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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호용 Aug 26. 2020

망각의 길을 찾아서

상판리 산판길

무언가 잊혀간다는 것을 확인할 때 우리는 쓸쓸함을 느낀다. 오래전, 그러니까 한 때 사랑했던 연인의 모습이 희미해질 때 그리고 그 추억들이 멀어질 때 쓸쓸함이 몰려온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잊혀가는 순간의 연속은 아닐까. 뇌 회로에 강한 동력을 가해도 기억은 되살아나지 않고 망각의 미로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발견할 뿐이다. 한번 잊어진 기억은 그렇게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난다.


하지만 아쉬워하거나 상심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그 빈 공간에 새로운 기억을 차곡차곡 쌓으면 조금은 쓸쓸함을 상쇄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잊혀간다는 건 마음을 비워가는 과정이다. 살아온 세월만큼 기억들도 많지만, 결국은 그것들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마음의 평정에 도움은 주지 못한다. 나쁜 기억은 회한을 만들고, 좋은 기억은 그리움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서로 뒤섞여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의 일종이 된다. 이제 그 기억들은 조금씩 잊혀가는 습관을 갖는 것도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몇 년 전 뉴스에서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느 날, 홀로 사는 60대 남성이 고독사 했는데 그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낙서장에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어느 여인에 대한 애절한 문구가 써있었다고 한다. 그 연인은 과연 누구였으며, 궁박한 생의 마지막까지 그 연인을 잊지 못하고, 그것을 낙서로 남겨야만 했을까. 어떤 사랑이었을까? 그리고 그 기억은 그의 인생에서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기억은 회한에 불과하고 번민의 시작이며, 잊혀야 할 인생의 한 부분이지 않을까. 그런 연속적인 과정이 인생은 아닐까.


서론이 좀 장황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숲을 향해 들어가 보자.


상판리라는 마을이 있다. 현리에서 읍내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운악산의 벌크 업 된 근육을 관람하고, 더 안으로 들어가면 육중한 산으로 둘러싸인 상판리가 나온다. 시계 방향으로 갈마봉 청계산 한북정맥 귀목봉 귀목고개 명지산 아재비고개 연인산 등과 열결된 굴곡진 능선이 말발굽 편자처럼 마을을 둘러쌓고 있다. 산 규모도 1000미터가 넘느 준봉이 3개나 있을 정도로 만만치 않아서 마을은 그 기운에 눌려 항상 적막감이 감돈다.


상판리 길은 오래전부터 민초들의 통로였다. 포천이나 현리에 사는 사람들이 화천 방면으로 가기 위해서 상판리 길을 지나 귀목고개를 넘어 논남기와 적목리를 거쳐 험난한 도마치 고개를 넘고 지금의 사창리나 화천으로 갔다. 이 높고 깊은 첩첩 산속에 가장 낮은 지역을 따라 꼬불꼬불 길을 내어 서로 소통을 한 것이다. 그 중심에 상판리가 있었다.


상판리라는 지명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은 투박함이었다. 마을 주변에는 그 이름 말고도 생경한 이름들이 널려있다. 노채, 다락터, 보아귀, 아재비, 귀목, 우목골, 장재울, 샛말, 도마치 등등 어감으로 볼 때 대처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지명들이 많다. 토속적 정감이 물씬 풍긴다. 분명히 단어의 어원은 있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의미와 음운이 변화되어 왔을 것이다. 순우리말도 있고, 순우리말 같은 한자어도 있지만 그 특유의 어감은 깊은 오지에 온 것처럼 투박하다. 그래도 그 단어들은 자연과 어울리다 보면 정감 있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한강 이북지역이 대게 그렇지만, 이곳도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위에서 설명한 이 길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이동 경로였고 그로 인해 퇴각하던 북한군이 이 지역 주민들 특히 귀목고개 부근에 살던 화전민 100여 명을 학살했다고 전해진다. 왜 학살했는지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계곡은 피로 물들었으며 그 이후 귀목고개 부근에서 그 당시 죽은 혼령들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특히 산악인들에겐 심심찮게 회자되는 귀신 이야기도 있다. 하여튼 믿거나 말거나지만, 단어에 귀 자가 들어가는 어감 때문에 음침하고 무슨 괴이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인적이 없는 다락터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우리는 장재울 계곡으로 발길을 옮긴다. 역시나 도로는 텅 비었고 몇 채의 집들도 정적에 눌려 있다. 산 밑 마을의 이런 풍경은 너무나 익숙하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이 텅 비어 있다는 표현처럼 적절한 관용구는 찾기 힘들지 모른다.

