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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호용 Jun 03. 2023

DMZ의 5월, 그리고 영창

DMZ 이야기

GP에서 가장 높은 곳은 대공용 M50 기관총이 설치되어 있는 망루 건물 옥상이다. 건물로 따지면 3층 높이이고 천정도 없이 허공에 노출되어 있다. 그곳에 오르면 탁 트인 조망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주변 능선과 봉우리 중에서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장쾌한 조망에 한동안 넋을 놓기도 한다. 불모지 작업과 산불 등으로 황폐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망루에서 보이는 DMZ의 풍경은 때론 이국적이기도 하고 때론 평화롭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곳이 DMZ 공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군사분계선을 따라 평행으로 하늘을 비행하는 나를 상상하기도 한다.   


그날 하늘은 정말 좋았다. 며칠 동안 잔뜩 흐려 있던 하늘엔 아침이 되자 장막이 걷히듯 눈부신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늘이 활짝 열리는 날이면 나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망루 옥상에 올라가곤 했는데, 그날도 그랬다. 태양이 중천에 오르자 하늘은 미치듯이 청명해졌다. 5월의 하늘은 더 높고 투명했다. 가시거리도 멀어서 북쪽 철책 너머 마지막 지평선까지 선명하게 시선에 잡혔다. 구름 한 점 없고 티끌 하나 없는 무결점의 하늘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그 색깔을 코발트색이라고 칭한다. 그 코발트색 하늘이 은하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북쪽도 남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코발트는 긴 손을 내뻗어 내 몸을 시나브로 하늘은 들어 올린다. 중력도 그 하늘에 매료되어 넋을 놓는다. 눈꺼풀이 아련하게 닫히면서, 무중력에게 나를 내놓는다. 두 팔을 벌리고 눈을 감는다. 땅도 사라지고 소리도 사라지고 시간도 사라진다. 오직 허공만이 나의 존재를 확인시킨다. 그 허공의 느낌을 아는가. 오감이 없는 그 느낌을 아는가. 마치 돈오처럼.


그렇게 5월의 하늘에 취해 삼매경에 빠져있던 그날 오후, 누군가 시샘이라도 하듯 갑자기 DMZ에 비상이 걸렸다. 먼저 옆 GP에서 긴급 타전이 왔다. 군사분계선 공중에서 남쪽 방향으로 이상한 물체가 이동하고 있는 거 같은데 확인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점심식사 뒤 나른함을 뒤로하고 긴급하게 대공초소에 올라가 청명한 하늘을 관측했다. 망원경이란 망원경을 다 꺼내 들고 하늘을 향해 들이밀었고 육안도 동원했다. 관측 범위가 넓을 때는 오히려 육안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었다. 망원경의 관측 범위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격으로 공중을 훑고 있을 때 우리는 옆 GP와 중간 지점에서 무언가 남쪽으로 이동하는 흐릿한 물체를 찾아냈다. 비행기인지 풍선인지 알 수는 없었다. 움직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런 사실을 인근 GP와 확인을 하고, GOP에 있는 OP에서도 때마침 물체를 발견했다는 연락이 왔고, 우린 CP에게도 이런 사실을 보고했다. 상황은 긴박했다.


그때 GP장은 이렇게 외쳤다.

"야 오공 쏴! 사수 어딨어?!"

우리는 이 단말마에 뭐야 하며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기관총을 쏘라고? 사수? 송 상병은 어디에 있는 거야? 몇몇 소대원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소총을 가지러 쏜살같이 벙커로 내려가기도 했다.

"송병철! 어딨어 당장 끌고 와! "

나는 대공초소 아래에다 대고 이렇게 소리쳤다. 대공용 MG50 기관총이 대공초소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소 아래에서 멍 때리고 있던 송 상병이 다급하게 대공으로 뛰어 올라왔다. 녀석은 자신이 사수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소대 기재계도 맡고 있기 때문에 바빠서 그랬을 것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솔직히 군기가 빠진 건 사실이었다.

"사수가 어디 가 있는 거야 새끼야! 빨리 쏴!"

GP장의 다그침에 송 상병은 재빨리 기관총 실탄을 장전하고 GP장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쫓아 총구를 하늘로 향했다. 비행 물체는 남쪽을 향해 유유히 비무장지대를 벗어나고 있었다.

"당겨! 당기라구!"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처컥처컥거리는 방아쇠 소리만 허공을 때리고 있었다. 기관총의 굉음을 기대하며 귀를 막고 몸을 움츠리고 있던 나와 GP장은 순간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건 뭐야?


그리고 곧바로 옆 GP에서 콩 볶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서 OP에서 발칸포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이어 한 무리 철새들의 비행처럼 희미한 발칸포탄이 코발트색 하늘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며 날아가고 있었다. 언제던가, 밤하늘을 비행하는 예광탄은 정말 불꽃놀이처럼 화려했었다. 그리고,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전면전이 붙기라도 한 듯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불고, 이상하게 약속이라도 한 듯 순간 상황은 종료되었다.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코발트색 하늘은 멀쩡했다. 물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MG50은 그것도 모르고 계속 처컥거리며 침묵을 깨고 있었다.


