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절망사 외전 ver.

차가운 바람이 잦아들고, 봄꽃들이 피기 시작하면 나는 널 떠올렸다.

by Jin
오늘의 찰나(?)는 저의 첫 브런치북 절망사 외전입니다. 사진을 찍으러 이곳저곳을 걷다가 문득 그때의 감정이 스며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조금 슬퍼졌습니다. 이전 이야기를 모르셔도 괜찮습니다. 짝사랑을 하는 사람이 느끼는 봄으로, 한 장면처럼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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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혹시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은 적 있어?”


나는 너를 향해 물었다. 너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웃었다. 그 미소를 보고 있자니, 까끌까끌한 나무 틈 사이, 겨울 내 잠들어 있던 꽃봉오리가 내 몸 어딘가에서 금방이라도 피어날 것처럼 간질거려 자꾸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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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이 이상했어?”


내가 되묻자, 너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다운 질문이라서.”


나답다…?

너는 나를 단 한마디로 정의한 적이 없었다.
나는 너에게 그저 ‘나’였고,
너는 나의 전부였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답다’라는 말에 집착하게 된 건.


나는 그 말의 뜻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너를 바라봤다. 굳이 말로 옮기자면, 얼이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멍청해 보였을지도 몰랐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손바닥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숨기려 괜히 허벅지를 쓸어내렸다.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너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눈동자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너와 다른 곳을 바라보는 척. 눈은 둘, 코는 하나, 입도 하나인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너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탐해서 안 되는 것을 탐하는 이브가 된 것처럼. 그래서 너의 마음을 얻어 낼 수 없는 벌을 받나 싶었다.


웃는 얼굴이 어딘가 슬픈, 평범한 너. 너를 보고 있자니 나는 쓸데없이 슬퍼졌다. 쓸데없이 나를 살고 싶게 해 놓고, 이제 와서 그렇게 슬프게 웃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너를 위로하고 싶었다. 나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위로는 너에게 하등 도움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내 손톱이 손바닥에 박혀 멍이 들 정도로 손을 쥐었다.


IMG_8722a.jpg Jin


그렇다. 내가 너에게 다가갈 수 있는 거리는 여기까지였다. 너와 나의 관계는 늘 봄 같았다. 뜨거운 바람이 부는 건 아니었지만 어딘가 더웠고, 눈에 보이지 않는 햇빛이 나를 비추고 있었지만 차가운 바람이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끝내 좁혀지지 않는 너와 나의 틈은 네 곁에 있으면서도 아닌 것 같게 만들었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지만 나는 너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너는 몰랐겠지만, 내가 잡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너의 가방 끈이나 옷자락뿐이었다. 그래서 너는 나에게 애매모호한 봄이었다.


빈 벽을 향해 기도하는 신자처럼, 응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그런 봄에 기댈 수밖에 없는 나는 봄나무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저 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겨울 끝에 삐죽 올라온 새싹 하나에도 설레듯, 너의 어떤 모습이든 결국 설레고 마는 너는 나의 봄이었다.


차디찬 바람이 시리지만

그 속에서도 움트는 싹이 있어
그래서 더 아름다운 봄.



언제나처럼,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단 한 번도 늦은 적 없는 계절. 마치 오래전부터 약속이라도 한 듯, 잊지 않고, 망설임 없이. 햇살은 조금 더 따뜻해졌고, 바람은 덜 매서워졌다. 얼었던 땅도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봄은 묵묵히 제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어쩌면 봄은 모든 계절 중 가장 성실한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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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478a.jpg Jin


<눈 온다!!!>


손에 쥔 핸드폰에 부산 지인들이 창밖을 보라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언제 잠이 들었었나. 그 메시지에 잠이 깬 나는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스스로에게 으르렁거렸다.


하.

미친.


그리고는 찬 바람에 정신을 차리려는 듯 베란다 창문을 열고 한참을 베란다에 서서 눈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IMG_6481.JPG Jin



저 산이 무채색으로 보일 만큼, 이례적으로 부산에 눈이 쏟아졌다. 열어둔 베란다 사이로 눈이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 나는 손을 뻗어 그 눈을 잡았다. 손바닥에 닿자마자, 눈은 녹아내렸다. 흔적도 없이. 저 눈은 모든 부산인들이 예상한 것보다 오래도록 맹렬한 기세로 내리지만, 결국 쌓이지 않겠지 싶었다. 카메라를 들고 베란다로 나가 눈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끝내 쌓이지 않을 눈을 사진으로라도 남기고 싶었다. 그래야 눈이 내렸다는 걸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IMG_6987b.jpg Jin



그렇다. 나는 잠시 잠든 사이, 네가 나를 향해 웃는 꿈을 꾸었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나는 정말 괜찮은데, 너를 체념한 내 마음이 가끔 불쏘시개가 되어 작은 불씨에도 화륵, 하고 타오른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너와의 기억이 나를 끝내 울컥하게 했다. 너는 이미 잊었을 기억과 흔적 위에서 나는 활활 타오르다 재가 되어 형태를 잃고 무너져 내릴 테지. 그리고 나면, 나는 또 괜찮아지겠지.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는 너를 체념한 것이다.
절망 없는 사랑이 어디에 있나.



IMG_8725a.jpg Jin



또 봄이 왔다.

내 마음에 맺지 못할 꽃이 핀다.

열매를 맺지도 못할

나의 마음 따위가

피었다한들

의미가 있을까.

일장춘몽일 뿐인 것을.





PS.

절망사 1화에서 말한 것처럼 봄이 되면 마음이 발작하는 것처럼 널을 뛰지요. 첫 사람과의 만남은 그런 건가 봅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첫 사람 하나쯤.. 가끔 떠오르잖아요? 아니에요? 저만 그래여? 다들 떠오른다고 해줘여-_-)a


사실 절망사 외전이 또 있어서..... 이것도 올릴까 말까... 고민을 했다고요.. 절망사는 저의 첫 브런치북이자 완결북이자.. 저의 아이텐티티라서.. 아하하하하하하하하ㅏㅏ ㅏ ㅏ ㅏ ㅏ ㅏㅏ (도..도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