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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호용 Feb 11. 2022

DMZ의 지배자, 지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일기예보에 없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 갔다. 북쪽을 향해 있는 망루 상황실 유리창에 굵은 빗방울이 세차게 때리고 있었다. 앞에 보이던 북쪽 초소의 경계등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은 칠흑으로 변해가고, 빗소리가 그 공간을 서서히 집어삼키고 있었다.


빗소리는 이제 힌두교의 핵심 상징 중에 하나인 옴처럼 거대한 하나의 음이 되어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숨 막힐 것 같았던 짙은 어둠과 허공에서 미친 듯이 맹렬하게 맴돌던 방송 소리와 그리고 우리의 영적 존재마저 그 소리에 빠른 속도로 함몰되고 있었다. 이렇게 비가 아침까지 내린다면 틀림없이 이 GP까지 물이 차오를 것이다. 순간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세상을 멸할 것처럼, 마치 야훼가 노하여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킬 것처럼 어떤 분노를 함축한 듯한 기세가 몸서리치게 느껴졌다. 그래, 그때도 이렇게 비가 내렸을 게다. 그렇게, 홍수가 이 봉우리까지 차오르지 않더라도 최소한 그 거센 물살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깊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천둥소리가 찌렁거리며 어둠을 두 쪽 냈다. 이젠 속수무책이었다. 이 비를 피할 수 없었다. 통문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나간다고 발버둥을 쳐도 통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우린 이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수몰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상이 깊어갈 때, 순간 무전이 왔다. 정신을 차린 나는 무전을 받았다. 수색중대 소속 박쥐의 무전이었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폭우로 철수를 해야겠다며 30분 후에 GP 통문을 열어달라고 했고, 나는 그 사실을 소대장한테 통보했다.


비무장지대 안에서 수색조와 매복조들이 작전을 하다가 불가피하게 철수할 경우가 발생할 때는 가까운 GP에 피신을 요청하는 건 작전의 일부였다. 또한 그들이 북한군과 교전이 붙을 경우엔 상황에 따라 GP에서 지원을 나가야 한다.


박쥐들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비에 흠뻑 젖은 채로 GP에 들어왔다. GP장의 인솔로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간 그들은 흥건히 젖은 방탄복과 군복을 벗은 후 꽈배기처럼 비틀어 물기를 짜내고 있었다. 얼굴에 발라져 있는 위장약은 비에도 벗겨지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칠흑 같은 어둠과 폭우를 뚫고 온 그들의 하얀 눈동자에는 아직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플래시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길을 찾아 GP로 찾아온다는 것은 동물적인 감각과 경험과 그리고 대범함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운이 따라주어야 했다. 주위 환경이 돌변할 때 길을 잃어 헤매는 경우가 종종 있고 심지어 전설에 의하면 무언가에 홀려서 북한 쪽 초소로 잘못 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너무 긴장하여 멘탈이 붕괴되면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되고, 그럴 경우 자신들의 운명은 정말 하늘에 맡겨야 하는 것이다.


자정이 조금 안될 무렵 나는 상황실을 후반조인 신 일병에게 넘기고 식당으로 내려가서 그렇게 그들의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습기 먹은 짬밥 냄새와 비에 젖은 땀 냄새가 진동했다. 그들 중에는 FEVA에 있을 때 같은 저격수 요원이었던 박 병장도 있었다. 군복을 다 짜고 다시 입은 박 병장은 내가 앉은 식탁 옆으로 왔다. 우리는 반갑게 악수를 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담배를 주고 불을 붙여주었다. 그는 담배를 몇 모금 만에 다 피워 없앴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담배연기가 그의 머리 위에서 아지랑이처럼 자욱했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수색과 매복에 이제는 이골이 붙었다고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들며 말년에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해댔다. 나는 "말년에 조심해야지, 떨어지는 낙엽도 피하라고 하는데 말이야"라고 맞장구를 쳐주며 그를 위로했다.


