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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Dec 16. 2018

3. 인천에서 출발하여

가오슝에서 세 번째

+ 오늘은 사정상 글쓰기가 불가능해, 교환학생을 하러 오던날 비행기에서 썼던 글로 대체합니다.


교환학생을 위해 떠나는 첫날이다. 이제야 실감이 좀 난다. 나는 한국에서 조금 떨어진, 그렇지만 갑자기 집으로 갈 수는 없는 곳에서 6개월을 지내게 될 것이다. 좋을지 나쁠지는 모르겠다.

때때로 난 너무 많은 것을 걱정하고 기분나빠하고 불안해하고 슬퍼하고 인생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모를때도 많다. 가오슝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나는 뭘 위해서 먼 곳으로 가고자 했을까? 한학기는 잘 시작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것도 많고 잘할지도 모르겠지만 성격만 좀 죽이면 어쩌면 잘 지낼지도 모른다.

집에서는 원할때 소리지르고 노래부르며 춤췄지만 잒에서는 그럴 수 없겠지. 대신 다른 기분 좋은 일들을 찾아봐야 겠다. 인천에 살면서도 난 단 한번도 인천 여행을 떠나본 적 없다. 남양주에 살면서도, 또 안산에 살면서도 그랬다.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난 최선을 다해서 그럴 수 없는 이유들을 만들어냈다. 이제는 그럴수가 없으니 매일매일 어디에 가고 싶은지 생각해 보고 주위를 둘러봐야겠다.


가오슝은 일년내내 여름이라지. 겨울이 없는 나라는 어떨까. 여름과 가을만 있다면? 눈이 내릴 기미도 없이 매달 하늘이 맑다면? 겨울은 그립지 않은데 가을은 좀 그립다. 가을 바람을 충분히 느끼지 못해서 아쉽다. 일년중에 딱 두세주만 불어오는 찬 바람. 그리고 그 뒤에 가득한 아직 떠나지 않은 여름. 벌써부터 한국이 많이 그립다.


나는 사람들을 얼굴로 몸매로 옷차림으로 많이들 구별하며 살았다. 한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내가 자꾸 초라하단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랬을지도. 내가 예쁘다고 잘났다고 내 나라가 훌륭하다고 생각할수록 대단할 수도 있는 그 일면에 숨어, 어쩌면 계속해서 진짜 나는 초라하단 말을 돌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남을 보면 가볍게 말을 걸고 싫으면 말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사는 기분은 어떨까? 어쩌면 많이 외롭고 어쩌면 많이 기쁘고.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글을 많이 써볼까하는 생각도 든다. 매일매일 일기를 써보면 사는게 어떤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한국에 있었던 지난 육개월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수시로 싸움을 걸었다. 사소한 것들에 쉽게 기분나빠졌고 내가 무시당하지 않을까 싶어 늘 전전긍긍했으며 그 결과 인생에 다른 중요한 것들 말고 자잘한 분노에 휩쌓이곤 했다. 한편으로 나는 무시당해 마땅한 인간이었다.

엄마 친구 교수님 은행 직원 등. 나는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쳐놓고 상대가 나에게 실망할까봐 두려워하는 비겁한 짓을 해댔다. 상대를 다 안다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늘 내 첫번째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냥 그런 말을 했고, 그런 행동을 했고, 그런 사실 별 문제가 아닌 일들을 가지고 일을 참 복잡하게도 만들어왔다. 앞으로는 딜라지고 싶다.

화내지 않고 웃는 연습을 해야겠다. 초라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서는 방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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