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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호용 Aug 02. 2023

DMZ 그리고 생존의 법칙

DMZ 이야기

흔히 휴전선을 강하게 표현할 때 ‘휴전선 155마일’이라고 말한다. 공식적으로 길이 값이 나와 있는 것은 없지만, 군사분계선을 기준 하느냐 철책을 기준 하느냐에 따라 오차는 있지만 통상적으로 155마일이라고 한다. 정확한 길이보다도 155마일의 의미는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긴 거리라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거리를 ㎞로 환산을 하면 대략 250㎞이고, 남쪽 관할 폭이 2㎞이니까 면적은 500㎢인데, 들쑥날쑥한 폭을 정밀하게 따져서 계산하면 정확하게 570㎢다. 물론 강화도가 있는 해안지역은 제외한 값이다.

여의도 크기와 비교해 보면, 그 면적이 2.9㎢이니까 여의도보다 약 197배 크다. 그리고 남한 면적이 99,720㎢라고 한다. 그러면 비무장지대는 남한 면적의 약 0.57%가 된다. 또한 서울 면적과 비교해 보면 570㎢/605㎢이니, 서울 크기의 약 94% 즉 서울 크기와 거의 같다는 결과가 나온다.

만리장성은 길이 면에서 보면 세계 최고지만, 비무장지대를 울타리라는 개념으로 보았을 때는 감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북쪽과 남쪽 각 2㎞, 즉 폭 4㎞에 길이 250㎞의 울타리라는 것인데, 그렇게 보면 만리장성은 인류 문명사에서 그리 자랑할 만한 구조물이 될 수 없다. 국경선의 면적이 남북 합해 전체 1,000㎢가 넘는데, 지구 어디에서도 그만한 사이즈의 국경선은 존재하지 않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인류 문화사적으로도 그에 비견되는 토목 건축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비무장지대라는 공간은 위아래는 철책으로, 양 옆으론 바다로 고립되어 있다. 인간이 만든 완벽한 울타리다. 영어로 'barbed wire fence'라고 하듯 철책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강하며, 다람쥐 이상은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하다. 철책의 주재료인 강철은 탄소 함유량이 많아 매질이 강하고 형태도 칼날처럼 예리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살기가 돋는다고 말한다. 그 철책은 그것도 모자라 2중으로 설치되어 있다. 비무장지대는 아마도 인간이 만든 가장 크고 견고한 고립 지대일 것이다. 그곳은 다리엔 갭(파나마와 콜롬비아를 잇는 정글 고립지역)보다도 레벨이 높은 인간의 접근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마계와 같은 지대이다. 당연히 특수한 임무를 띤 사람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살 수 없고, 산다고 하더라도 몇 발짝 움직일 수도 없다.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안에는 수십 년 동안 만들어 놓은 군 시설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땅을 지배하는 포식자는 당연히 지뢰지만, 조금 높다고 하는 봉우리에는 어김없이 관측 초소들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지하에는 그 보다 훨씬 규모가 큰 콘크리트 구조물 즉 벙커가 묻혀있다. 하지만 북한의 시설물은 남한을 압도한다. 북한 초소 하나의 규모는 우리보다 월등하여 요새화되어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 육안으로 보이는 것도 우리를 압도하는데 안 보이는 시설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누가 그랬듯이 전 비무장지대의 요새화라고 해도 과하지 않은 표현일 것이다. 만리장성처럼, 몇 백 년이 지난 후 이곳은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유네스코에 등재될지도 모른다.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의 현장으로서 역사적인 가치는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서울 크기만 한 그 중간계 바다에, 검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사이로 암초처럼 삐쭉 솟은 GP가 보인다. 파도가 조금이라도 거세지면 금방이라도 휩쓸려 사라질 것 같은 일엽편주처럼 GP는 검푸른 바다에 존재의 가치를 상실한 채 위태롭게 떠있다. 그 GP에도 어김없이 살기 품은 견고한 이중 철책이 둘러쳐져 있으며 그리고 고립의 최 정점인 그 안에 사람이 산다. 가끔은 울타리가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를 가두어 놓은 것인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고립을 인식하지 못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 빠져 있을 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군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복지 시설 확충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지금은 각 GP마다 전기가 들어오고 펌프도 설치되어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게 했다. 또한 컬러텔레비전, 비디오 등 문화시설도 완비시켰다. 더구나 우리 GP는 2년 전에 신축되었기 때문에 쾌적하고 견고한 벙커와 욕탕과 샤워기를 겸비한 호텔식(?) 목욕탕 그리고 깔끔한 환경의 취사장과 식당과 운동시설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텔레비전은 전파를 전혀 받지 못하기 때문에 무용지물이었다. 단지 교육용 비디오로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FEVA에 있을 때는 자유롭게 채널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외부와의 통신은 일절 차단되어 있었다. 물론 방송병에게 라디오는 있었지만 그것을 이용해 외부 세계와 소통을 원할 정도로 우리는 정보에 목말라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우리 GP가 문화적인 측면에서 가장 낙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른 GP에는 우리에겐 없는 선임하사들이 있어서, 매주 외박을 나가는 그들이 각종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와 관람을 한다는 기가 막힌 사실, 더구나 일명 문화영화로 칭하는 포르노 비디오도 밀반입된다는 팩트가 우리 GP에 확 퍼졌다. 우리는 경악했다. GP장을 향해 우리는 왜 선임하사가 없냐면서 결기를 세우고 성토를 했다. 피 끓는 청춘들의 아우성이었다.


