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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Jan 11. 2019

다들 잘 지내나요? 난 별일 없는데

가오슝에서 열세 번째 일기


그제는 심심한 마음을 카톡 친구 창을 쭉쭉 내리는데, 프로필 사진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있었다. 운이 오빠였다. 옆에는 아마도 여자 연예인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와 함께. 반가운 마음에 카톡을 했다. 

'성덕 (성공한 덕질, 주로 팬 활동을 하다가 가수나 연예인을 실제로 봤을 때 쓰는 말) 하셨네요 오빠!' 그러자 답장이 왔다. '? 성덕이야 진작에 했지.'


운이 오빠와는 대학 때 게임 관련 수업을 듣다가 처음 만났다. 그때 우리 조는 이미 절친한 친구였던 동기 언니 둘과 나, 그리고 3학번이나 차이 나는 운이 오빠와 5학번이나 차이나는 홈 오빠 그리고 기연 언니 이렇게 여섯이었다. 언니 둘은 함께 다닐 때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과에 별 인연이 없는 우리 넷은 종종 모여 놀았다.


운이 오빠는 나와 3학번이나 차이나지만 같은 학기를 보내고 있었기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금방 친해졌다. 당시 그는 유명한 아이돌의 오랜 팬이었는데 나로서는 상상 못 할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그의 사랑은 너무나 지고지순해 가끔은 눈물겨울 정도다. 한 번은 그녀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일본에 가, 정말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거의 노숙을 하다시피 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고생을 할 바예야 여행을 안 가는 나로서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또 한 번은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마주친 핸드폰 대리점에 밖에 세워진 연예인 패널을 가져가도 되냐고 묻는 데는 서음없지만, 그걸 들고 지하철을 오갈 때는 인부 인척 했다는 말에는 그 용기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지금은 교환 학생 와 있어서 다음 달에 한 번 봐요.' 하니 어디? 하고 묻는다 그래서 맞춰 보시라 했더니 '잠비아? 알제리?' (대체?) 분명 상태 메시지는 중국어인데 저 상상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과연 나는 한 학기 동안 도대체 뭘 배우는지도 몰랐던 철학과 사상 과목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할 만한 창의성이다. 다음 학기에 교환학생을 가고 드디어 졸업한다는데 아직도 학교에 아는 이가 남아있니 괜히 마음이 좋았다.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닌데도, 스물셋 또는 스물넷 쯤 되면 친구들이 하나 둘 졸업해 갑작스레 어른이 된 기분이 들기 시작하는 거 같다. 학교, 졸업하고 또 다른 학교, 졸업하고 또 다른 학교 하기를 벌써 16년이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어딘가에 소속된 학생으로서 살아왔더니 내가 갈곳, 할 일 모두 스스로 정해야 할 인생이 낯선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는 이제야 그런 소릴 하냐며 이런 내게 철이 덜 들었다고 할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지 않은가. 인생은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요즘 큰 위로가 되고 있다.


근 1년 동안 나에게도, 주변 인물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는 사 학년 1학기를 한국에서, 2학기를 대만에서 보냈다. 어쩌다 보니 닿은 길이었지만 그만큼 생각지도 못한 것을 많이 배웠다. 다만 조금 느리게 걷기를 선택했더니 주위 사람들의 빠른 변화에 조금 조바심이 난 것도 사실이다. 이제 정말 자기 밥벌이를 자기가 하고 살게 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너무 느리게 걷고 있지 않을까? 대만에서의 느릿한 생활은 좋았지만,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인천의 끄트머리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친구들이, 이제 전혀 다른 삶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나와 1학년 때부터 붙어 다녔던 윤이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독서실로 떠났다. 2학년 때 처음 만나 언제나 척척, 뭐든지 잘 해내던 예리는 벌써 남부러울 거 없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온갖 곳에서 하나의 관심사를 갖고 만났던 대학 친구들도 비슷했다. 조기졸업을 한 친구, 벌써 여러 기업에서 인턴을 하며 업계에 적응하는 친구, 자아를 찾고 견문을 넓혀가기 위해 공부하는 친구, 또는 대학원에 간 친구까지. 같은 배를 타고 있던 친구들이 어느새 각자의 배를 타고 다른 방향으로 키를 몰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친구들과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내 처지가 걱정되고, 한편으로는 불안도 적잖다. 


