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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호용 Feb 17. 2022

함께 존재한다는 것

DMZ 이야기

러시아의 문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자전적 소설이 있다. 대한민국 문학계의 기준에 따르면 중편소설 정도 되는 분량의 소설이다.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2차 세계대전 참전 중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며칠 만에 탈출하지만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스파이 협의를 받아 10년 징역형 선고를 받는다. 전쟁이 끝나고 가족에게로 가려던 꿈이 산산조각이 난 그는 시베리아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혹독한 수형 생활을 시작한다. 그 10년의 수형 생활 중 8년이 지난 어느 하루의 일상을 보여주는 이야기인데, 그 내용에 10년의 시간을 압축하고 있다고 한다. 2년 후 풀려나야 하지만 당시 소련의 수형 제도는 정치범들에겐 엄혹하여 출소자들을 다시 보호 감호소로 보내 현실 세계로의 출구를 막고 있는 실정이었기 때문에 그의 귀향은 기약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소설은 그런 수형 경험을 바탕으로 격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슈호프는 수용소 생활에 거의 완벽하게 적응한 인물이다. 페추코프처럼 적응을 못해 고통스러워하지도 않고, 부이노프스키처럼 수용소 측의 부당함에 항의하다 독방에 갇히지도 않는다. 영화감독 출신 부르주아 죄수인 체자리 마르코비치가 건네주는 피우다만 담배꽁초를 받아 흡족하게 나머지를 아낌없이 다 빨고, 그날 저녁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그의 소포를 대신 받아 전해주면서 그 대가로 받은 빵 200그램과 양배추 수프에 감사해하고 행복을 만끽한다. 그리고 취침 전에는 다시 체자리의 하해와 같은 보시로 받은 소시지를 한 입 먹으며 그 육즙에 감탄을 하고, 나머지는 내일 먹기 위해 신주 모시듯이 관물대 깊이 숨겨놓는다. 그뿐만 아니라 수용소 생활에서 어떤 사소한 노동에도 최선을 다하고, 소소한 이득에도 만족하며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것이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와 열악한 환경과 비상식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억압된 자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슈호프 만의 지혜로운 방법론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불의에 항거하는 영웅도 아니며 단지 빵 한 조각에 만족해하는 소시민적 수형자에 불과하다. 때론 비굴하기도 하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면서 성경을 몰래 숨겨놓고 매일 숙독하는 알료사에게 체자리한테 얻은 비스킷을 사심 없이 나누어 주기도 하고, 체자리의 화려하고 풍족한 소포의 내용물을 탐하지도 않는다. 코프치크처럼 영악하여 '수용소의 거물'이 될 것이라고 비아냥도 듣지 않고, 다른 수형자들 시선에 잘 띄지 않으며 적당한 선함과 정직함과 그리고 최소한의 윤리성을 가지고 있는, 그저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하다. 솔제니친의 처절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인간형인 것이다.


수용소처럼 이중 철책에 둘러싸여 있는 GP는 DMZ 내의 산봉우리에 아무런 보호망 없이 노출되어 있고, 사실 북한군의 관측과 공격 타깃이 되기에 매우 안성맞춤이다. 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중세 유럽 어느 백작의 성처럼 위용을 자랑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곳을 성이라고 부른다. 그 성에는 수색대원만 있는 건 아니고 군견병, 의무병, 방송병 등 특과병들이 우리와 부대끼면서 함께 생활한다. 다른 GP에는 포대 OP병도 있다고 하는데 다행히 우리 GP에는 그들의 자리는 없었다. 아무튼 의무병과 군견병까지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방송병이란 병과가 있다는 것은 그때 처음 알았다. 정말 특수부대였다. 굳이 이름을 들먹이자면 테니스병, 바둑병, 심지어 BOQ 연탄병도 있었다.


그들은 각자 근무하는 위치와 취침하는 방은 다르지만 같은 벙커에서 생활하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그리고 3~4개월 주기로 바뀌는 수색대와 달리 그들은 6개월 이상 1년 가까이 한 GP에서 근무하며 휴가도 가고 교육도 갔다가 온다. 터줏대감이면서, GP장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된 임무 수행 등으로 인해 우리와 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그래서인지 그들과 우리는 일정 부분 이상 친숙해질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사실을 며칠 후 알게 된다. 아마도 그들과 우리는 태생부터가 다른, 섞이지 못하는 일종의 이질적인 요소가 많았는지 모른다.


