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3
얼마전에 친구에게 지금 다니는 직장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뻔한 이야기였다. 상사가 지시한 걸 받아들일 때마다 내 안에 어딘가가 마모되는 기분이고, 그냥 그러려니 다들 그렇게 살지 않겠어 받아들이려다가도 또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 싶어 화가 났다. 나의 문제는 늘 그랬다. 회사생활에 그러려니가 안 됐다. 정말 아니다 싶을 땐, 심각할 땐 막상 터지지도 못하면서. 나중에는 또 그런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내 고민을 듣던 친구는, 자신도 마찬가지의 고민을 하고 있다며 나에게 한 신점 주소를 알려주었다. CJ 직원들이 이직할 때 가서 물어보는 곳이라면서 걱정이 된다면 한 번 찾아가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약을 하고 전화를 걸어봤는데, 결과는 엉망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소식으로 들리려나? 하지만 나는 실망했다. 신점을 봐준다는 그는 전화 너머로 계속 '잘 될 거예요. 잘 될거예요.' 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퇴사를 앞둔 상황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이번에도 '잘 될 거예요.' 라고 대답했다. 뭐가 잘되는데? 어이가 없어서 뭐가 잘 되는데요 하자. 그는 나중에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싶다면 사주를 볼 것이지 왜 신점을 보냐면서. 난 그냥 계속 잘된다 잘된다 하길래 뭐가 그렇게 잘된다는 건지 구체적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잘 할거라는 건지 궁금했을 뿐인데.
신점에게 기대서 기분이 나빴던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라 신선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그간의 신점이 모두 어느정도 들어맞았다는게 특이할 정도였다. 누구에게나 잘 보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구나. 그러면 그냥 앉아서 고작 십오 분 이십 분 '잘 될 거예요.' 하고 위로하는 것 만으로 오만원을 벌어갈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신선하게 짜증났다. 남의 위로에 화가 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요즘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바다 위를 표류하는 한 마리의 해파리가 된 것만 같아서 그런 위로는 기만처럼 느껴졌다. 제 힘으로 헤엄칠 수도 없어서 그냥 해류에 따라 이리 저리 움직일 뿐이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퇴원 후 인생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목표로 한 일도, 이뤄야 겠다고 생각한 일도 없어서 어제까지는 계속 물 위에 떠 있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몇가지 목표를 세웠는데 문제가 생겼다. 자신이 없다는 거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한 해를 넘길 때의 나는 우울하기 그지없다. 나이는 내가 태어나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가늠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나이먹고 뭘 했냐고 물어 올까봐 지레 겁먹어 버리는 것이다. 용감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용감하지 못하고 대범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렇지가 못하다. 그러니 자꾸 남들에게 화가 나는 것이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감당하질 못해서 엄마에게도 언니에게도 심지어 나에게도 근래에 나는 먼저 투덜거린 후 대충 분위기를 바꾸는 식으로 사과를 얼버무리고 있다. 좋지 않은 행동인걸 알면서도 내 자신이 상자 안에 갇힌 쥐처럼 답답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세상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내게 준다던데, 내가 이 시련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정말 물어보고 싶다는 사진을 봤고 사진을 찍은 이에게 공감이 갔다.
오랜 고민은 마음을 해친다. 바닷 바람에 오래 놔두어 부식되어버린 외벽 페인트처럼 너덜너덜 떨어진다. 발을 내딛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 나는 이제 무엇도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으리란 걸 안다. 그런데도 그냥 하는 마음은 죽지 못해 살아가는 답답함 때문이요, 내 인생은 늘 이렇게 꾸역꾸역 이어져 왔기 때문일 것이다. 거창한 사람들이 참으로 부러운 밤이다.
잘 된 다는 말은 필요 없다.함부로 위로하지 말자. 잘 되든 못 되든 어차피 살긴 살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