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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호용 Feb 07. 2022

DMZ의 몇 가지 풍경

지금은 남북 화해와 평화 정착의 일환으로 비무장지대 내의 GP 중 일부를 철거하기도 하고, 민간인에게도 제한적이지만 부분적으로 비무장지대와 관계된 공간을 개방하고 있으며, 그렇게 군사적인 환경에 혁신을 가하고 있다. 초고속 정보시대이니 만큼 비무장지대의 수많은 정보 등이 각종 미디어에 범람한다. 지뢰사고와 폭행사고 등이 일어나면 즉시 언론에 보도되고, 환경론자들이 비무장지대의 자연환경 상황을 실태 조사하여 그 결과물을 정보통신망에 발표하고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등이 가세해 민간인들을 휴전선 현장으로 불러들여 관광 개념과 접목시킨다. 심지어 국영방송국 카메라가 DMZ에 들어가 수색대의 작전 반경을 촬영하여 방송하기도 한다. 또한 구글어스로 비무장지대와 그 주변을 실감 나게 관측할 수도 있다. 인터넷 포털에서 비무장지대를 검색하면 정말 수많은 정보들이 넘쳐흐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비무장지대, 철책선, 전방지역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아주 먼 나라 이야기처럼 굉장한 거리감이 있었고 어떤 두려움마저 들기도 했었다. 그곳에서 웬만한 인명 사고가 일어나도 언론에 나오지 않았고, 그곳 풍경을 접하려면 기껏해야 임진각 정도밖에 갈 수가 없었으며, 그곳이 얼마나 황폐화되어 있는 곳인지 그 누구도 확인할 수 없었다. 철저하게 통제된 군사지역이었다. 사실 아직 전쟁이 종식되지 않은, 지금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엄혹한 휴전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 폐쇄성은 그곳을 아주 먼, 대중과는 전혀 상관없는 중간계쯤으로 인식시키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 이야기와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그 시대가 배경이다.   


DMZ에서 처음 맞닥트리는 건 허공에 맹렬히 울려 퍼지는 대남, 대북방송 소리와 철책선을 따라 끝없이 굽이쳐 이어진 불모지화 된 황토색 능선들이다. 청각과 시각은 낯선 그 살풍경에 압도된다. 터질 것 같은 고출력 앰프와 초현실적인 기괴한 무대장치 위에서 벌어지는 헤비메탈 공연처럼, 그렇게 하드 코어 풍광이 눈앞에 장엄(?)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 GP마다 큐브 모양의 스피커들이 서 있고, 철책 너머에는 축구장 조명탑처럼 그보다 몇 배나 더 큰 거대한 스피커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그 스피커들은 서로 정조준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파상공격을 해댄다. 마치 탄검파천황 음공의 초식 같은 수많은 음파 포탄이 비무장지대 공중에서 서로 충돌하고 그 파편들이 고스란히 우리가 있는 GP로 떨어진다. 비록 살상 무기는 사용하지 않지만, 고성능 스피커를 통한 심리전은 연일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내공이 약하면 내장이 파열될지도 모른다.  그곳은 심리전의 적나라한 교전장인 셈이다.


"민족의 태양이시고 위대한 영도자이신 김일성 수령 아버지…."


이렇게 하루를 시작한 대남방송은 "타향살이"를 마지막으로 자정을 넘어서 방송을 마감한다. 낮에 하는 방송은 주로 군가 풍의 노래와 노동당 뉴스들이기 때문에 우리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야간이 되면 상황은 좀 달라진다. 밤이 깊어갈 무렵 경계근무를 하는 GP의 초병에겐 "타향살이"가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노래는 아니다. 하늘엔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가 손에 잡힐 듯 초롱초롱 빛나고, 봄바람이 살랑거리고, 그러면서 "타향살이 몇 해던가…"라는 구슬픈 옛 노래가 그 빛나는 하늘에 퍼지면 초병의 감성은 촉촉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 전투력을 상실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좀 지나다 보면 그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쯤으로 여기고, 선천적으로 감각이 무딘 초병은 아예 무시해버리기도 한다. 하여튼 마음대로 앰프 코드를 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거기에서 좀 생활하다 보면 상황에 놀랍도록 적응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방송 소리는 도심지에서 들리는 수많은 소음들의 집합체처럼 명확성을 상실한 채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으며 허공에 떠돌 뿐이다.