나는 처음 한동안 그들과 친하게 지냈다. 친하다는 의미는 인간적이거나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교감이 아니라 단순한 오락적인 교감이었다. 내가 그들과 인간적으로 친하고 싶다고 해서 그들이 수용하는 것은 아니고, 반대 입장이더라도 관계 설정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어떤 형태의 욕망이 환경적 요인과 연결이 되면 그것을 매개체를 요인과 연관된 인간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아무튼 왕고참인 나와 1분대장인 정 하사만이 그 오락적 분위기에 탐닉했다. 소대장도 알고는 있었지만 제어하지는 않았다.


방송병은 두 명이었다. 그중에 병장(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만년 병장이었다)을 달고 있는 방송병1이 우리가 GP에 온 지 며칠 안 되었을 때 왕고참인 나를 방송실로 조용히 불러 다이제스트 과자를 주며 접근을 했다. 처음 들어가 본 방송실은 숙소와 방송 장비들이 함께 있는 아담한 공간이었다. 그곳엔 과자, 라면, 담배, 소설책 등이 수북했고, 센데이서울은 물론이고 페트하우스 같은 도색잡지도 꼬불쳐두고 있었다. 한마디로 슈퍼마켓이었다. GP로 오는 상당한 부피의 소포는 거의가 그들 것이었다. GP 속의 또 다른 세계였다. 마치 이등병 때 잠깐 있었던 땅굴 예상지역의 포대 오피 벙커 같았다. 그곳은 여기보다 레벨이 더 높은 만물상이었다. 판매까지 했으니까.


발단이 그러했는지 모르지만, 방송실에 당연히 화투도 있었으며 우린 그들과 두 명이 누우면 딱 맞는 방바닥에 5명이 둘러앉아 자연스럽게 밤마다 고스톱을 치기 시작했다. 멤버는 나와 정 하사 그리고 방송병1,2와 군견병 그렇게 5명이었고 때론 그중에 한 명이 빠지기도 했다. 그냥 심심풀이 게임이었다. 그 게임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우린 약간의 돈을 투자했다. 사실 GP에서는 돈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당시 월급 5천 원과 생명수당 3천 원을 아낌없이 그 게임 베팅했다. 다 잃어야 8천 원이었다. 그리고 거의 매일 밤 나는 그들과 어울렸다.


사실 꼬불쳐 둔 돈이 없는 것 아니었다.  월급과 수당을 다 잃고, 가지고 있던 비상금도 시간이 갈수록 야금야금 줄어들었다. 몇 만 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나에겐 적은 돈이 아니었다. 게이머의 심리상태를 논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하듯, 돈을 일수록 평정심에 금기 갔으며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기 일쑤였다. 처음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했지만 항상 그 초심은 희미해지고 결국 들보가 가득 차기 마련이다. 도박이라고 할 수 없는 크기의 판돈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지하세계에 몰입되어갔다. 웃고 즐기는 게임 수준이 아니었다.


사실 FEBA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짓이었다. 사병들은 엄두를 내지 못했고 장교나 하사관들도 관내는 물론이고 관외에서 도박을 하다 헌병대에 걸리면 가혹한 징계를 받았다. 군에서의 도박은 마약 같이 취급을 받고 사병들 세계에서도 몰래 술은 마시더라도 화토는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정말 은밀한 하우스처럼 부대 밖 가게 같은 곳에 작은 하우스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런 도박에 연루된 사병끼리 채무자와 채권자 관계가 만들어지고 집으로 긴급 자금 요청을 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물론 걸리면 다 영창이고, 하사관이 연루가 됐다면 군복을 벗어야 한다.  


아무튼 방송병1은 타짜였다. 2년여 동안 방송병 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생존의 법칙인지 모른다. 녀석의 실력으로 보아 아마도 여기를 거쳐 간 우리 같은 수색대원들의 호주머니를 다 털어냈을 게 분명했다. 이겨보려고 정하사와 거의 짜다시피 해서 게임을 하기도 했지만 녀석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나중에 이해한 것은 그렇게 실력이 월등하지 않았다면 화투 자체가 거기에 없었다는 거다. 결과적으로 우린 녀석의 무료한 시간을 위해 몸과 돈을 바쳐 헌신한 꼴이었다. 생명수당까지 바치면서 말이다. 알고 보면 피 같은 돈이지 않는가. 결국은 가산을 탕진한 나는 그때서야 나의 한계를 절감하고 하우스를 떠났다. 물론 내가 소대 왕고참이니 그 하우스도 자동으로 해산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다음번 민정경찰이 여기에 들어오면 어느 누군가는 그 타짜에게 걸려 나와 같은 꼴을 당할 게 분명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방송병 때문에 살풍경 넘실대는 비무장지대에서 생각지도 않게 여군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FEBA는 물론이고 군 입대 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여군을 여기서 볼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요즘이야 여군의 수가 많아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귀한 존재였다.


