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29번의 잠 - 10 로마 강강강추위+극심한두통+부실한하루
꼭 9번의 잠, 로마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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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든 게 부실하다
먹는 것도 부실 잠의 질도 부실 외출 시간도 부실 사진도 부실
그중에 가장 부실한 것은 난방
그래서 추위에 열정의 기세가 꺾이고 로마에서 처음 심한 두통을 앓았다
오늘은 이렇다 할 것이 없다
왜냐면 살다 보면 하루가 언제나 꽉 채워지는 건 아니고
나는 지금 여기서 여행보다는 삶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것이고
그러니 그럴 때도 있는 거다, 라는 변명
아침에 일어났을 때 미세 두통이 시작됐다
그 와중에 꾸역꾸역 대충의 아침을 먹고 다시 드러누웠다
약이라도 먹게 되면 빈 속은 안 되겠다 싶어서였다
하지만 약은 최대한 자주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기에 다시 누워 약한 두통이
제 풀에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나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두통이 시작됐을 때 금방 가라앉을 거라는 헛된 믿음을 가진 것, 하나
이른 아침부터 머리를 감고 조용한 집 안의 공기에 민폐가 될까 봐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지 않은 것, 둘
두통일 때 더 예민해지는데 추운 공기에 어쩔 수 없이 전기 히터를 틀었다가
환기가 되지 않는 방 안에서의 히터 냄새에 증상이 심해지도록 방치한 것, 셋
그리고 로마의 잘못이 있었다
(아래에 진짜 어마어마한 뉴스를 보고 그 이유를 더 절실히 알게 됐지만)
강강강추위에도 난방이 이 꼬락서니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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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오후에 잠깐 나간 것은 자꾸만 서울이 아니라는 생각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의무감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뭘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늘 가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떼르미니 역 지하상가를 둘러본 게 다였다
SALE이라는 영어보다 새롭고 예쁜 SALDI라는 이탈리아어를 찍었고
우리 상가에도 sale이라는 글자보다 우리 글로 할인 두 글자가 쓰이면 좋을 텐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좀 했고
추운 날씨에 뼛속까지 으스대는 느낌에
두통에 이어 몸살까지 오는 건 아닌가 염려되어 얼른 돌아왔고
잠깐의 외출에도 만약을 대비해 따뜻한 물로 오래 샤워를 했다
아저씨가 콧물과 기침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거봐 춥잖아 나만 엄살 피웠던 거 아니잖아 그런데 왜 로마의 난방은 이 모양인 건가
방으로 돌아와 늘 보는 초록 창의 뉴스를 보고 있는데
로마 20년 만의 강추위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나의 두통에 대한 진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리 중앙난방이라고 해도, 어떻게 이런 난방 시스템을 고집할 수 있는 거지
왜냐면 그렇게 자고 오전에도 자고 오후에도 샤워 후 또 누웠는데
pm 10시가 되자 귀신같이 난방이 멈춰버린 것이다
반대쪽 침대에도 있던 이불을 가져와 이불을 겹겹이 덥고 누웠다
그래.. 겨우 한 달짜리 로마 생활이지만
늘 로마를 겪는 사람들과 똑같이 겪어야지 별 수 있나
그게 좋은 면이든 나쁜 면이든
다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거지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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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쓰이는 글은 결코 흔치 않은
2022년 1월 8일 현재에
그, 1월 7일의 글을 하루 늦게 쓰기를 마친 후 덧붙이는 글이다
해는 다르고 같은 달과 날에 맞춰 하루하루 올리는 글은
가끔씩 (오늘 포함 세 번 정도였던 것 같다) 하루 늦게 올리기도 하는데
그건 현재의 사정이 있어서다 그리고
어제 날짜의 글을 오늘 쓰는 현재의 사정은
조금 어이없이 놀라워 이렇게 흔치 않게 그 사정에 대해 글로 적어보려는 것이다
같은 날짜의 글을 매일 올리다 보니 나는 이틀 전
현재의 요일과 일기의 요일을 헷갈려 일기의 요일대로 현재의 일을 처리해 버리는 실수를 했다
그건 나의 판단과 의지가 잘못 시킨 일이니 그렇다 치자 그런데
나는 어제 새벽부터 시작해 하루 종일 매우 매우 매우 아팠다
고질적인 두통이 현재의 겨울, 서울의 겨울에도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그래서 오늘에야 어제의 글을 쓰려고 그 여행의 일가장을 펼쳤다가
같은 날짜의, 다른 해의, 다른 곳에서, 이렇게 똑같이 아파서 고생한 내 상황을 목격했고
너무 우습고 이상한 마음이 든 것이다
우연을 현상으로 만드는 일이야 인간의 상상력과 최종 결론이 저지르는
망상에 가까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이상한 우연 아닌가
나만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이건 나의 일기 나의 글 나의 마음의 문제니까
그렇게 얘기하면서 굳이 덧붙이는 말
이렇게 현재의 심경과 생각을 굳이 담은 것에 대해
이 글을 읽는 이가 있다면 이 허튼 상관관계의 결론을 조금은 이해해 주시기를
글이란 것이 내 생각이었으나 적히고 공개되는 순간
내 것이 아니기도 한 것이어서
괜한 염려로 소심한 인간은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 한...... 다
급,
어제 자 오늘 글 이만 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