그래도 장시간 심리전에 노출되어 있으면 당사자는 아니라고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심리전에 오염이 될 수 있다고 군의 심리전 교범은 말한다. 그리하여 대략 3개월 주기로 GP의 주인은 바뀐다. 꼭 오염 때문만은 아니지만, 전투력 유지 측면에서 볼 때 환경의 변화는 필요하기도 하다. 좁은 울타리 안에서 장시간 폐쇄된 생활을 한다는 게 전투력 향상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남방송 중에 한동안은 대담프로가 우리 사이에서 인기(?)였다. 월북한 병사와 장교와 그리고 민간인들 네댓 명이 출연해 남한을 비판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방송이었다. 자신들이 왜 월북하게 되었는지 그 내막을 아주 자세하게 떠들어대고 현재는 김일성 수령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너무나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국방부 병사들도 고생하지 말고 천국이나 다름없는 북으로 넘어오라는 친절한 조언을 빠트리지 않는다.


그들 중에는 지금도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신삥'월북자들도 있었다. 운전병을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지프를 몰고 북으로 넘어갔다는 모 사단 대대장과 선임의 괴롭힘을 참지 못하고 넘어왔다는 사병 그리고 도박과 여자 문제로 헌병대에서 내사를 받던 중 월북한 모 부대 중대장 등 그러한 내용은 사실처럼 우리 사이에서 이미 회자하고 있었다. 국방 신문이나 방송에는 나오지 않아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들 사이에서는 널리 펴져 있던 소문들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이야기들이 팩트라는 증거는 없다. 우리들 중에 그런 사건을 목격한 사람도 없고, 공식적으로 상부에서 공문화되어 발표된 것도 없다.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사실인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풍문일 뿐이었다. 음모론적으로 논하자면 어느 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전적으로 심리전 전술의 일종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북에서 방송을 하는 내용이나 남에서 떠도는 추문이나 모두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실 우리는 그런 속사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대남방송 소리가 더 잘 들려 그 연유를 우리 GP 방송병에게 물어보았더니 앰프 출력이 북쪽 것이 더 좋다고 했다. 지금이야 남쪽 앰프 출력이 월등하여 북한이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지만 그때의 사정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릴 때면 이곳은 유난히 더 뜨거워진다. 겨울에 추운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여름에도 FEBA보다 더 뜨겁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건 바로 지열 때문이다.