2019년 7월 13일 / 계곡이 끝나는 지점

일부러 사람들이 찾을 정도로 경관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곡 초입에 퇴색된 시설물 몇 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한 때는 등산객을 유치하기 위해 관청에서 나름 노력을 했던 것 같았다. 사실 이 계곡보다 버스 종점에 있는 명지산 들머리는 귀목고개 시작점으로서 오래전부터 등산객들이 많아 거쳐 가는 길목이었다. 울창한 숲과 높은 습도와 나무 썩는 냄새와 그리고 거친 된비알은 정말 등반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게 하는 코스였다. 그 당시 귀목봉과 한북정맥으로 오르는 지름길인 이 장재울 계곡도 덩달아 제법 등산객들이 왕래했었는데, 그 흔적들이 퇴락한 모습이지만 아직도 남아 먼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빌딩 숲처럼 골이 깊고 좁지만 그래도 계곡 수량은 풍부한 편이다. 그렇다고 알탕을 할 수준의 소나 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낙폭이 좀 되는 작은 폭포는 있지만 그 규모도 누구한테 자랑할 정도는 아니다. 어느 이름 없는 산에나 있을 법한 그저 그런 풍경이며, 등산객들이나 잠시 땀을 씻고 쉬어갈 정도로 소소하다.


또한 헝클어진 여자의 긴 머리카락처럼 제멋대로 흐드러져 있는 잡목 숲은 보잘것없는 계곡과 함께 전반적인 경관의 척도를 격하시키고 있었다. 그저그런 풍경이란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날 것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지나가는 산객이나 약초꾼의 주목도 받지 못하지만, 날 것의 향기가 진한 에스프레소처럼 우리의 인식 세계를 각성시키고 있었다. 그 향기는 무언가 부족한 산세를 상쇄시킬 정도로 강렬했다. 오히려 그런 날 것의 향기가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계곡은 끝나고 본격적으로 임도가 시작된다. 하지만 길은 머리까지 자란 풀숲에 막혀 있었다. 몇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앞에서 대충 휴식을 취한 후 마음을 다잡고 스틱으로 풀숲을 헤치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촘촘하게 들어 찬 수풀은 우리의 발걸음을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 아마존의 밀림에서 정글 칼로 길을 내며 전진하듯 우리도 스틱으로 풀숲을 헤쳐 시야를 확보하며 앞으로 전진했다. 그렇다고 어떤 긴장감이나 대단한 노역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숲길 트레킹이라는 일반적인 상황으로 볼 때는 짐짓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9년 7월 13일

