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12_16
최근까지 일했던 학원의 원장님과 나는 오랜 사제 관계다. 내가 질풍노도의 중학시절을 보내던 때, 당시 논술 선생님이었던 원장님을 만났고 계절마다 연락을 하며 관계를 이어오던 우리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함께 일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진로에 관해서는 부모님보다 원장님과 이야기할 때가 많다. 고등학생 때 학과를 결정하게 된 것도, 수시 전형을 결정하게 된 것도 모두 원장님과 대화를 통해 깨우쳤기 때문이다.
가장 고민되는 현안에 대해서도 논의중이다. 바로 대학원에 가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다.
예전부터 나는 시간과 돈이 있으면 좀 더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학과가 짧은 공부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곳이라서 더욱 그랬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대학원은 가야겠지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대학원에 간 친구들이 모두 후회하는 걸 보고 생각이 바뀌었었다. 대학원에 대한 생각은 다들 제각각이다.
요즘은 학사 정도로는 안된다는 사람들 반, 문과 대학원이 크게 의미가 있냐는 사람 반, 공부를 했으면 끝까지 해야지 하는 사람 반, 대학원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사람 반. 반면 원장님은 대학원에서 제일 좋았던 게 사람이었다고 했다.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교수님을 만나서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다고, 연구 자체보다 인연들에 더 의미가 있었다고 했다. 각자의 시각이 모두 이해가 가서 괴로웠다.
지금의 나로써는 이제 가지 않는 쪽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구체적으로 대학원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글은 지금도 충분히 쓸 수 있는데 안 쓰고 있는게 문제고, 대학원에 가면 또 새로운 인간관계에 부딪히게 된다. 사람을 만나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지금은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하지만 대학원에 가는 게 좋겠다는 의견들에도 모두 동의한다. 마음은 갈대같이 흔들렸고 고민이 많이 됐다.
나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일념을 가지고 2025년을 기다리고 있다. 울림이 있는 이야기나 문장을 쓰겠다는 각오로 새해를 맞이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인생을 살지 않고 다만 글을 쓰려는 이 마음이 오만한 것이 아닐까 우려되기도 한다. 인생을 살아서 글을 써야 하는데 나는 무작정 쓰려고만 하고 있다. 그러니 자꾸 벽에 부딪히는 것이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는 벽.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 벽. 결국은 어떻게든 넘어서야 하는 벽에.
내 친구 중에 한 명은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갔다 온 적 있는데, 6개월 짜리라고 생각하면서 1년짜리 코스를 등록하는 바람에 학비를 벌려고 수백장의 그림을 그렸다. 그때 녀석이 말하길 펜도 고장나고 타블렛도 한번 바꾸면서 교수님이 말씀하시던 '그냥 동굴에 들어갔다 생각하고 그림만 그려라' 라는 게 실감이 나더란다. 녀석은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 그렇게 오래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한편으로는,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살면서 그런 때가 있었다. 아마 스물 둘셋쯤, 웹소설을 쓰겠다고 휴학했을 때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도 별반 다를바 없었다. 기획력이 떨어지는 글이었고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을 기워서 쓴 글이었다. 그런데도 100화를 넘겨서 쓰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5만자를 쓴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어서 쓰다가 어느순간 깨달았다. 내가 만만찮은 일을 시작했다는 걸. 그럼에도 완결은 왔다. 지금도 그 소설은 인터넷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고 간혹 보는 사람이 있어서 몇백원씩 들어오기도 한다.
그러나 돈보다도, 뭔가에 집중해서 끝을 보았다는 게 내게는 더 값진 경험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는 지금 그런 성공 경험이 절실한 때이다.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끝맺는 경험이 너무나 필요한 때이다. 어중간하게 끝난 일이 너무 많고, 지금은 너무 복잡하고, 고민이 많고 어지럽다. 어딘가 굴에 박혀서 한 길만 쭉 파고 싶다. 그러다보면 사는 것도 조금 간편해지지 않을까 싶다.
지금 대학원에 가는 건 역시 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