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9
병원에 있을 때, 엄마가 불쑥 찾아왔다. 이미 한참 울어서, 도무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엄마는 말했다. 구름이가 오래 살아야 1년이래.
구름이는 내 강아지. 내가 열 일곱살 때 데려온 요크셔테리어다. 털은 검으면서도 희고, 갈색이 섞여 있기도 하다. 가족이 다같이 산책할 때면 즐거워서 헥헥 거리고, 매일 같이 하는 산책에서 도무지 함께 걸어주지를 않는다. 집에만 들어오면 산책 했으니 간식, 밥 먹었으니 간식, 심심하니 간식을 줘야 한다고 말하는 녀석이기도 하다. 녀석은 실제로 말한다. 끙끙대는 소리로.
그런 구름이가 앞으로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을 나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가지 생각만 했다. 왜 우리 개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진부한 의문이지만 어이가 없었던 것 같다. 다른 생각을 할려 치면, 계속 구름이가 1년 밖에 못 산대. 하는 생각이 치고 들어왔다. 마치 다른 생각을 하는 것조차 올바르지 않은 행위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그날 나를 안고 많이 울었는데, 엄마가 그렇게 무너져서 우는 모습은 처음 봐서 오히려 나는 조금 덜 울었던 것 같다. 우리 구름이는 착하고 똑똑한데 왜 이런 일이 생겨야 하냐고 소리지르며 우는 엄마를 보면서 사랑은 정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걸까. 사람은 사랑을 통해서 성장하는 게 맞는 걸까 생각했다. 사랑은 우리를 무력한 아이로 만들어 버리지 않는가. 사랑의 효능을 나는 정말로 모르겠다.
고작 1년 전에 찍은 CT에서는 아무 이상 없었기 때문에 더욱 괴로운 결과였다. 그때는 나이에 비해 쌩쌩하다고 칭찬받았던 구름이가 이제는 심장에 종양을 달고 있단다. 경동맥을 지나고 있어서 수술도 안되고, 항암치료를 해야 한단다. 현실감 없는 소리들이었다. 다만 엄마가 말해주니 그러려니 했을 뿐. 그렇게 건강한 애가 갑자기 아파서 올해만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강아지는 죽으면 어디로 갈까? 구름이가 자면서 짖는 걸 더이상 듣지 못하고, 간식을 달라고 낑낑대는 것을 더이상 보지 못하고, 집에 오면 자다가도 착착착 소리를 내면서 귀를 펄럭이며 뛰어오는 것을 더이상 보지 못하고 나는 그럼에도 살아가고 그 애는 그렇게 영영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고. 이해할 수가 없어서 생각하고 계속 생각했다. 어떤 만남에도 이별이 있다지만 자연스럽게 헤어질 수는 없는 걸까? 더이상 연락하지 않는 많은 친구들처럼. 구름이가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내 몸의 한 부분을 떼어내는 것 같다. 잘린 부분은 자라나지 않고 나도 에전같을 순 없다.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구름이는 너무 귀엽고 착하고 똑똑해서 쉽지 않았다. 그래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사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구름이가 세 살, 다섯 살 할 때부터 이런 날을 생각하면서 펫로스를 겪은 사람들의 수기를 읽고 구름이가 죽은 이후에 대해 생각해 왔다. 그래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현실감을 느끼지 못했을 뿐 1년 후를 생각할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1년간의 항암 치료를 담담히 책임지겠다고 결심한 건 엄마다. 엄마처럼 용감하지는 못해서 나는 구름이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생각날 때마다 울고, 또 울고 있다. 웃긴 일이다. 함암 치료를 받는 건 구름이고, 하는 건 엄마인데. 내가 이렇게 나약하다.
엄마는 당분간 직장을 구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년 동안은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고.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비겁하게 취업을 하고 싶다고 아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고 나면 늘 후회가 남는 건, 어쩌면 어떤 마음에도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무섭다. 그래도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에게도 그런 용기가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