전 GP는 무슨 여자 연예인이라도 온 듯 심장 박동수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었다. 라이브 대북방송을 위해 지피까지 들어온 2명의 여군은 북한군을 향한 심리전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위문공연이 목적이었다고 우리는 격하게 주장했다. 소대장이 가능하면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우리들에게 명령을 했지만 혈기가 넘쳐흐르는 20여명이 그 명령을 제대로 수용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을 대충 은폐는 했지만 20여개의 시선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여군에게 집중되었다.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여기는 수도원이 아니라 피 끓는 청춘들이 모인 특수한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유일한 병장이라는 신분을 내세워 가능하면 여군과 지척에 있으려고 모든 권한을 행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에스코트하는 방송병과 소대장 틈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오감을 집중했다. 중사 정도면 어림잡아 나와 같은 도래였다. 광채가 나는 얼굴과 한 올 흐트러짐이 없는 팽팽함 머릿결과 대뇌를 혼미하게 하는 목소리, 옅은 화장품 냄새 등이 삭막한 사병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었다.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세 시간 후 그녀들은 우리를 남겨두고 에프터도 없이 홀연히 떠났다. 나는 마지막까지 그녀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경호 분대에 끼어 통문까지 아낌없이 에스코트해 주었다. 물론 왕고참이란 신분을 이용했음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별은 슬픈 법이다. 더구나 여자와의 이별은 더 슬프다.


여군들이 떠나고 난 뒤 GP는 정적에 휩싸였다. 축제가 끝난 후의 텅 빈 캠퍼스처럼 GP에는 뜬금없는 멜랑꼴리 한 바람이 훑고 있었다. 나는 상황실 망루에 올라가 멍하니 북쪽 초소를 보고 있었고, 말 많던 정 일병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대원 모두 무슨 묵언 수행이라도 하듯 입을 열지 않았고, 주방장 주 일병만이 저녁 식사를 만들면서 신나게 뽕짝을 불러대고 있었다.  


동이 틀 무렵이면 군견병은 군견을 데리고 매일 운동을 시켰다. 가능하면 우리들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들은 좁은 지피 공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철책을 돌기도 하고, 정문 쪽 연병장에서 여러 가지 동작과 운동을 했다. 군견을 훈련시키고 케어하는 것은 군견병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군견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군견병은 영창에 간다고 전해 들었다. 그리고 정확한 기간은 모르지만 주기적으로 군견 훈련소로 나가서 훈련과 운동을 받고 왔다.


셰퍼트 종인 그놈은 몸집이 거대하고 사나워서 우리들에게 개로서 취급을 못 받았다. 수색, 추적, 경계, 탐지 등의 임무를 가진 군견들 중 그놈은 비교적 약한 경계견이었는 데도 말이다. GOP에서 추적견 셰퍼트를 본 적이 있는데, 그놈은 한마디로 사자와 곰을 합쳐 놓은 거대한 괴물이었다. 개 집구석에서 웅크리고 앉아 나를 노려보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그놈은 아마도 내가 본 개 중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다. 개가 무섭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GP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주인 몰래 그놈을 보러 갔다가 기겁을 하고 도망쳤었다. 우리가 아는 개의 수준이 아니라 괴수였다. 그리고 어느 날 군견병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그는 나를 데리고 그놈 한데 가서 정식으로 인사를 시켜주었다. 그렇다고 그놈과 내가 친해진다는 건 아니었다. 월래 개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런 사나운 개를 좋아해야 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놈은 사람을 물지 않아요. 아주 착한 놈이죠. 이름이 한라산예요. 나나 안병장님이 군적 기록부에 기록되어 있듯이 이놈도 군견 기록부에 정식으로 올라가 있고 우리처럼 견번도 있어요. 예도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지금 7살인데, 1년이나 길어야 2년이면 은퇴를 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거의가 안락사당하는 거죠. 사냥견이나 애완견처럼 사람과 사귀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민간인이 키울 수 없어요. 이 개 값이 얼만지 아세요? 아마 내 목숨 값보다 비쌀걸요. 이 놈 먹는 것도 장난이 아녀요. 일 년 동안 먹는 사료 값이 얼만지 아세요. 우리가 먹는 값보다 훨씬 많아요. "


