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12_08
지난 2주간 나는 그동안의 회사생활의 여파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고, 주로 병실에만 있어야 하는 생활은 지겹기 그지없었고 남들은 맛있다던 병원밥도 내 입맛에는 영 아니었다. 그래서 주로 자고 깨어있는 시간에는 그간 회사를 핑계로 보지 않았던 책들을 보면서 어찌저찌 시간을 보냈다. 아주 오랜만에 글도 쓰고 노래도 듣던 그 몇주 동안 내 삶은 작은 관속에 들어 있는 것과 매한가지였다. 편안하기도 하고 무력하기도 했다. 외부와 어느정도 단절된 생활 탓에 병동에서 익숙해진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 속에 파묻혀 지내기도 했다. 그동안 계엄령이 떨어졌다가 취소되었으며 눈이 와서 몇십중 추돌 사건이 나기도 했으나 모든 사건들을 한 템포 지나가고서야 알게 되어 두려움보다는 어리둥절함이 컸던 것 같다.
큰 병은 아니라서 금방 퇴원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니어서 병원에 계속 다녀야 하는 신세라 해방된 기분도 아니었고, 퇴원 당일이 되자 닥쳐올 인생에 오히려 거기 남고 싶기도 했다.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감각은 참 무섭다. 내 삶이 날 기다리고 있다. 나를 먹여 살려야 하고 챙겨야 하고, 보살펴야 하는 내 삶은 단 한 순간도 내가 의무를 저버리지 않게 나를 지키고 서 있다. 그런데 퇴사를 하고 입원을 한 터라 당장 수입원도 요원하다. 실업 급여 요건이 될지도 한번 더 알아봐야 하고, 무엇보다도 네 번의 퇴사는 내게 입원이라는 여파 뿐만 아니라 뺨을 한대 맞은 듯한 기분 역시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제는 또 어떤 회사에 다시 들어가도, 잘 다닐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내게 남았다.
이제는 신입으로 들어가기에 조금 많은 나이가 된 것 같은데, 이전 회사에서 나와 같은 동기들은 벌써 2년차 3년차를 바라보고 있을 텐데 나는 아직도 제대로 된 직종 조차 의문인 상황이다. 당연히 불안하고, 그간 내가 치열하게 쌓아온 시간들이 남들이 보기에 별 의미 없어 보일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끈기없어 보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남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 생각이 들면 이 넓은 세상에 왜 나라는 사람이 들어갈 회사는 없는 걸까. 또 나는 왜 회사에 남지 못하는 걸까. 수도없이 그런 생각을 해봤다. 나도 남들처럼 까라면 까고 가만히 있으라면 있는 채로 살아왔는데 왜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렇지 못하는 걸까. 왜 이 사회에는 나라는 사람 하나 들어갈 구멍이 하나 없는 걸까?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글쓰기로 도망쳐왔다. 에세이도 써봤고 소설도 써봤고, 시 수업도 들어봤다. 시 수업은 듣다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어 도망쳐버렸고 소설은 쓰다가 스스로 알았다. 나는 뿌리가 되는 소재를 잡는 걸 힘들어한다. 그럴싸한 이야기로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보니 내 글은 한장 한장이 곡예에 가까워져서 나역시 다음 장을 예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열 몇편을 썼는데 나조차도 도무지 그 다음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웹소설 업계에서 일해봤기 때문에 안다. 그런 글은 진짜 작품이 나오기 전에 잠깐씩 지나가는 습작일 뿐이다. 정식으로 써 내려갈 서사를 갖추지 못해서는 250화로 완주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역시 쓰다 말았다. 이것 하다말고 저것 하다말고.
그러나 그렇게만 나를 보는 것은 또 억울한 일이다. 버틸만큼 버텼고 내 능력의 한계를 내가 느꼈다. 살다보면 그냥 그렇게밖에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누구나 1~2등급을 받고 인서울을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나에게도 회사에 잘 적응해서 1년 이상 버티는 능력이 또 가만히 앉아서 뿌리가 될 만한 이야기를 써내려 갈 만한 힘이없는 걸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타박해도 때때로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렇다면 진짜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근래에 나는 그런 고민을 하고 또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천편일률적으로 달라서 다채롭게 괴로워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사람의 쓸모가 다 엇비슷 했다면 그래서 이 사회에 내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래도 불가능해 보이는 마음 한 구석에는 어딘가 포기하는 심정도 있다. 해도해도 안되는 것도 있구나 하고.
그렇다면 글을 써야 하는 걸까. 이제는 정말 돌고 돌아 다시 글을 써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듦에도 도무지 책을 읽고 시집을 읽으면 그 기백에 눌려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절대 이렇게 쓸 수 없을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소설들을 보면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촘촘한 레이어로 이루어진 세상들로 가득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깊은 사유와 시선들, 어떤 틈새로 바라봐야 빛이 들어오는게 그렇게 난반사해서 보이는 것인지 어설픈 나로서는 따라할려고 해도 쉽지 않다. 그저 부럽게 바라볼 뿐이다. 내게는 없는 그들에게는 보이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들을. 그렇다면 이렇게 다시 내 삶은 원점이다.
회사에서 맞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기만스럽게도 우선 나는 부모님에게 얹혀 살 작정이다. 그러나 영원히 그럴 수야 없겠지. 그런 삶을 살고 싶지도 않다. 내 이름 석자를 내세우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러나 사회에는 내 발자취를 남길 일이 없고, 내 글을 특별할 것도 없으며, 나도 이제는 중고 신입으로 불리기에도 어려운 나이가 되어 간다. 나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들은 이러하다. 사회에는 내 자리가 없고, 다시 잘 해낼 자신도 이제는 없으며 나도 이제는 인정하려 한다. 내 글은 특별할 것도 뛰어날 것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모르겠다. 매일 밤 조금씩 더 모르겠다. 이런 밤에는 어떤 마음으로 잠에 들어야 할까. 퇴원을 하고 나니 쏟아지는 삶에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나에게도 나를 향한 내 자신의 믿음과, 쉬어가도 괜찮다는 여유와 때때로 그러려니 삶을 관조하는 마음이 있다면 좋을 텐데. 어리석고 조급한 나에게는 아직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