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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Dec 17. 2018

알고 보면, 난 참 별로인 사람이다.

(4) 가오슝에서, 4번째

+ 오늘의 표지 사진은 퀸의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와 베이스인 존 디콘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살아있을 때, 그는 '프레디는 내 목소리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그를 가깝게 여겼다. 프레디가 죽은 후 존은 은퇴를 선언했다. 퀸을 좋아하기 전에는 이 사진을 보고 정말 정반대인 사람이겠다 싶었는데, 퀸을 좀 좋아하고 나니 저렇게 헐벗고 노래를 부르는 프레디와 양복을 차려입고 베이스를 치는 존의 모습이 정반대라 사랑스럽고 참 보기 좋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친구 민이가 왔다 갔다. 대학시절 알게 된 민이와는 3년 동안이나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나는 꼬치꼬치 불만이 많고, 민이는 넘어갈 건 넘어가고 못 받아들이겠는 건 서로 입장을 제시해 이해해나가는 매우 민주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가끔 "민이같이 착한 애는 왜 너랑 놀아준대?" 하고 묻곤 했다. 물론 그 말은 맞는 말이지만 본질적으로 억울하다. 


세계적인 락스타, 프레디 머큐리는 여러 사람들과 문어발처럼 사귀었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문란한 성생활을 문제 삼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도 그 주위에는 그가 죽자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없다고 결심한 친구나, 30년이 넘도록 그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 결국 영화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게다가 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는 참으로 미워할 수 없이 사랑스럽다. 분명 정 떨어질만한 짓을 하는데, 보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야박할 정도로)


우린 다 우리를 참아주고, 받아주는 친구들과 함께하고 있다. 사실 진정 친하고 오랫동안 서로에게 도움되는 관계란 결국 그렇지 않을까. 완전히 참아주기만 해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런 관계를 요즘은 감정 쓰레기통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반면 서로 참아주지 않아서는 약속된 파멸뿐이다. 내가 잘했네 네가 못했네. 서로가 그런 이야기만 하다가 언제 가는 끊어지게 되어있다.


어째서일까? 내 생각엔 우리는 결국 완벽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할 만 사람 사람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좀 이기적이고, 사실 많이 한심하더라도 누군가 그 점을 지적했을 때 '걔가 가끔 그렇기는 하지' 하고 애매하게 웃으면서도, 뒤에서 '네가 뭘 알겠어.' 하고 생각할만한 그런 사람을.


민이와의 이번 여행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민이의 첫 해외여행을 망치지 않으려고 하루에 두세 군대를 옮겨 다니는, 원래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정을 짰고 내 안의 맛집 데이터를 최대한 이용했다. 민이는 대만에 있는 나를 위해 기꺼이 비행기표를 끊었다. 일정은 당연히 괜찮은데도 별로인데도 있었고 밤마다 우리는 이런저런 문제로 의견이 부딪히기도 했다. 그래도 딱히 나쁜 여행은 아니었다. 민이는 웃으면서 갔고 마지막까지 내가 쥐어준 푸딩 밀크티와 춘권을 쥐고 공항으로 향했다.


민이가 가고 나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밤마다 자꾸 의견이 부딪힐만한 대화를 했을까. 그런데도 왜 우리는 나쁘지 않은 여행을 했을까. 며칠 생각해보고 깨달았다. 어쩌겠는가. 나는 남과 이야기했을 때 내가 옳다고 하는 걸 버릴 생각이 추오도 없는 이기적인 놈이다. 그렇지만 그게 싸움까진 번지진 않았다. 그건 민이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흥분하면 이기적으로 말하고, 내가 옳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 고집 센 놈이란 걸. 그런데도 나랑 친구를 하고 있다.


나를 사랑하고, 나쁘지 않은 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참 이기적인 놈이고 재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건 참 중요한 지점이다.


한 동안 한국에 많은 에세이들의 주제가 '나를 사랑하자'가 메인이 된 적 있었다. 정신적으로 힘들어 상담을 받거나 책에서 도움을 청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번째로 맞이하는 관문도 바로 그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 쉽사리 미워하지 않는 것. 나 역시 그랬고, 몇 년 동안 그 숙제를 해결하지 못해 거기서 맴돌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를 사랑하고, 내 행동 하나하나 예쁘게 보기 시작하니 상상하지도 못했던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욕을 먹어도 '쟤 왜 저런데. 뭣도 모르고.' 하고 함께 무시해줄 친구가 생긴 느낌은 정말이지 특별했다. 거울을 보면 왜 이렇게 예쁜가 싶고, 잘 차려입은 날에는 '세상은 어떻게 내가 이리 예쁜 걸 모르지?' 하는 생각을 하고 그냥저냥 입은 날에는 '이렇게 애매하게 꾸며도 느낌 있네 대단하다'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고 머리도 나쁘지 않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 동안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외로움과 무력감에서 이제는 정말 벗어난 줄 알았다.