군견은 군견병 없이 존재할 수 없고, 군견병 또한 군견 없이 존재의 의미가 없다. 그 둘은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라는 것이다. 군견병이 휴가를 갈 경우에는 다른 군견병이 GP로 들어와 군견을 돌볼 정도였다. 개 한 마리에 군인 한 명을 필요로 하는 게 상식적으론 납득할 수 없지만 군대이기에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른다.


군견은 예사로운 개가 아니기 때문에 군견병 이외의 다른 사병과는 가능하면 접촉을 차단한다. 우리 한라산도 GP 내에서 가장 후미진 곳, 사람 눈에 안 띄는 곳에 기거를 했고, 처음 그곳에 들어가서 인수인계할 때 접근금지 교육을 받았었다. 군견은 존재하지만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관계였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만사 규율대로 되는 것은 없다. 결국은 정일병과 군견병이 한바탕 싸우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요일 오후 하릴없이 GP를 거닐던 정일병은 한라산 집을 지나치지 못하고 특유의 장난기에 발동을 걸었다. 키는 작지만 깡다구 하나는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은 녀석은 줄이 끊어질 듯 무섭게 달려드는 한라산을 향해 장난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한라산은 정말 말뚝을 뽑아버릴 것처럼 광분했다. 그 소리에 놀란 군견병이 득달같이 달려와서야 한라산은 진정을 했고 정일병도 그때서야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것을 빌미로 벙커에서 둘이 한판 붙은 것이다. 다행히 주위에 소대원들이 있어서 욕설과 멱살잡이 정도로 끝이 났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이유야 어찌 되었든 군견병은 아마 정 일병에게 치도곤을 당했을 것이다.


" 예 발정기예요 발정기, 그러다가 개 줄이 끊어져버리면... 상상을 해보세요. 그 후에 벌어질 일은 정말 끔찍하잖아요. 한라산이 아무리 사람을 물지 않는다고 하지만 저 정도로 광분하면 사람 하나는 정말 아작이에요 아작... 그럼 누가 책임지겠어요. 저예요 저!"


취침 무렵, 위로 차 자신의 방에 찾아간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씩씩거리며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건 후에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한라산 집 근처에 가지 않았다. 사실 그런 다툼은 옳고 그름을 떠나 전혀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무병이 있다. 사실 의무병의 존재는 미미하다. 겨우 20여 명의 장정들의 건강을 위해 의무병이 상주해야 하는지 의문이며,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의무병은 다른 사병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당연히 잘 눈에 띄지도 않았다. 방송병과 군견병은 그래도 아는 채를 하지만 의무병은 이상하리만치 분위기에 섞이지 못했다. 이 좁고 답답한 공간에서 근무를 하려면 사람과 교류가 있어야 정신건강에 유익한데 의무병은 정말 수도사처럼 지냈다. 그가 왜 그토록 거리를 두고 지냈는지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그때는 그렇게 보였다.


GP라는 곳은 여러 병과를 가진 사병들이 생활하기 때문에 분위기가 산만한 것은 사실이었다. 옆 GP는 포대 OP까지 겸하고 있어 우리보다 대여섯 명이 더 많았다. 더구나 OP장은 장교였다.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 가운데서도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고 자중을 하지만 때론 본의 아니게 험악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곤 한다. 펄펄 끓는 청춘들이 좁고 고립된 공간에 갇혀 있으니 오죽 답답하겠는가.


하지만 불문율은 있다. 서로 다투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넘어선 안 될 선을 모두들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특과병이든 아니든 비무장지대에 있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불문율이었다. 조금만 긴장감이 이완된다면 끔찍한 총기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과병들과의 관계도 그렇지만 우리들끼리도 감정의 급격한 변화를 방지하기 위해 서로 노려해야만 했다. 군기가 빠져 다소 문란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이 총기사고보다는 오히려 나은 결과를 만든다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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