남과 북 모두 자신들의 철책 비무장지대 방향으로 사계청소 확보를 위해 능선부에 황토색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정도로 몇십 미터를 불모지 작업을 해놓았다. 단어가 뜻하듯, 뿌리까지 긁어내 풀 한 포기도 나지 않게 만드는 작업이다. 특히 북쪽의 상태는 더욱 심각하여 아예 5부 능선까지 불모지화 된 곳도 많았다. 그 능선을 따라 콘크리트로 지어 올린 군 시설물들이 그 살풍경을 더욱 고착화하고 있었다. 폭 4km의 비무장지대가 그런 흉측한 모양을 한 채 155마일 한반도를 가로질러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군사분계선 방향으로 들어오면 숲은 이루고 있지만, 그것 또한 대한민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식적인 숲은 아니다. 가을과 봄이 되면 남과 북이 자체적으로 화공작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지역에선 며칠 동안 산과 들이 화마에 휩싸인다. 밤에 타오르는 산불 관경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한 장관을 연출한다. 그 불길이 남쪽 철책선을 넘어오지 않도록 맞불을 놓기고 한다. 물론 작전의 일종이니 산불 진화를 할리 없다. 또한 때론 시도 때도 없이 고라니나 그와 비슷한 크기의 동물들이 뛰어놀다 지뢰를 터트려 산불을 일으키기도 한다. 청명한 가을 어느 날 펑 소리와 함께 연기가 치솟고 잠시 후 불길이 오르며 그 불길은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타오른다. 그런 화염은 그렇게 수십 년 동안 반복하여 그 땅을 황폐화시켰고, 그런 현상은 과거형이면서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의 모진 풍상에 시달리면서도 숲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사막화가 되어 유다 지역의 광야처럼 이미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로 몇 번은 변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은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인간의 폭력을 이겨내고 있다. 정말 끈질긴 생명력이 아닐 수 없다. 갈참나무, 싸리나무, 생강나무, 칡 나무 등 사람 키만 한 잡목들과 마치 골프장 페어웨이처럼 듬성듬성 벗겨진 초지 지대가 태반을 차지하고 있다.  사바나처럼 억새와 야생초들이 뒤덮은 그 사이로 그나마 나무 행세를 하는 떡갈나무와 물푸레나무와 박달나무 등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듬성듬성 모여 있다. 하지만 그 나무들이 얼마나 오래 동안 그곳에서 생존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나무줄기가 굵어지면 관측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마에 시꺼멓게 그슬린 크고 작은 나무들이 제각각 기괴한 모습을 한 채 곳곳에서 수십 년의 참상을 중거하고 있다. 특히 군사분계선이라는 글자가 적힌 하얀 삼각형 팻말이 보이는 구릉 한쪽 초지에 불에 타 죽는 거대한 고사목 하나가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데, 망원경으로 보면 마치 신들린 나무처럼 영험함과 어떤 섬뜩한 기운이 감돌았다. 맨눈으로 보아도 한아름일 정도로 꽤 큰 그 나무는 언제 죽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잡초와 잡목들은 수많은 화마에도 다시 생명을 잉태하지만 그리하여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하지만, 검게 그을린 고사목은 그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고집스럽게 거기 서 있는지 모른다. 한국전쟁 최고의 격전지가 바로 여기였고, 그 와중에도 살아남아 무언가를 증언하려는 것은 아닐까. 역사의 징표로서 눈을 부릅뜨고 말이다.


6월이 되면, 작열하는 태양과 용암처럼 달아오른 지열은 오갈 데 없는 GP를 집어삼킨다. 그렇게 GP는 무기력하게 저항 한번 제대로 못하고 뜨거운 여름에 노출된다. 겨울이면 방한복을 입고 운동을 하면 추위를 이겨낼 수 있지만, 여름은 한계가 분명하다. 더위부터의 도피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태양이 사하라 사막처럼 뜨거워도 그늘이 있으면 그나마 버틸 수 있지만 지열로 인한 찜통더위는 그늘과 심지어 지하 벙커도 감당하지 못한다. 한낮에 상황실 망루에서 근무할 때면 온몸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땀과 친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된다. 본능적으로 말이다. 즐겨야 한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닭고, 생존을 위한 자기 최면이며 그렇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고문이기 되기 때문이다. 더위를 즐겨라, 어렵지만 적응하기 나름이다. 확대된 땀구멍에서 분수처럼 솟구치는 분비물은 체모가 확연히 줄어든 호모사피엔스 때부터 진화해 온 이래, 자동적으로 체온을 조절하기 위한 교감신경의 물리적 결과물이라는 사실, 다한증처럼 교감신경의 과잉반응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인체의 변화의 과정이라는 사실, 그렇게 인체의 놀라운 자율운동에 경의로음을 표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적응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부식차를 엄호하기 위해 통문에 갔다 올 때면 초주검이 되어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단독군장은 물론이고 월남전에서 사용했음직한 무거운 방탄조끼는 더위의 강도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탄조끼의 주재료가 보온재로 탁월한 성능을 자랑하는 유리섬유라는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한여름 이런 날씨에 그 방탄조끼를 신주처럼 모시고 DMZ를 휘젓고 다니는 독수리들에 비하면 배부른 소리이긴 하다. 그 세계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이니까 말이다.


