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나에게 시절인연이란,

꽃이 피고 지는 것과 같았다.

by Jin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시절인연' 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이 단어를 바라보며 사람이 떠나는 것에 대해 내 잘못이라 생각하던 우리의 정서를 긍정적으로 잘 풀어나간 단어다 싶었다. 사람으로 인해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기에 딱 좋은 단어.


Jin



나에게 시절인연의 다른 말은 '꽃이 피고 지는 일' 이었다. 지는 벚꽃을 내 힘으로 잡을 수 있던가. 피었다 시드는. 태어났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사계가 속절없이 흘러가는 것을 프레임에 담을 수는 있지만, 멈출 수는 없는 일임을 사진을 찍으며 어렴풋이 깨달아 나갔었던 것 같다.


최근 나의 시절인연이 지기 시작했다. 꽤나 오랫동안 피어있었지만 이제 귓가에 살짝 스치는 바람에도 꽃잎이 우수수수 떨어져나갔다. 이 꽃이 지고 나면 어떤 열매가 맺힐까. 아마도 삶을 살아감에 있어 긍정적인 열매는 아닐터였다.



Jin



내 말을 심각하게 듣고 있던 친구가 말 했다.


"너 화 안나?"

"화 안나"

"내가 이렇게 화가 나는데?"

"화를 내서 달라지는 게 있어?"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에게 대답했지만, 그제서야 나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막 논문을 끝내고 교수님에게 내 기존 논문에서 빼라고 했던 부분을 자신이 1저자, 나를 2저자로 이미 올리고 학회에 등록했다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와 같은 감정이었다. 그때 교수님이 나에게 "너가 했으면 통과 안되는 내용이야." 그 전화를 받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휩싸였었다.


10년만에 연구실로 다시 논문을 쓰겠다고 돌아온 나를 보며 교수님은 손해와 이익을 따졌을까.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나를 보며 손해와 이익을 얼마나 따졌을지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겨워졌다. 세상에 손해와 이익을 따지지 않는 관계라는 것은 없는 것일까. 사람이 지겹다기 보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지긋지긋해졌다.





그때 내 인생이 쓸모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착하게 사는 것이 하등 소용없음을. 이 시대에 열심히 착하게 산다는 것은 그저 호구일 뿐이구나라는 생각에 나는 이 생을 그만 놓고 싶었다. 나를 힘들게 한 모든 사람의 이름을 한자한자 꾹꾹 눌러 써 너희 때문에 나는 생을 놓는거야. 라고 적어두고 미련 없이 벚나무들에게 멀어지는 저 벚꽃 잎처럼 낙화하고 싶었다.


그날 밤 꿈을 꿨다. 어떤 여자가 배우자의 아이를 가졌다고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닌가. 그 여자를 앞에 두고 나는 그 아이를 지우라 할 수도, 낳으라 할 수도 없이 그저 울기만 했었다. 소리를 지르는 그런 울음이 아니라 바닥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소리도 내지 않고 우는 모습을 영화를 보듯 꿈을 꿨었다.



Jin



아- 나는 울고 싶었던 거구나.

아- 나는 원망하고 싶었던 거구나.

아- 나는 화를 내고 싶었던 거구나.



하지만, 내 마음을 알아차렸음에도 울 수 없었다. 언젠가 부터 울지 않게 되었을까. 우는 법을 잃은 듯이. 화를 내 본적이 언제지? 화내고 울어봤자 바뀌는 것 없는 세상에 나는 체념한 듯 싶었다. 마음 한 구석에서 원망하고 화를 내면 내가 쌓아왔던 관계를 부정하는 것 같았달까.


나에게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나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 무대응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감정에 돌을 던지지 않는 것. 얇은 벚꽃 잎 하나만으로도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것 같은 그럼에도 그 자리에 어찌 할 수 없는 허망한 감정이 가득 찼다.



Jin



나 대신 그 참한 친구의 입에서 나쁜 말이 나오는 것을 들으며 나는 그저 웃으며 "괜찮아"라고 말했다. 나에게 그렇게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내가 문제인 것일까. 그렇게 해도 된다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문제일까. 허망한 마음이 나에게 가득 들이 차니 잠잠했던 감정이 일렁이며, 나의 정서적인 문제들이 요시땅! 외치며 모두 출발선에 섰다.


Jin



2026년 초반 벚꽃 사진과 후기 벚꽃 사진의 괴리감이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집에서는 숨을 쉴 수 없어 온 동네를 계속 지박령처럼 돌아다녔다. 찬란하게 부셔지는 빛을 가득 담아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아무리 내가 시절인연을 '꽃이 피고 지는 것'에 비유한다 하지만.. 네게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Jin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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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는 끝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끝을 알고 피어나는 꽃처럼, 한번 시작된 인생 역시 생을 다할 때까지 나아갈 뿐이다. 되돌릴 수 없는 레일 위에 놓인 내 인생의 기차는 수많은 간이역에 몸을 맡기지만, 그 기차에서 완전히 내릴 수는 없다.





그냥 매 순간 저 꽃나무처럼 살고 싶다.

펴야 할 때 피고, 져야 할 때 지는.



Jin



ps. 우리 작가님들은 꽃길만 걷기를 바라며_ 뚱땅뚱땅 소리가 날 것 같은 신호등군2 사진도 함께 올립니다. 올해의 귀요미 사진이죠. 자매품 신호등군1도 있어요. 신호등군1은 빨간 색이겠죠? 키득키득. 댓글 억지로 안 쓰셔도 .. -_- 됩니다. 저에게 댓글 안달아도 저는 댓글 달고 싶으면 다니까요. 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