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2. 아이러니.
그와의 연애가 좋은 기억으로만 가득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기엔 나는 너무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내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 사람인지, 내 안에 어둡고 깊은 마음이 얼마나 자주 고개를 드는지 그와 함께하면서 더욱 또렷이 알게 되었다. 그런 감정이 문득문득 밀려올 때면, 나는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행복한 지금의 나를 남겨두기 위해. 이 순간의 감정을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도록. 기록해두지 않으면, 자꾸만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았던 그때로.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것들보다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것들에 마음이 쏠렸다. 아름다운 것들은 어떤 각도에서 어떤 상황에 찍혀도 언제나 아름다웠다. 충분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 것들의 특권.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어떠한 조건 위에서도 선명하고 충분했다. 아름다운 것들은 보통 다 갖춰진 배경 위에 있었기에. 내가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어떤 감정을 품고 찍든 결과는 늘 괜찮았다.
하지만,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지는 것들. 그 계절 안에서는 다시는 찾지 않는 것들. 누군가의 시선에선 이미 저버려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것들. 더는 사랑받을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찍을 땐 달랐다. 구도를 한참 고민해야 했고, 빛의 방향을 조절하고 그림자를 줄이기도 때로는 강조하기도 했다. 한 장면을 오래 들여다보며,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호흡을 가다듬고 그 안에 조심스럽게 감정을 눌러 담아야만, 겨우 하나의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나는 네 옆에서 아무 수식어 없이
나였던 적이 있었을까?
나는 너에게 늘 빛나고 아름다운 사람이길 바랐다.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밝고 가벼운 너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사람. 어두운 마음은 감추었고, 흔들리는 마음은 애써 숨겼다. 이상하게도 너 앞에서는 항상 '괜찮은 나'여야만 했다. 너는 단 한 번도 나를 바꾸려 하지 않았고, 네 기준에 맞추라고 요구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늘 스스로에게 수식어를 붙여 포장했다.
찬란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
예쁜 것들.
이미 다 저버려, 어울리지 않을까 봐. 초라한 나를 네가 보면 실망할까 봐. 그래서 찬란하지 않은 나는 너 앞에서만큼은 늘 애썼다. 마치 나 아닌 나를 연기하듯이. 왜 너와 있을 땐 나는 늘 예쁘고 반듯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왜 나는 단 한 번도, 너에게 흐트러진 나를 허락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다 생각한 내 마음들이 만들어낸 오래된 결핍이었을까.
반면, 그는 너에게처럼 찬란하고 아름다운 무언가로 보이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만났고, 서로의 가장 일상적인 모습부터 마주했기 때문일지도.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아니라, 꽃잎이 다 져버린 뒤 쓸쓸히 드러나는 가지처럼, 이제는 아름답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순간들. 그런 내 단면들을 그는 이미 조금 알고 있었다.
나는 감정에 기민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표정, 말투, 미세한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에너지 보존의 법칙처럼, 생활 패턴은 귀찮음의 정점이었고, 일상에서는 발에 걸려 넘어질 뻔한 그런 사소한 실수들을 달고 살았다. 믹스커피 봉투에서 유해물질이 나온다 한들, 그걸로 커피를 저어 마셔도 아무렇지 않았다. 종이컵에 믹스커피 두 개를 붓고, 남은 봉지로 휘휘 젓고 있는 나를 보며, 그가 말했다.
"디자이너님, 거기 커피 수저 있어요."
순간 멈칫했지만, 늘 그렇듯 배시시 웃으면서 '괜찮아요, 안 죽어요.' 하고는, 오히려 더 열심히 저었던 기억.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사랑방 사탕을 다글다글 입에 굴려가며 작업하던 날. 씹는 소리가 어쩐지 더 크게 들리는 날이면, 그는 언제나처럼 툭, 아무렇지 않게 말을 던졌다.
"오늘은 사탕 몇 개째예요?"
그 말엔 어떤 질책도,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눈치도 없었다. 그저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네가 어떤 모습이든 괜찮다는 것. 그 단순한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내가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으니, 그는 덧붙였다.
"디자이너님, 그렇게 먹으면 이 나가요."
아마 걱정이었을 텐데, 괜히 그날은 짜증이 났다.
"안 나가요."
그에게 반항하듯 사탕 두어 개를 더 입에 넣고, 더 세게 오독오독 씹었던 날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 책상에 엎드려 잠시 눈을 붙였는데, 점심시간이 끝나도 그는 나를 깨우지 않았다. 그렇게 사소하고 서툰 나의 모습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너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가 애쓰지 않아도 되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사랑받고 자란 것들은 따뜻함을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오는지 알고, 어떻게 되돌려줘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굳이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깊이 생각해 본 적 없고, 그런 세상이 있는지 몰랐기에 그런 것들을 부러워할 수도 없었다. 그를 만나고서야, 내가 모르는 따뜻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겪어 본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감정들.
다정함을 받는 게 어색했고, 사소한 배려 앞에서, 늘 당황하곤 했다. 행동이 아닌 태도로, 사랑받는 것이 익숙해져 본 적이 없어서. 온기에 익숙하지 않던 마음. 진심이 나를 향할 때마다, 그 마음이 버겁게 느껴졌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괜히 날 선 채 받아들이는 이 감정은 결국 사랑받지 못한 채 자라온 것들이 남긴 미숙함이었다.
어느 날,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앞에서 과호흡이 왔다. 숨을 들이마셔도 자꾸만 가슴이 꺼지는 것 같았고, 아무리 내쉬어도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았다. 몸은 뭔가 잘못됐다고 나에게 계속 알려왔다. 들숨과 날숨이 엉켜버린 듯, 숨이 아니라 불안을 마시는 것 같았다. 가슴은 자꾸 조여들고, 생각은 흐려졌고, 눈앞은 하얘졌다. 터지기 직전의 그 팽팽함이 내 안을 뚫고 나올 듯 밀려왔다.
나는 불안할 때마다 일부러 숨을 크게 들이쉬는 습관이 생겼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천천히, 깊게. 그건 일종의 신호였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스스로를 달래기 위한 방식. 숨을 가다듬고, 감정을 안쪽으로 꾹 눌러 담는 방식. 그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왜 가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뱉는지. 그리고 불면증이 있다는 것도, 수면장애로 밤을 견디기 힘들다는 것도. 모두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가장 초라한 계절의 나를. 꽃잎이 흩날리던 계절이 지나가고 남은 텅 빈 가지뿐인 나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화사한 시절은 이미 끝나 보기 좋던 모든 것을 벗어낸 채 맨몸으로 서 있었는 기분. 벚꽃이 다 져버린 후의 나무처럼, 한없이 적막하고 무방비한 모습으로. 그의 앞에 섰다.
숨고 싶은 수치심.
나를 애써 감추려 한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드러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너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도 그저 사랑스럽고 예쁘고, 귀여운 모습이라는 수식어가 가득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바랐다. 빛나지 않는 나라도, 으스러지고 약해진 나라도, 이런 나라도 괜찮다고 말해주길. 더 이상 예쁘고, 밝고, 화사한 그런 사람이 아니어도. 나 자신으로도 충분히 받아들여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이제 더는 찬란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단히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빛나던 존재들.
빛나고 찬란한 것들이 부러워졌다.
죄송합니다.
이번주는 제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댓글을 달아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새벽 다섯시에 도시락을.. 철프덕. 절망사를 아껴주시는 모든분들께 감사합니다. 곧 일상으로 복귀하겠습니다. :) Jin 드림 ( 넙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