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12_15
이번 주말에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하는 시위에 갔다왔다. 엄마는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 가지 않길 바랐고, 정치에 적극적인 아빠도 그거 가든 안가든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반응이었지만 어떤 효용을 바라고 간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가지 않으면 내안에 어떤 부채감이 생길것 같았고, 그 마음을 견디기가 힘들어서 시위에 갔다. 그리고 4시쯤 도착해서 5시쯤 끝나는 바람에 사실상 오고 가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썼지만 최초로 거리에서 승리를 맞이한 기이하고 신이나는 시위였다.
오는길에 나는 지인과 저녁을 먹었지만 식당 주인의 말로는 대부분은 여의도에 머물지 않고 집에 간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식당에는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여의도는 온 김에 뭔가 먹을까 하기엔 아무래도 비싼 곳이니까, 또 이런 일이 아니었으면 주말에 국회의사당에 내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선결제의 물결이 퍼지지 않은 골목의 식당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예 다른 세상처럼 이야기하는 순간들이 참 신기했다.
일전 대학생때 한국에 보수당은 왜 이렇게 결집하고,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한'으로 가득차 있을까에 관한 칼럼을 읽은 적 있었다. 독재와 전쟁이 아직 잔재로 남아있는 세상, 당장 한 세대만 올라가도 독재 정권이 또 한 세대만 더 올라가도 전쟁으로 아예 다른 삶을 살았던 이들이 이들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나같은 이들과 함께 살아간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니 억울함이 쌓이고, 이 억울함의 정서와 '한'의 정서가 보수당으로 결집하는 이들의 공감대라는 것이다.
억울함에는 여러가지 스펙트럼이 있고 가령 최근 2030 젊은 남성들이 생각하는 역차별성 억울함과 이들의 억울함에는 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으리라 여겨 완전히 동의하는 글은 아니다. 그러나 억울함이 반복되어 온 역사에 기적은 드물게 일어나고, 자주 무력해지는 일이 반복된 까닭도 있으리라. 광장에 나가서 이야기하면 막막함은 쉽게 다가온다. 나라는 개인은 역사 앞에서 너무나 허무한 존재다. 막상 나가서 시위를 하다보면 그런 생각이 오히려 더 생겨난다.
그런데도 티비에서 찍은 화면으로 보면 끝없이 화려하다. 빛의 물결이 파도처럼 물결친다. 어제 시위 풍경을 찍은 사진을 보면서 그리고 카메라에 잡히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한 명 한 명은 크게 의미가 없어 보이는데 모아놓고 보면 장관이라면, 사실은 한 명 한 명 에게도 그만큼의 아름다움이 있지 않을까 하고. 다만 우리가 평상시에 알고 살아가기에는 세상 만사가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많을 따름이다.
시위를 마치고, 식사까지 마치고 국회의사당역으로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응원봉을 흔들고 있었다. 누구였을까 처음 응원봉을 가지고 나올 생각을 했던 사람은. 며칠 입원하면서 휴대폰을 못 보는 동안 세상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토요을은 한결같이 신기한 날이었다.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일들은 보통 안되곤 하던데 풍선이 휘날리고 정말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그날 탄핵 소추안에는 과거의 광주가 오늘 날의 우리를 구원하고 있다는 요지의 말이 있었다. 잠시 매일 같이 씁쓸한 생각만 해 오던 나에게도 멈춤 버튼을 눌러본다. 억울함도 멈춰 본다. 때로는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도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