그리고 문득 한 달 전에 발생했던 지뢰 사고에 대해 물었다. 그 사건의 수색조가 그가 속한 소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그는 그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사고에 대한 정황은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생생하게 그때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그날 수색은 모 지피에서 관측된 수상한 물체를 확인하는 작전이었다. 그런 목적 수색은 종종 있어 왔다. 관측된 수상한 물체는 필히 확인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그날은 봄 햇살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사실 이런 수색은 부담이 많았다. 지뢰밭을 피해 오솔길을 따라가는 단순 수색보다 위험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목적지로 이동을 했다. 비무장지대에서의 철칙은 다니던 길 밖을 넘지 않는 것이다. 공식적인 지뢰지역이든 아니든 길을 벗어나는 행위는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전을 하다 보면 길을 벗어나지 않을 수없는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위험에 대한 인식이 반감된다. 작전에서 수칙은 절대적일 수 없다. 전체 수색지역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 똑같은 장소를 여러 번 갈 때가 있는데, 그걸 경우는 대게 긴장이 이완될 때가 많다.


목표 지점에 다다랐을 때 수색조는 자세를 낮추고 사주 경계를 하며 조금씩 앞으로 이동했다. 처음 접하는 개활지 수풀 지역이었다. 분대장이 첨병에 섰다. 지뢰지역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길도 아니었다. 항상 애매한 지역이 있기 마련이다. 주변 상황이 위험할 때 수색을 중단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수색대로서 자존심 문제였다. 이럴 경우 무모하리만치 어떤 야성적인 승부욕이 솟구친다. 그렇게 항상 무모하면 사고 발생의 리스크는 상승하기 마련이다.


분대장은 무언가 위험한 냄새를 본능적으로 맡았다. 수색 대열이 조금 흐트러졌고, 앞서 가던 분대장과 후미의 거리가 10미터 정도 벌어졌다. 그때 분대장이 오지마라고 소리쳤고 곧이어 쩡! 하는 폭음 소리가 귀를 때렸다. 단말마의 비명소리도 동시에 들렸다.


분대장은 발목지뢰를 발로 밟은 게 아니라 엎드리면서 무릎으로 밟아버렸다. 그의 무릎은 걸레처럼 너덜거렸다. 피가 솟구쳤다. 상태가 심했다. 수색조는 그를 둘러매고 철책 통문을 향해 무조건 뛰었다. 서로 번갈아 가며 둘러맸다. 거친 숨소리들이 따사로운 햇살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습지를 지나고, 구릉을 지나고, 된비알 고개를 넘어 뛰고 또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는 점점 의식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헬기로 운송 도중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발로 밟았다면 물론 살았겠지만, 그게 그의 운명인지 발목지뢰는 그의 무릎을 원했다. 지뢰는 결코 관대하지 않다. 비무장지대에서는 이런 격언이 있다. 발아래를 조심하라.


말 나온 김에 또 다른 지뢰 사고 이야기를 해보겠다. 나의 친척 동생의 이야기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군에 입대한 그는 일병 때 철책 넘어 비무장지대에서 지뢰제거 작업 지원을 나갔다가 M16 대인지뢰를 밟았다.

철책의 사계청소 면적을 넓히기 위한 불모지 작업을 하기 전에 지뢰 제거작업이 선행되어야 했고, 그 작업을 하는 공병대를 지원하기 위해 철책 경계 소대가 투입되었는데 동생이 그중에 한 명이었다. 지뢰 제거반이 앞에서 작업을 완료하면서 전진하기 때문에 뒤에서 따라가는 지원병들은 그나마 위험요소는 적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뢰는 영리하게도 땅 속에서 지뢰탐지기를 피해 다녔다. 탐지기에 걸리지 않은 지뢰 하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동생의 몸은 산산조각이 났다. 지뢰가 제거된 지역에서 동생은 발견되지 않은 그 M16 대인지뢰를 밟은 것이다. 쩡 소리와 함께 그는 허공으로 날았다.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 그 찰나의 순간, 무언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느낌이 들면서... 참 평온했노라고 몇 년 뒤에 그는 내게 말했다. 자신의 육신이 부재될 때, 아마도 자아는 그런 순수한 영적인 세계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15일 만에 의식이 돌아왔다. 하지만 반쪽은 사리지고 없었다. 없어진 오른팔과 다리와 눈은 뇌의 메모리에만 남아 계속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주의에서 들리는 말로는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했다. 다들 죽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끝내 살아남았다. 그리고 자신이 밟은 지뢰로 인해 소대장을 비롯해 4명이 숨졌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알았다.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기적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대인지뢰를 밟고서 살아남은 기적, 옆에 있던 동료 4명이 죽는 과정에서도 자신만 살아남은 기적, 이 놀라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살아남은 자로서 어떻게 받아주어야 할지, 살아남은 게 행운인지 죽었어야 하는 게 행운인지, 중요한 것은 산자로서 아무런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세상은 상식적이며 범상하게 그의 시간을 접수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네 명이 어느 날 문득 나를 찾아온다고...