돌이켜보니 그게 시작이었다. 나는 참 예쁘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 있어서는 정말 별로고, 싫어 죽겠다.


얘를 들어 나는 자꾸 내 의견을 강요하려고 든다. 때로는 문맥에 상관없는 말이라도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억지스럽게 강한 단어를 사용한다. 그 말에 사람들은 부담을 느끼고 분위기가 종종 싸해진다. 피해의식도 많다. 아무도 내가 어떤 과거와 상황인지 모르는데, 대뜸 '너 어떻게 내가 그런 말을 해!' 하고 화를 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 걸 당한 남들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하고 당황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러니까. 그걸 남이 어떻게 알겠는가.


최근에 정말 재밌게 봤던 만화, 다음 웹툰이자 골드키위새님의 작품인 <죽어도 좋아>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짜증 나는 직장상사가 '죽어!'란 말에 진짜 죽어버리곤, 또 똑같은 하루를 시작하는 타임워프에 우연히 휘말리게 된 주인공 '루다'는 반복되는 하루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상사를 찾아가 남들에게 입 좀 조심하라고 화를 낸다. 그러자 상사는 '그럼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란 거냐? 그건 가식이야!' 하고 반박한다.


그 화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사는, 바로 다음이다


"다년간의 사회생활로 인간관계에 대한 교훈을 얻은 게 있다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하지 마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세상엔 이유 없이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또 반대로 이유 없이 자길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게 그렇다.

누가 착하고 나쁘고 상관없이 같은 사건에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입장 차이가 생겨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았다.


안 맞는 사람과는 정말 어쩔 수가 없다.

마음 떠난 사람에게는 미련을 가지지 말 것. 하지만 그래서 더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대하려고 노력했다.


돌려 말하고, 조심스레 말하고, 자신의 밑바닥을 내비치지 않는 것.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나쁘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날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닌, 날 좋아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그렇다. 나는 참 좋은 사람인데, 그렇다고 늘 좋은 사람이진 않다. 그럴 수도 없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나를 이십 년 넘게 보아오셨고, 생판 남인 나를 낳아 길렀는데도 내가 짜증을 낼 때면 더할 나위 없이 나를 싫어하신다. 최근에는 내가 뭔갈 잘못 알아 화를 냈더니, 전화하자마자 '그래 이제 끊자~ 너 자꾸 시비 걸어서 엄마 속이 상해.' 하고 대답하신 적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 엄마 공식 성명 상, 내가 도박을 하나 술을 좋아하나 쉽게 도망을 치나 노력을 안 하나. 가끔은 나도 자랑스럽고 좋은 딸이다.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다. 그러니 내 인생을 열심히 살아내고, 내가 나인 것을 긍정하고 이 같은 사실들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명예를 위해 행동하는 것. 그게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점이 아닌가 싶다.


근래에 에세이집들 상당수가 우울하고 불안한 나라도 사랑하자고 책을 끝내는 건 아주 당연하다. '온전히 나를 사랑하기'는 꽤 어려운 일이고 거기서부터가 진정 나를 알아가는 단계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온전히 나를 사랑하기'다음은 '내가 참 별로인 거 인정하기'가 남아있다.


 자기 객과 화의 시작이다. 뭔가 나쁜 점을 찾다 보면 대상은 끔찍하기만 한 존재가 되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한 뒤에 오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기에 나는 그 책들이 조금은 답답할 지라도 나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사랑해야 미워하는 것도 공정할 수 있다. 웃기게도 그렇다.


크리스마스에는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 민이와는 24일에 함께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기로 했다. 요즘 영등포 CGV에서는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싱어롱'이 인기라는데 대체 어떨까? 영화관에서 함께 퀸 노래를 떼창 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민이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길래 '그럼 그날 일반 상영으로 하나 보고, 싱어롱으로 한 번 더 볼래?' 했더니 '오 그럴까?' 하고 답장이 왔다.


이걸 또 좋다고 해주다니. 우리는 서로 참 많이 봐주고 있다. 사실, 이제는 그걸 좀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민이도 그럴까? 이걸 보내주고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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