비무장지대의 여름은 아래 지역보다 더 길고 물론 겨울도 더 길다. 봄이 되었는가 하면 여름이고 갈색으로 물들자마자 눈이 내린다. 아마도 여름은 5월부터 9월까지라고 해야 옳다. 대처의 절기와는 상관없이 이곳의 여름은 길고 지독하다. 바싹 마른 흙먼지가 들썩거리는 GP 철책 밖 불모지에서 어느 날 파란색 잡초가 고개를 내미는가 싶더니 다음날 종적을 감추었다. 높은 기온을 견디지 못하고 말라비틀어진 것이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타서 없어졌다'라고 표현한다. 그렇게 여름의 열기는 마치 금성의 뜨거운 대기압처럼 이 공간의 모든 것을 짓누르며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길고 독한 여름이.   


GP는 관측이 목적이기 때문에 산봉우리에 자리 잡기 마련이다. 물론 북쪽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남과 북은 사이좋게 서로 마주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상대 거리가 들쑥날쑥하다. 가능하면 1km를 넘기려 하지 않고, 가까운 곳은 불과 500m도 안 된다. 그냥 맨눈으로 상대방을 관측할 수 있고, 깔때기를 사용하면 맨 목소리로 대화도 할 수 있는 거리이다.


우리 GP는 약 800m 정도였다. 한강 다리 중에서도 가장 짧다고 하는 한남대교보다 더 짧은 거리이다. 포대경이나 쌍안경으로 보면 아주 생생하게 라이브로 북쪽 초소를 관측할 수 있고, 시력이 좀 좋으면 맨눈으로도 웬만한 풍경은 시야에 잡을 수 있다. 물론 그쪽도 상황은 똑같다. 피아간에 관측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휴전이 아니라면 모든 시설물과 병사들은 벙커나 진지에 은폐를 하겠지만, 현재는 심리전의 일환으로 많은 부분을 오픈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에서 백성들에게 군복이 입치고 깃발도 많이 들게 하고 또한 후방에서 의병들이 피리를 불고, 북을 요란하게 치면서 왜군의 멘탈을 빼앗아 결국 공성전에서 이겼다고 하는 데, 그런 심리전처럼 그곳의 병사들도 적군을 행해 무언가 연출을 한다.


북한군은 뙤약볕 아래 그늘도 없는 황량한 능선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서로 화기애애하게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북한식 무술과 총검술을 연기하기도 한다. 어설프지만 열심히 한다. 하지만 때론 심리전을 망각하고 질통과 화목을 운반하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숨어서 요령을 부리기도 하고 때론 얼차려 받은 인간적인 모습도 덤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그들의 작업하는 광경을 보면서 정말 작업 하나는 잘한다라고 이죽거린다. 하긴 우리도 그런 모습을 연출하라고 교육은 받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 아무튼 외부인들이 보면 애들 장난 같은 행위라고 혀를 차겠지만 그곳에서는 고도의 심리 전술로 통한다.


그리고 아침 녘 정규방송이 잠시 휴식을 취할 즈음, 바람 없는 맑은 날씨가 이어질 때면 그들은 어김없이 깔때기 확성기로 다정하게 아침 인사를 한다.


"국방부 동무들! 밥 새 편안하셨습니까! 이 화창한 날씨에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오늘 우리 전우 중에 한 명이 생일이라 아침은 소고깃국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훈련 잘된 심리전 병사가 또박또박 표준말로 자랑질해댄다. 그들의 아침 인사가 끝나면 우리도 대응한다. 담당은 목소리 큰 강 상병이다.


"우린 소고깃국 매일 먹는다, 이놈들아!"


유치하지만 그들과 우린 이렇게 대화를 한다. 영화 황산벌에서 백제군과 신라군이 서로 욕설을 퍼붓는 장면처럼 말이다. 문득 이 웃픈 풍경에서 이성과 논리를 거부한 다다이즘적 퍼포먼스가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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