비무장지대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있고, 아름다운 산도 있고, 들녘도 있고, 강도 있고, 개천도 있고, 계곡도 있고, 고라니도 있고, 나무도 있고, 야생초도 있고, 고사목도 있고, 사람도 있고, 그리고 지뢰도 있다. 세월이 흐른 현재 지뢰는 아이 로봇의 미래처럼 그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1953년 휴전 협정이 맺어진 후 비무장지대에는 수많은 대전차 지뢰와 대인지뢰가 매설되고 살포되었다. 과장된 설인지 모르지만 1950년대에 미군은 발목지뢰 같은 것은 아예 비행기로 무차별적으로 뿌려댔다고 한다. 군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개수는 남쪽에서 126백만 발, 북쪽에서 80만 발을 매설하였다고 하는데 그 숫자는 불확실한 기록과 추정치를 섞은 숫자일 뿐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200만 발 보다 훨씬 많은 지뢰가 땅 속에 묻혀 있다는 것이다. 지구 상에서 지뢰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 바로 대한민국의 비무장지대라고 한다. 세계가 공식 인정한 결과물이다.


지뢰는 주기적으로 계획된 설계에 따라 정밀하게 매립되고 제거된다. 일정한 지역에 지뢰 지도를 만들고 대전차 지뢰, M16 대인지뢰, M14 발목지뢰 등의 좌표를 설정한 후 그 지점에 정확하게 매설하는 것이다. 그렇게 매설된 지뢰는 시간이 지나면 부식되어 작동이 되지 않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교체를 해주어야 하며 그래서 매설 위치는 아주 정밀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군에게 오히려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다. 몇십 년 동안 비무장지대에서는 당연하게 그렇게 반복해왔다. 하지만 100개를 심고 100개 모두 제거할 수는 없다. 숫자에 오차가 많을 경우엔 그 지역을 아예 미확인지뢰지대로 지정한 후 봉쇄해 버린다. 그렇게 제거하지 못한 지뢰들이 유령처럼 땅 속을 떠도는 것이다.


공병대의 목숨을 담보하여 힘들게 심어 놓은 지뢰는 폭우와 산사태 등 자연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유실되기도 하고 흙과 낙엽에 묻혀 종적을 감추기도 한다. 나무처럼 한 곳에 지긋이 있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놈은 당초 있던 자리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두더지처럼 지뢰는 살아 있으며 상황에 따라 느리게 혹은 빠르게 이동을 한다. 목적지가 어딘지는 그놈들도 모르고 우리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DMZ와 GOP를 탈출한 지뢰들은 머나먼 거리를 이동하여 드디어 인근 민간인들이 사는 데까지 당도한다. 2년 전 언론에 나온 기사를 보면 1953년 휴전 후 지뢰로 인해 사망한 민간인은 239명이고, 부상을 당한 민간인은 369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5년에서 2019년 사이에도 1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1950~1970년대의 시대 상황을 볼 때 비공식적인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확신한다. 더구나 군 내부에서 발생한 지뢰 사고는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있음 직한 지뢰 사고가 현재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과 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면 지뢰를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그 작업이 아주 어렵다. 이런 현상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골치 덩어리이다. 폭탄을 만지는 것은 목숨을 담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당연히 대한민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뢰 밀도가 가장 높으니 제거 작업에 따른 위험도 그만큼 높고, 경제적인 손실도 클 수밖에 없다. 언젠가 군에서 비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을 보면 지뢰를 전부 제거하는 데 500년 가까이 걸린다고 했다. 그것은 지뢰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이슈화 되자 시니컬하게 군 고위 관계자가 말한 것이지만, 군 전문가들이 볼 때도 최하 200년, 최고 500년의 시일이 소비된다고 한다. 중간점을 찾는다고 해도 350년이다. 제거는 매설하는 기간보다 10배 정도 더 걸리고, 당연히 비용도 그만큼 더 많이 들어갈 것이다.