대만에 와서 나 스스로에 대해 돌아볼 시간이 많았다. 내가 뭘 할 수 있고 뭘 할 수 없는가, 나는 뭘 해왔고 또 뭘 해야 할까. 낯선 말들에 둘러싸여 외로워질 때마다 나는 속으로 파고들었다. 답을 찾고 싶었다. 모두가 잘 나아가는 거 같은데. 나도 별일 없이. 별 탈 없이 살고만 싶은데. 그러나 어디서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모래지옥처럼 빨려 들어가기만 할 뿐 어째 끝이 없었다. 나는 쪽대본으로 하루하루를 넘기는 일일드라마의 단역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내 처지가 불안했지만 뾰족한 해결방법은 없었다. 그러다 아주 긴, 기나긴 여름을 가을을 그리고 겨울 비스름한 것 앞에 섰다.


대만에서는 새해를 맞았지만 한국에는 아직 내가 두고 온 2018년의 내가 있다. 그는 아마 결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갑작스레 결정한 대만행에서 뭐라도 가져왔으리라 믿을 것이다. 그에게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다. '거기까지 갔는데도, 모르겠더라고. 사실 답은 나한테 없나 봐.'


초등학생 때는 한 살 한 살 먹을 때마다 담임 선생님께 그런 말을 들었다. '이제 3학년 이야. 2학년이 아니야. 어였한 고학년이라고. 의젓하게 행동해야지!'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3월이니 3개월 전의 나와 지금은 다를 바가 없는데, 어떻게 그 안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때는 시간이 유독 지루하고 느리게 가던 때였는데도 여전히 3개월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나이를 십 년도 더 먹었으니, 여전히 나에 대한 그 어떤 답도 내리지 못하였음에도 이쯤에서 나름의 결론을 내보고 싶다.


내 답은 이렇다. 각자의 인생이 모두 하나의 역사라면, 결국 어떤 존재였냐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누군가가 얼마나 대단한 인간이라고 사후 어느 역사가들이 피터 져 외쳐봤자 살아생전 그가 펼쳤던 열망과 받았던 사랑, 그리고 어딘가에 베풀었던 애정을 대변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나도 또 많은 인간들도 그렇게 의미 있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일 뿐이니까. 그렇지만 산 사람은 다르다. 세상에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고,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행복이나 불행을 남길 수도 있다. 남의 세상에 작은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결국 아무도 발견 못한 사막에 발자취를 남기는 일과 같을 것이다. 나는 결국 그게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결국 살아있을 때 열심히 살아나가는 수밖에. 더 행복하게 살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나의 몫을 다할 수 있게 내 직업을 찾아 내 일을 해나가는 게 내 최선이자 어른인 내가 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결론이라고 본다. 결국 내가 누군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그렇게 오래도록 고민을 거듭해도 답을 못 찾는 건 당연하다. 답이 없으니까!


장기하의 '별 일없이 산다' 중 한 컷. 싫은 이에게 저렇게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앞에 나열한 내 친구들도 저 위에 쉽게 쓰인 글자 몇 자처럼 쉽게 쉽게 살고 있지는 않으리라. 그럼에도 모두가 하는 말은 똑같다. '나는 별일 없이 지내. 너는 잘 지내?' 사실 다 그렇지 않을까. 고난은 사시사철 쓸려 드는 파도처럼 당연하고, '노다메 칸타빌레' 마지막 권, 마지막 대사처럼 '어쨌든 바다 건너에 섬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사람은 배를 타고 건너갈 수밖에 없다.' 


이 글의 제목은 가을방학의 노래'근황'의 가사 중 하다가. 배경 사진은 가을방학의 앨범 커버이다. 가을방학은 이따금 겨울마다 콘서트를 연다. 그날 밤을 정말 의미 있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려고, 이렇게 말해주려고.

'다들 잘 지내나요? 난 별일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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