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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Jan 10. 2019

햇볕 든 곳을 찾아내는 천부적 재능

가오슝에서 열두 번째 일기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 이번 분기 교환학생은 나까지 총넷이다. 다른 둘은 부산에서 또 하나는 대전에 온 친구로 여자는 총 셋 남자는 하나다. 나이 때도 키도 엇비슷하다. 넷다 90년대 중반에서 후반, 키는 170에서 엎치락뒤치락한다.


그중 내가 주로 함께하는 이는 대전에서 온 지영이다. 처음 그 애를 봤을 때, 보기만 해도 화려해 시선을 빼앗는 사람이란 건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란 걸 알았다. 우리는 둘 다 중국보다는 영어가 비교할 바 없이 낫고, 잘생긴 남자를 보는걸 밥을 먹는 만큼 즐거워하기에 대만에서의 많을 날을 함께했다.


나는 종종 그 애에게, '넌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러면 지영이는 그 진주 같은 눈을 빛내며 '언니! 나 그런 얘기 진짜 많이 들어!' 하고 맞장구치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참 구김 없고 행복하게 자란 사람이구나' 하고 내심 부럽워도 하고 동경도 했었다. 하지만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빛나는 건 그냥 그 애의 천성이었다. 태양이 그냥 밝고 아름 다운 것처럼, 지영도 그런 사람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삶의 부정적인 면에 집중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 하루에도 온갖 일로 기분이 나쁘고 진상 같은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데 내게 있어서 세상은 커피를 엎은 양탄자를 얼기설기 감춰놓은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누군가 내게 우리 인생은 원래 이렇게 얼룩덜룩하고, 그게 진짜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곤 어느 순간부터 나도 그렇게 여겼다.


학창 시절에 숱한 시간 동안, 종종 친구들을 가끔 나를 불러 네가 있으면 재미없으니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한다고 하자 담임 선생님들은 종종 나를 반 대표로 내보내 줬지만 그 어떤 대회에서도 상을 탄 적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역시 흰 티셔츠에 묻은 커피 자국 같은 존재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발견하지 못하지만 내게는 어떤 얼룩이 있고, 누구든지 그걸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늘 전전긍긍했다.


대만에 와서도 내 천성은 비슷했다. 남들과 즐겁게 대화하다가도, 내 영어가 너무 별로란 사실을 남들이 알아채지 않았을까 걱정했다. 중간발표를 유례없이 망한 어떤 수업에서는 모두가 내가 별 볼일 없는 사람인 걸 알고 무시하고 비웃을 거란 생각에 괴로웠다. 걸음마부터 시작한 중국어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내 바보 같은 발음과 더듬거리는 어눌한 말투가 못내 부끄럽고 괴로웠다. 수치감과 부끄러움, 그리고 괴로움은 내게 아주 익숙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턴가 살다가 그런 감정이 들 때면 '역시나, 또!' 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혔다.


사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살다 보면 사람은 엇비슷한 사람만 만나게 되어있다. 나와 내 친구들이 비슷하고, 우리 엄마와 엄마의 친구들이 비슷한 것처럼. 그런데 지영은 정말 혜성처럼 갑자기 내 삶에 나타났다.


지영도 화초처럼 곱게 자란 편은 아니건만, 그 애는 뭐든지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 지영에게 누군가는 순수하다고도 말했지만 나는 그런 표현으로는 지영을 다 담을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순수함이란 표현에는 아직 잘 모르는, 어리숙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그 애는 재능이 있다. 밝은 곳, 삶의 볕이 든 곳을 천부적으로 발견하는 그런 재능이.


처음 몇 달 동안 나는 그 애가 까다롭다는 생각을 했었다. 고기는 냄새가 나 먹지 않고, 습하고 더운 것은 너무 싫고, 중화권 향이 나는 요리도 별로, 내게는 천편일률적으로 느껴지는 디저트도 그 애만의 확연한 기준이 있다. 하지만 다른 데에서는 또 너그러웠다. 내가 때로 늦거나, 때론 무례한 어조로 말을 해도 지영은 맘에 담아두거나 상처로 여기지 않았다. 약간의 언쟁이 있어도 늘 '아~ 언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 말로는 친구에 있어서는 괜찮은 사람 아닌 사람, 재고의 기회 없이 가른다는데 아직도 나와 친하게 지내는 거 보면 그 기준 역시 아주 너그러운 듯하다.