어느 따뜻한 봄날 땅속 어디엔가 숨어있던 발목지뢰가 봄기운을 받아 당초 있던 자리를 벗어나 지면으로 상승하고 그 위에 노랑제비꽃이 핀다. 그 유혹은 아련하다. 우리는 그 꽃을 보며 평화를 느낀다. 누군가는 그 꽃이 다른 꽃보다도 유독 더 예쁘다고 한다. 살풍경이 범람하는 세계에서 청춘을 불사르고 있는 어느 사병의 메마른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아이러니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저 그렇게 그런 모양으로 존재할 뿐이다. 어쩌다 그 꽃의 치명적인 미혹에 이끌려 어느 꽃다운 청춘의 발목 하나가 날아가더라도 우리는 그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지뢰는 에이리언처럼 강한 생존력을 가졌다. 그놈은 비무장지대란 생태계에서 최상위 개체로 진화하였다. 아마도 그놈은 자웅동체로 진화하여 자체에서 번식을 할지도 모른다. 숙주도 필요 없고, 먹잇감이 없어도 몇십 년 동안 버틸 수 있다. 하여 그들은 현재 비무장지대에서 지배자로 군림한다. 그들의 천적은 없다. 고라니도, 노루도, 멧돼지도, 산토끼도, 산양도, 그리고 사람도 그 지뢰를 두려워하며 피해 다닌다. 지금도 땅 속에서 유령처럼 떠돌다 햇살 좋은 어느 날 우리들 누군가를 집어삼킬 것이다.


우리는 지뢰와 싸워 결코 이길 수 없다. 이 세계에서 만큼은 지뢰가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발목지뢰는 잔인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M16 대인지뢰는 밟으면 거의 죽음에 이르지만 그놈은 그 이름처럼 절묘하게 발목까지만 절단을 하고 관대하게도 목숨은 살려놓는다. 지뢰사고의 70~80%는 그놈 몫이다. 우리의 통제에서 벗어난 그놈은 오히려 우리를 공격하고 있으며, 그런 부조리한 현상에 대한 설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납득할 만한 논리가 부재한다는 것이리라.


발목지뢰의 정식 명칭은 M14 대인지뢰이다. 흔히 국산영화에서 보았던 지뢰는 M16 대인지뢰로서 사람을 살해하는 무기의 일종이라면, M14 대인지뢰는 위에서 말한 대로 발목까지만 손상하게 설계된 무기이다. 심각한 부상자를 만들어 전투부대의 전력 손실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표적 지뢰다. 부상병이 발생하면 최소한 두 명 이상이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개발한 M14 대인지뢰는 처음 1950년대 대한미국 비무장지대에 살포된 후 그 성능을 인정받아 전 세계로 수출하는 히트 상품이 되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비무장지대는 미군의 매우 훌륭한 신무기 시험장이었다고 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재질이 플라스틱이며, 무게 100g, 직경 56mm, 높이 40mm. 보온병 뚜껑 모양 같기도 하고 무슨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보이며, 당연히 지뢰탐지기에도 포착되지 않고, 가벼워서 비가 좀 많이 내리면 물줄기를 타고 낮은 데로 어디론가 이동하고, 또 비가 오면 더 멀리 이동하다 어느 둔턱에 걸리면 그곳에 정착하고, 흙과 가랑잎에 쌓여 은폐되어 있다가 어느 누구의 발목을 만나면 드디어 목적을 달성한다. 어떠한 관대함이나 배려심도 없이 9~15kg의 압력을 받으면 폭발한다.


그렇게 우리는 비무장지대에서 지뢰와 함께 살며 때론 미워하고 때론 서로 사랑하기도 한다. 사악한 죽음의 여신 케레스처럼,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지뢰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우리의 육체를 강탈하지만, 우리는 저항하지 못한다. 그 악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태곳적 신화에서 그러했듯이 순응하고 때론 신적인 존재로 추앙하기도 한다. 지뢰는 악의 신이며 우리는 그 노여움을 경배하는 신민일 뿐이다. 진리는 신의 뜻이다. 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진리이다. 그 누구도 신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


아무튼, 그리고 위에서 말한 친척 동생은 20여 년 후 따사로운 어느 봄날 이승에서의 삶을 스스로 마감한다. 아마도 세상은 그가 살만한 곳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이승에 살면서 자기 자신이 선택한 처음이자 마지막 행위인지 모른다. 아니면 상식적이고 범상한 이 세상을 향한 복수였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먼저 간 4명의 소대원들과 해후한 후 그동안의 삶을 구구절절 얘기할지도 모른다.


난 그날 참 많이 울었다. 서러웠다. 그가 서러웠고, 내가 서러웠고 그리고 우리가 서러웠다.


그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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