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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호용 Jun 10. 2020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단순한 길을 향해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영국의 모 일간지 기자가 에드먼드 힐러리에게 왜 산에 가느냐고 물으니 그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젠 진부해진 이 문답은, 에베레스트 초등으로 유명세를 탔던 힐러리가 이런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서 대충 건성으로 대답한 것인데, 하여튼 힐러리가 말한 ‘거기’는 정상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명백한 참이다. 당연하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산에 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산은 봉우리가 있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명제이다.      


단순하게 인구 대비 등산 인구를 따진다면 대한민국은 당당히 세계 랭킹 1위일 게 분명하다. 이 기록은 대한민국 산이 지질의 변성 작용과 풍화작용으로 산 높이가 낮아지지 않는 한 계속 유지될지 모른다. 서울을 예로 들면, 주말이면 북한산 관악산 수락산 등으로 대 엑소더스가 벌어지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목도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산도 많고 산악 민족답게 등산 인구도 많다. 그 많은 등산객들은 주봉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주변 봉우리는 오른다. 운동화 짝 질질 끌고 낑낑거리며 굳이 봉우리에 올라가려는 어린 학생들을 보면, 봉우리에 오르겠다는 행위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멧돼지를 잡기 위해 산 비탈면을 뛰어다녔던 DNA가 퇴화되지 않고 아직도 우리들 세포에 존재하는지 모른다.     

경기도 양평과 가평 경계선에 있는 봉미산 숲길

하긴 나도 몇 년 전까지 그랬다. 지금까지 다닌 산을 떠올려보면 거의 다 주봉이 아니면 최소한 주변 위성 봉우리엔 오른 것 같다. 설령 어떤 연유로 중간에 하산하였다 하더라도 처음 목표는 정상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정상에 오르면 한마디로 좋다!이다. 봉우리의 조망이 뛰어나든 아니든 최소한 정상에 오른 대견함에 만족해 한다. 이제 더 이상의 노고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포만감은 힘들게 오른 자에게 주는 산의 보상이다. 산은 결과물을 분명하게 준다. 탁 트인 장쾌한 조망 앞에 어느 누구도 담담해지지 않을 수 없고, 입에서 나오는 탄성을 막을 수 없다. 그 희열은 당사자만이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은 마약과도 같은지 모른다.      


오래전 여름휴가 때, 80리터짜리 배낭을 메고 지리산 대원사를 출발해 치밭목 대피소를 거쳐 천왕봉에 오른 적이 있었다. 마지막 위성 봉우리인 중봉에서 천왕봉에 오를 때 하루 종일 달구어진 뜨거운 바위를 두 손으로 짚으며 기어서 올랐었다. 거의 탈진 일보직전이었다. 평상시 몸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던 시절이었고, 서울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새벽녘에 진주에 도착해 쉴 틈도 없이 버스로 대원사에 이동했으니 그 긴 여름 능선은 나를 온전하게 두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아마도 그 산행은 나의 등정 역사에서 가장 힘든 등반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배낭을 메고 누워 숨을 고른 것도 잠시,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나 탄성을 토해내며 정상에 오른 희열을 만끽했다. 처음이 아닌 데도 감정은 격했다. 초주검이 된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을 날고 있었다. 선택된 자만이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풍경을 만끽했으며, 하루 종일 독하디 독한 능선과 싸워야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그리고 정말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그 감성의 강열한 충격은 아직도 등산에 대한 욕망을 지워버리지 못하는 원인으로 남아 있다.     

봉미산 임도 전나무 숲길

자칭 알피니스트라고 자부할 당시에는 산 정상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산은 때론 파므파탈 같은 치명적인 자태를 발산하며 나의 열정을 끌어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미혹에 넘어가 무작정 산을 열렬히 사랑하게 되었다. 내 몸을 산에 패대기를 치고 허파를 쥐어짜더라도 나는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마조히스트처럼 어떤 엑스타시를 느끼며 그녀에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욕망이었는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수많은 지난날들이 그랬다.     