물론 지영 역시 남들 앞에 나가 발표하는 건 그다지 즐기지 않았지만, 길거리를 걸으면서 또 수업 때 가오슝에 얼마 없는 한국인에게 느끼는 관심과 기대를 버거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관심받고 시선을 받는 것을 즐거워했다. 언젠가는 한 번 같이 훠궈 집을 갔는데, 주위 사람들이 밥을 먹으면서 자꾸 우릴 쳐다봤던 적이 있었다.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지영은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누군가 나를 쳐다보면 기분이 좋아.'라고 말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서 참으로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가끔 음식점에서 말을 못 해 곤란한 일을 당할 때, 지영은 나를 다독이며 '중국어를 잘하고 싶어서 힘든 거야. 이 상황 자체보다 유창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괴로운 거지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잘하게 돼. 나도 캐나다에 있을 때 그랬어.' 하고 말했었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한 번은 함께 타이베이 여행을 했던 적이 있었다. 밤이었는데 그날 서로에 대해 느낀 점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던 적이 있었다. 일견 무례한 말도 있었는데 지영은 오히려 신기하게 받아들였다.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해석하고 생각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는 말. 그 말을 듣는데 또 한 번 더 충격이었다. 그 후 게스트 하우스 열쇠를 그대로 갖고 나오는 참사를 겪은 터에 사이가 조금 데면데면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때도 지나치게 당황하고 괴로워하는 나를 지영은 그냥 걱정이 많은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넘겼다.


지영을 만나고 나는 그늘 바깥에 햇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양탄자에 얼룩이 묻은 게 아니라 흠뻑 젖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 수도 있었다. 모든 징조들을 불행의 복선으로 여기지 않고, 좋은 일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었다. 결국,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전에 나라면 그런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세상엔 진실이 있고 그렇게 좋게만 보다가는 언젠간 크고 다칠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떤 일러스트레이터의 말처럼 사물에는 선이라는 게 없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색상과 그림자만 있을 뿐. 진실은 어디 있을까. 사건의 상관관계를 떠나 때로 우리가 진실이라고 역기는 어떤 불행이나 행운은, 사실 일종의 해석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어제는 어학원에 늘 오던 선생님이 휴가를 가, 전혀 처음 보는 선생님이 오셨다. 그런데 그분은 어째 내가 한자를 쓸 때마다 틀렸다고, 문장을 읽을 때마다 '아녀 아냐 다 틀렸어'라며 펜을 들어 아예 성조를 직접 쓰시는 게 안닌가. 다른 열두 명의 학생들은 그대로만 두고 내게만 그러는 게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성조는 뭐 나만 틀리나. 그러나 두 시간 동안이나 세 번이나 같은 일을 겪으니, 나는 내가 원래 중국어를 어떻게 했는지 아예 까먹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내일은 안 나갈 거야. 나 오늘 너무 기분 안 좋았어.'

하고 말하니 지영의 답변이 아주 예술이다.

'난 언니가 잘 읽어서 그런 거 같은데. 남들은 지금 성조가 문제가 아닌 거고, 언니는 성조만 한 번 더 짚으면 아주 완벽해져서 그런 거지.'


세상에는 물론 밝은 면만 있지는 않을 거다. 그렇지만 밝은 곳을 발견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살고자 한다면 폭풍 속에 있더라도 언제든 한낮의 해변가에 닿을 수 있는 법.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그로 인해 다른 이는 분명히 영향을 받는다. 내가 사랑하는 전민희 작가님의 소설 속 어느 문구처럼, 영웅과 악당은 찻숟가락 하나 정도의 차이지만, 찻 잔의 입장에서는 결코 작은 차이는 아니다.


그리울 지영의 뒷모습. 11월의 여름 시즈완 근처 부두에서


당장 내가 내일부터 지영처럼 살 수야 없겠지만, 덕분에 세상엔 볕 드는 곳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공적이지 않을까? 너를 만나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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