이 능선부에 있는 임도는 임도의 목적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사실 임도라고 할 수 없고 엄밀하게 말하면 옛 산판길이었다. 경사가 심하고 계곡도 좁아 임도가 들어설 지형이 아니었다. 오래전 화전 하던 사람들이나 산판 하던 사람들이 화목을 할 목적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길이었다고 해야 옳다. 그래도 귀목봉이 인기가 있을 때는 등산객들이 이 산판길을 종종 이용을 했지만 근래에는 그 발걸음조차도 끊기니 길은 길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폐길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30여분, 촘촘한 풀숲과 실랑이를 한 후에야 겨우 수렁에서 빠져나온 듯 몸이 가벼워졌다. 산판길 사정은 처음보다 좋아지기는 했지만 길은 폐허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아마도 3,4년 정도 이대로 방치된다면 정말 사람이 다닐 수도 없을 정도로 변할지 모른다. 그 증거가 잠시 후 우리 앞에 펼쳐진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이 산판길을 찾은 목적 중에 하나는 청계산으로 이어지는 '망각의 길'이라는 곳에 가보기 위해서였다.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청계산 남릉으로 내려오다 마지막 부근에서 가시덤불을 헤치며 가까스로 떨어진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악전고투 끝에 당도한 그 산판길은 햇볕도 들지 않는 음습한 분위기였으며, 기진맥진해진 의식은 귀신에 홀린 듯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며 순식간에 공포감에 휩싸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목고개에서 죽은 혼령들이 나타났을지 모르지만, 여하튼 당시에는 방향 감각을 잃고 어디론가 도주하듯이 죽을힘을 다해 무조건 움직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맨탈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 그 당시 상황을 복기하기 위해 똑같은 코스로 하산하여 그 장소에 당도했는데, 제정신으로 볼 때도 역시 어떤 범상치 않은 무거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고, 다른 숲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무거운 고립감이 팽배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처음 당시의 두려움은 없었다. 부정확한 산길을 찾아 헤매느라 심신이 쇄락해진 결과 그런 공간에 과민반응을 하지 않았나 하고 추정을 해보았다. 하여 나는 그 공간을 망각의 길이라고 명명했다.

2019년 7월 13일

사람 손이 타지 않은 오지 산판길은 긴장감이 감돌기도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묘한 희열감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익스트림 스포츠나 롤러코스터 정도의 강력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지는 않지만 각성효과 정도의 변화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아마도 그래서 중독성이 강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다 보면 잠시 후 드디어 3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길로 2백 미터 정도 가면 그 '망각의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길로 들어서 30~40미터 가다가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길이 없었다. 아니 길이 없어졌다. 무성한 잡목들이 우리의 길을  막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 길의 존재를 알기에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며 잡목을 헤치고 한발 두발 전진했다. 하지만 10여 미터를 요리저리 수풀을 비집고 전진했지만 더 이상은 갈 수 없었다. 잡목들의 밀집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길이 아니었다. 능선 비탈면 깊은 골처럼 거친 숲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한동안 그물망 같은 잡목 숲과 밀고 당기며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3거리로 후퇴했다. 긴팔 셔츠와 고글이 아니었다면 몰골이 가관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바닥에 주저앉아 한숨을 돌리며 산허리를 돌아 내려가는 산판길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잡풀에 덥혀 있는 그 길은 그래도 사람이 다닐 만했다.  아마도 우리가 이 길의 마지막 객인지 모른다. 이 길에서 우리 이외의 등산객은 이제 보지 못할 것이다. 단지 봄가을 약초꾼이나 이 길을 잘 아는 원주민들이 간혹 왕래를 하겠지만, 더 이상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고,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의 욕망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쓸쓸히 모습을 감출지 모른다. 그렇게 길은 아무도 모른 채 대자연 속 깊이 침잠할 것이다. 길은 흔적도 없이 영원히 사라지고 잊혀 가겠지...         


결국 우리는 당초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하산을 서둘렀다. 건너편 능선엔 강한 햇살이 반사되고 있지만 산판길은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잡목 숲과 한바탕 씨름을 한 탓인지 몸이 나른해졌다. 아쉬움이 많은 하루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접할 수 없는 짧고 강렬한 트레킹이었다. 올라가면서 느꼈던 날 것의 향기는 이 숲길에서도 여지없이 진하게 발산하고 있었다.  

   

촘촘히 접혀져 있는 산허리 사이로 실핏줄처럼 개울물이 가장 낮은 곳을 찾아 굽이쳐 흐르고, 그 틈으로 사람이 낸 길이 있다. 누군가, 오래전 산판일을 하기 위해 그곳에 길을 내고 노동을 하였을 것이다. 산판에서 화목을 인력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노동 중에 상노동이었다. 이제 그 지난했던 길이 누구도 찾지 않고 그렇게 잊혀져가고 있다. 누군가에겐 관심조차 없는 그저 자연의 티끌만 한 존재로 남아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불멸의 연인처럼 각인되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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