그러다 내 몸이 산봉우리에 오르지 못할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좌절하지 않고 언젠가 몸 상태가 좋아지면 산이 다시 나를 부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때를 대비하며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그 장소가 바로 임도였다. 처음엔 하이킹용 인공 구조물이나 자전거 도로 등에서 운동을 하였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산으로 들어가 산길을 걷고 있었다. 그동안 산에 다니면서 보아두었던 임도들이 기억에서 되살아나 나를 끌어들였는지 모른다. 비록 봉우리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산은 나를 거부하지 않았다. 국망봉 산길을 걷다 나뭇가지 사이로 언 듯 보이는 화악산 북봉은 나를 괴롭혔던 그 익숙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올라오고 싶겠지만 머 꼭 그럴 필요가 있겠니. 네가 있는 그곳도 괜찮은데 머...     


그래, 이제 주봉은 물론이고 작은 봉우리에 대한 욕심은 없다. 자동차로 서울 외곽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삼각봉에서 시작해 문수봉과 비봉으로 이어지는 멋들어진 북한산이 파노라마처럼 시야에 펼쳐진다. 처음엔 올라가고 푼 욕구가 욱하고 치밀었지만, 이젠 내 곁을 떠난 한 때 열렬히 사랑했던 여인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듯, 먼 추억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1450미터 화악산 북봉에서 보이는 장쾌한 풍광을 이젠 볼 수 없지만, 그리고 언젠가 친구에게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노쇠한 알피니스트의 비애’라고 자조 섞인 투로 말을 했지만, 그것 또한 또 다른 세계로 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정상을 포기하자 국립공원이나, 언필칭 한국 100 산에 소속된 아이돌급 산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장쾌하게 펼쳐지는 조망과 기암절벽의 절경과 그리고 능선에서 맞닥트리는 수많은 풍경들이 이젠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들을 찾지 않아도 이젠 부족함이 없었다. 홀가분했다.     

봉미산 숲길, 산악자전거 코스로도 유명하지만 트레킹 코스로도 제격이다

인기가 많은 산이나 없는 산이나 사실 임도는 모양이 거의 똑같다. 하여 굳이 인기 있는 산을 가지 않아도 되니 봉우리에 대한 중압감이 있을 수 없다. 봉우리를 목표로 정하면 어떤 산을 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해야 하지만 임도 산행은 그런 고민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산꾼이라면 산은 잘생기나 못생기나 편견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저 평범한 야산 수준의 산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사실 등반 계획을 짜는 것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작년 가을 중앙선 매곡역 부근에 있는 임도를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은 해발 500미터밖에 안 되는 이름조차 불분명한 무명산이었다. 지도를 아무리 찾아봐도 이름이 없었다. 그래도 숲길의 모양새는 1000미터 준봉들이 즐비한 일명 경기도의 카라코람이라 불리는 가평 용수동의 숲길보다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나름의 풍미를 발산하고 있었다.      


임도를 걷다 보면 등산로와 크로스 되는 지점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경사면을 오르는 나를 보며 봉우리에 대한 욕망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봉우리에 대한 욕망이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런 시시한 임도는 절대 걸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북한산 둘레길을 운동 삼아 걷다가 도봉산 다락능선으로 오르는 분기점에서 본능적으로 방향을 틀어 다락능선을 오른 적이 있었던 것처럼 이런 단순하고 지루한 임도는 정말 참을 수 없다.      


하지만 이젠 자유롭다. 기존의 인식의 틀에서 빠져나와 내가 새롭게 설정한 세계를 활보한다는 게 두렵지 않았다. 키에르케고르가 설파한 실존적 자유와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면 거창한 철학적 사유가 함유되어 있는 것 같지만, 분명한 건 인식의 전환에서 오는 자유는 이젠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렇게, 애증의 대상이었던 봉우리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자, 산길은 단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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