그 이상한 물체는 비행기는 아니었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현존하는 북한의 비행물체는 AN2기란 쌍발 비행기 밖에 없다. 하지만 그놈은 높게 날지 못하기 때문에 육안으로 포착되는 약점이 있다. 따라서 비행기일 가능성은 제로였다. 그럼 흔히 볼 수 있는 삐라풍선이라는 것인데, 그것 또한 풍선이 풍선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최정예 육군 관측병의 시력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수긍할 수 없었다. 그럼 무언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무인정찰기인가? 아니면 UFO인가? 추측컨대, 아마도 5월의 코발트색 하늘 때문인지 모른다. 그 하늘이 마술을 부린 거다.


하여튼 그래도, 그 물체가 무엇이든 간에 대공용 병기 사수는 그곳을 향해 발사를 해야 하는 의무와 권한이 있다. 이곳 상황은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기 때문에 이상한 물체를 발견할 경우 즉시 사격할 수 있는 권한이 경계병에 있는 것이다. 간혹 철책에서 야근 경계근무 시 적의 침투조로 오인하여 고라니를 쏘아 죽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경우 상부에선 대개 포상휴가를 보내준다. 하물며 철책에서도 그런데 이곳 DMZ에선 그런 수칙은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기 마련이다. 사실 무장을 하면 안 되는 지역이지만 그것은 문서에 불과할 뿐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적이 공격이나 침투를 할 때 사격하는 행위는 무엇보다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어 행위였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송병철은 사단 영창에 갔다. 화기 정비 불량이 이유였다. 사실 녀석을 영창에 보내느냐 마느냐를 두고 CP에서 말이 많았다. 다른 GP에서 사격을 안 한 것도 아니고, 한 번쯤은 관용을 베풀어 주어도 되는 건 아니냐는 주장이 우세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대대장까지 이 사실을 알게 되어 사태는 빼도 박지 못하게 되어 갔다. 중대장이 관용을 간청했지만 대대장은 끝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역시 소문대로 독종이었다.


녀석이 입창 하는 날 나는 통문까지 가서 그를 배웅했다. 우리 모두 녀석과 같은 마음이었다. 한국전쟁 때 사용했음직한 구닥다리 기관총을 물론 매일 기름칠하고 애지중지 관리를 한다면 문제없이 총알이 나가겠지만 그런 관리적 문제와 결부시켜 총체적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물론 FEBA에서 훈련할 때 사격 연습은 했지만, 이곳에 와서는 송 상병에게 그 기관총으로 사격할 기회를 한 번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며, 또한 그 기관총이 마지막으로 발사된 게 언제인지 모른다는 거다. 그전 소대에서도 발사가 됐었는지 안 됐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결과만을 가지고 결정한 상부의 부당함에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송상병이 영창에 가 있을 동안 내내 우리는 이 문제를 가지고 격론을 펼쳤다. 미확인 비행 물체와 엠 오공 불발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설명을 해달라, 육이오 때 쓰던 고물 총을 가지고 전쟁을 하라고 하면 우리 보고 죽으라고 하는 거 아니냐, 전쟁이 일어나면 총알받이로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하는 숙명이지만 그렇더라도 총은 좀 쏘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 화기 정비 불량 타령하지 마라, 화기 같은 화기를 주고 정비하라고 해야지, 케리버50 아무리 정비를 해봐라 총알이 나갈 거 갔냐고, 그리고 중요한 건 그걸로 비행기가 맞냐고, 우리 소대장은 알티 출신이라 이해는 하지만 도대체 우리 중대장님은 뭐 하는 거냐, 삼사 출신이라 힘이 없는 거냐, 육사 출신이었으면 다 막아냈을 거다... 영창에 간 송 상병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보다 우리는 상부의 무지스러운 논리를 성토하기에 바빴다.   


일주일 후 송 상병은 통문을 통해 핼쑥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원래 얼굴 피부색이 하얀지 모르지만, 불과 일주일밖에 햇빛을 보지 못했는데도 녀석의 얼굴은 몰라보게 하얗게 변해 있었다. 취사병한테 특별히 부탁해 보관해 두었던 튀김두부를 가져온 나는 통문에서 그와 해후할 때 녀석에게 강제로 그 두부를 다 먹였다. 녀석은 한번씩 웃으며 뭐 '깜방'에 갔다 오는 것도 아닌데... 하며 겸연쩍어했다.


송 상병은 저녁을 먹은 후 고참급 몇 명을 식당에 모아놓고 영창에서 겪었던 경험담을 무슨 무용담 늘어놓듯 걸쭉한 입담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FEBA에서 처음 수색소대 대원을 차출할 때 내무반도 다르고 나와 친분이 두텁지는 않았지만 일병 때부터 눈여겨봐 왔던 터라 나는 GP장한테 그를 적극 천거했었다.


