 + 깜삐돌리오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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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나 광장으로 가려던 계획의 첫 번째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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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던 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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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나 광장으로 가려던 계획의 두 번째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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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제대로 내려서 찾아온 밤의 천사의 성 + 밤의 베드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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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핫초코부터 마셨다
대중교통을 타고 돌아다녔어도 진이 빠졌고 으슬으슬 떨렸다
아들 내외가 아직 가지 않고 집에 머무는 중이었는데
아주머니의 며느리일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여자분이 막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때 마치 취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건 나의 착각인가
아닐 수도 있고 그렇다 하더라도 부모님 걱정에서 그랬을 수도 있다
어쨌든 신상이며 여행 일정이며 긴 기간의 이유와 목적까지
마치 입국심사를 받는 모양새로 대화를 마친 후에 얼른 방으로 들어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따뜻한 물 한 잔 더 마시니 한결 나아졌고
그 추위에도 (사진 상으로 보니) 신나게 돌아다녔으니 잘 보냈다고 결론짓는다
그래도, 어쨌거나,
오늘은 흔치 않은 참 요상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