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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Dec 14. 2018

일단은 뭐라도 써보기로 했다

(1) 가오슝에서, 이제야

아마도 지지난주, 학교 축제서 아이들이 요들에 맞춰 깡총깡총


인생이 힘들 때 흔히들 하는 착각이 있다.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면 뭐라도 될 거 같다는 유혹, 어쩌면 인생은 놀라운 기회들을 감추고 있고 내가 시간이 없어 들춰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상대적으로 인생을 별로 오래 살지는 않았는데,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절반은 그랬다. 나는 늘 바빴고, 바쁘지 않은 삶을 꿈꿨으며 그럴 때의 나는 예술가이자 천재였고, 멋진 사람과 사귀며 인생을 즐겼다.

그러나 실제의 나는 시간만 나면 나는 게으르고 우울한 사람이 되어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해가 지고 뜨는 거나 구경했다. 하루 종일 핸드폰을 들여다보느라 손가락 터널 증후군 비슷한 게 생기고, 안구 건조증이 생기거나 때로 허리가 아파서 똑바로 누워 자질 못했다. 나만 그랬을까? 그렇진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모두가 그랬다고 하면 슬프니까 나만 그렇다고 하자.


그런 내가 교환학생을 지원한 건, 아주 합리적인 충동이었다.

열두 살쯤의 나는 내가 스무 살만 되면 해외에서 살 만한 능력을 갖춘 멋쟁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무 살의 나는 세상엔 나보다 대단한 사람이 많다는 걸 배웠다. 여전히 해외엔 나가고 싶었고 기왕이면 남들에게 그럴듯한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해 겨울부터 토플을 배우겠다고 영어학원을 다녔다. 신통치 않았다. 기차를 타고 오고 가며, 자꾸 밀리는 숙제와 들인 돈에 비해 느릿하게 증가하는 실력을 보며 내가 참 불효녀란 생각을 했다. 봄이 왔고, 여름에는 인터넷 강의를 끊었다. 문법은 아무리 해도 모르겠고, 회화는 혼자 할 땐 잘해도 막상 녹음해야 할 타이밍이 오면 고장 난 카세트처럼 버벅거렸다. 독해 공부는 아무리 해도 모르는 단어가 계속 나오고, 리스닝은 어느 날엔 괜찮았다가 어느 날엔 전혀 모를 소리에 속이 안 좋아졌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소득도 없이 2학년이 되었다.

그 해는 너무나, 정말 너무나 힘들었기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침대가 어색해졌고 글자에 발이 달려 자꾸 분해되어 읽혔다. 성적은 올랐는데 모든 게 힘들었다. 밤바다로 자꾸 걸어 들어가고 파도는 계속 나를 향해 치고, 넘어지긴 싫어서 버둥거리기만 했다. 차라리 쓰러지면 대여섯 시간이라도 잘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다음 해는 휴학했다.


한 학기 동안 나는 소라게처럼 침대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우연히 글을 쓸 기회를 얻어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한 장에 한 시간 걸리던 시절이었다. 반년 동안이 노력은 고스란히 수포로 돌아갔다. 근성도 없어 자료조사도, 그렇다고 타고난 실력도 변변찮아 그저 그런 당연한 결과를 얻었다. 방학 동안에는 한 회사에서 인턴을 했다. 남은 건 사회에서 내가 얼마나 하찮은지 곱씹는 것뿐이었다.


이처럼 다시 학교로 돌아간 내가 교환학생에 지원하게 된 건 아주 당연했다. 비록 시간을 쪼개가면서 6번의 시험을 보고 20만 원 가까이를 낭비하고 그마저도 모두 떨어져 결국 자기소개서로 사기를 쳐가며 승부를 봤지만. 돌이켜 보면 신기한 경험이다. 실패하고 실패하면서 어떻게 끝을 볼 생각을 했을까?


집도 학교도 한국에서는 그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었다. 어딜 가도 패배자였고, 뭘 해도 시간낭비 같았다. 매일같이 그런 생각을 했다. 하루는 '이렇게 조금 살았는데도 왜 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까' 하고 의아해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날부턴가 그런 생각을 안 하게 되었다. 어째서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게 바로 이 메거진의 목적이다.

매일매일 하루에 한 편씩, 뭐라도 쓰면 뭐라도 되겠지. 하루의 한편이 안 되면 일주일에 한 편이라도. 적어도 포기하지는 않길 바란다.


여기 와서, 아니 사실 아주 전부터 글을 쓰는 걸 미뤄왔었다. 예전에는 글을 써서 노벨상을 받고 싶었다. 한강 작가님, 박완서 작가님처럼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었다. 이제는 그만한 열정도 능력도 없다는 건 아주 잘 안다.

그런데도 여전히 글 쓰는 게 좋다. 누군가를 붙잡고 종일 궁금하지 않은 얘기를 늘어놓는 게 너무나 즐겁다.


여기는 이제야 여름에서 가을이 된다. 나는 이제야 글을 쓰기 시작했고 돌아가기까지는 이제 한 달.

내일은 패배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번에는 정말로 성실한 내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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