"영창이라는 데가 군기교육대처럼 뺑뺑이 돌리는 덴 줄 알았는데 가보니까 엄청 편하더라구요. 하지만 육체적으로 편하지만 정신적으론 아주 피곤한 곳이란 걸 바로 다음 날 알았죠.


거기선 말을 못 하게 합니다. 그 안에 있는 한 묵언을 원칙으로 하죠. 그리고 책상다리로 각 잡고 앉아 있어야만 하죠. 오후에 1시간 정도밖에 나가 햇빛을 쏘이는 것 외에는 하루 종일 그렇게 앉아 있어야 합니다. 물론 밥 먹을 때도 그렇게 않아서 먹어야 하죠. 뭐 아주 단순하고 담백하죠. 창살 바로 밖에는 헌병놈이 지키고 있으니 시야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의반타의반 아무 책이나 봅니다. 거의가 위인전이나 제목도 모르는 자기 개발서 같은 책인데 아마 우리나라에 있는 위인전이란 위인전은 모두 섭렵했을 겁니다. 하루 종일 각 잡고 앉아 책을 읽어 보세요, 무슨 고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중들 선방에서 참선하는 것도 아니고, 이건 고문입니다 고문, 11시 취침 5시 기상인데 그것도 제시간에 자는 날은 한 번도 없었어요. 졸음이요? 걸리면 머리 박고 1시간인데... 어떤 놈은 각 잡고 앉아 눈 뜨고 푹 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고...


그러다 마지막 날 지랄 같은 헌병 한 놈을 만났는데, 정말 재수 없는 게 그날이 그놈 휴가 갔다 복귀한 다음 날이었다는 거예요. 퇴창하는 날 안 사실이지만 그놈은 영창에서 일명 너구리로 불리는 아주 유명한 악질이었어요. 하여튼, 그날 저녁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얼차례 종류를 다 섭렵하게 됐죠. 그중에 가장 감명 깊은 얼차례가 매미라는 건데, 매미는 영창의 상징과 같은 얼차례라는 부연 설명을 한 그놈은 하찮은 핑계를 만들어 우리 방을 선택해 매미를 집행했어요. 철창에 4발로 매달려 30분 정도 있어 보세요. 온몸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고, 팔은 부들부들 떨리고, 발로 창살을 겨우 겨우 지탱하면서, 정말 죽을힘을 쓰고, 그러다 한 명 떨어졌는데, 다시 30분 연장은 물론이고 다른 방에도 매미를 집행하는 아 정말... "


사단에는 군기교육대와 영창이라는 징벌소가 있다. 군기교육대는 복장 불량, 자세불량 등 경범죄에 해당하는 군인들을 모아 말 그대로 군기를 잡기 위해 목봉체조 같은 육체적인 징벌을 가하는 곳이다. 그리고 영창은 휴가 지각 복귀, 위수지역 이탈, 경미한 탈영, 구타 폭행 등의 죄를 지은 군인을 모아 정신교육을 시키는 교도의 목적을 가진 곳이다. 영창에 입소하는 것을 입창이라고 하는데, 사병은 물론이고 하사관이나 장교들도 잘못을 저지르면 입창 하는 경우도 많고 그들 또한 사병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그리고 수송대의 운전병이 군용차를 몰다가 민간인 자동차를 박아 접촉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 그 운전병도 여지없이 입창 시킨다. 자동차 사고로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징벌을 받는다는 게 민간에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군에서는 군기와 연결시켜 용납을 하지 않는다. 하여튼 이보다 더 큰 죄는 정식 군사재판을 받고 군 교도소로 간다.


사실 GP에서는 영창에 갈 일은 거의 없다. 총기사고의 위험 때문에 구타도 있을 수 없다. 예전에도 그렇고 이후에도 그렇지만, GP에서 고참의 구타나 따돌림 등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대원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하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조심한다. 그리고 휴가나 외박 나갈 일도 없고, 탈영을 하라고 해도 할 수도 없다. 육지와 먼 외딴섬이라면 빠삐용처럼 탈출하여 자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GP에서 설령 탈영을 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거대한 철책이 가로막고 있어 사실상 실현 가능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성벽을 넘더라도 거미줄처럼 쳐져 있는 GOP의 경계망을 뚫을 수는 없다. 그런 중대한 사건 외에는 상급부대의 시선에서 벗어난 독립부대이기 때문에 트집 잡힐 일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늦은 봄 5월, 코발트색 하늘은 우리에게 생각지도 않은 세상을 구경시켜주었다. 그 하늘에 취해 우리 모두는 잠시 몽환적 세계에 빠졌는지 모른다. 공간적 고립은 정서적 고립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도 그 등식에 적용된다. 더구나 타의에 의한 고립은 정서적 고립의 밀도를 더 높인다. 코발트색 하늘은 거부할 수 없는 공간으로부터의 일탈을 촉발시켰고 우리는 그분의 유혹에 순진하게 넘어가고 말았다. 고립이 아니면 벌어질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 결과물로 송 상병이 억울하게 사단 영창에 갔다 왔지만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 또한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이고,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상황은 의식을 지배하고, 그저 무의식만이 그 사이를 배회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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