좁은 공간에서 30명에 가까운 인원이 생활한다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더구나 쇠붙이를 먹어도 소화시키는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이지 않는가. FEVA 같으면 매일 구보도 하고 주말이면 축구 같은 운동도 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언감생심이다. 사실 족구 정도는 살살할 수는 있지만 공이 울타리를 넘어가는 경우가 있어서 그것 또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실내에서 탁구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방법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하여 소대장과 나는 고민 끝에 육체미 대회를 열기로 작정을 하고 공고문을 식당 벽에 붙였다. 대회는 한 달 후고, GP 안에 있는 모두에게 자격이 있고, 5등까지 등수를 매겨 차등으로 포상금을 주는 내용이었다. 1등 포상금은 병장 월급의 10배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물론 그 돈은 3개월마다 한 번씩 나오는 소대장의 보너스에서 충당하기로 했다.

양지는 물론이고, 그늘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땀구멍에서 땀이 솟아오르는 게 보이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그동안 묵혀두었던 에너지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평균대도 있고 아령과 베벨 등도 부족함 없이 충분했다. 시들은 배추처럼 축 처져 있던 GP는 갑자기 활기를 띠었다. 피 끓는 혈기들이 마구 토해져 나오고 있었다. FEVA 같으면 매일 훈련과 작업에 시달리느라 이런 근육 운동은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벨을 들어 올렸다. 특히 임 상병은 다른 대원들보다 더 열심이었다. 마른 체형에 안경까지 끼고 있어서 다소 허약해 보였던 그는 매일 평행봉에 매달렸다. 운동하고는 담을 쌓고 있을 것 같은 외형이었지만 그도 이 답답한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는지 정말 미친 듯이 평행봉에 몰입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GP에 있는 모든 대원이 식당에 모였다. 드디어 육체미 대회가 열린 것이다. 이렇게 전 대원이 함께 모인 경우는 처음이었다. 심사는 소대장과 분대장이 맡았다. 소대장이 호명하는 대로 관중 앞에 나온 대원들은 한 달 동안 갈고닦은 자신의 몸을 들어내 놓고 육체미 선수처럼 꽤 그럴싸한 포즈를 취했다. 근육보다도 다양한 포즈가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검게 선텐까지 한 대원도 있었고, 장족의 발전을 한 대원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미진한 대원들도 있었지만 모두가 하나의 목표에 매진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웃고 즐기는 시간이 흘러갔고 드디어 순위가 발표되었다. 1등은 임상병이었다. 거의 절벽에 가까운 가슴이었던 그의 가슴팍에는 닭 가슴살 같은 두툼한 근육이 붙어 있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열심히 평행봉에 전념한 결과가 그의 몸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벌크를 제법 키운 다른 대원들이 있었지만 장족의 발전을 한 임상병의 노력이 심사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그는 상금으로 황금마차가 GP에 들어왔을 때 대원들에게 거하게 한턱 쏘았다.      


전기 없이 살 수는 있지만 물 없이는 못 사는 게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의 생존 법칙이다. 전기 없이는 살 수 있지만 물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물은 절대적이다. 2년 전, 이등병 때 일명 개나리라고 하는 땅굴 예상 지역에 처음 자대 배치되어 세 달 정도 생활했었는데 그곳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고정된 부대가 아니라 작전의 특성상 임시로 만든 부대였기 때문에 막사는 양철로 된 콘센트 막사였고 전기도 없었다. 물론 지하수도 없었다. 그런 환경을 염두에 두고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옛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막사는 물이 마르지 않는 계곡 인근에 만들어졌다. 그 계곡물을 모아 4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매일 먹고 씻고 빨면서 사계절 알뜰하게 사용을 했다. 물은 신성불가침적인 존재였다. 겨울엔 밤새 언 계곡 얼음을 깨고 또 깨고 하면서 물을 지켰다. 나중에는 두꺼운 얼음 속으로 팔을 길게 뻗어 바가지를 넣어 졸졸 흐르는 물을 간신히 퍼 올렸다. 겨울이면 물은 석유보다 훨씬 더 귀한 물질이었다. 그나마 산봉우리로 매일 물을 질러 나르는 철책 경비 소대보다는 매우 양호한 편이었다. 그곳에서는 여기보다 물과의 전쟁이 더 치열했다.

초여름에 접어들던 6월 중순, 이제 비무장지대도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겨울과 여름은 길었고 봄가을은 짧았다. 서울에서 북쪽으로 100㎞도 안 되는 거리인데도 이곳은 유난히 춥고 더웠다. 겨울은 북풍한설 만주 벌판처럼 춥고 길었으며, 여름도 아열대성 기후를 능가할 정도로 덥고 길었다. 지역의 특성상 체감온도가 낮고 높은 것이 아니라 실제 온도계에 나타나는 기온이 그랬다. 말로만 듣던 영하 30도, 내 눈으로 확인한 가장 낮은 온도는 정확히 영하 27도였다.

아까운 줄 모르고 귀하디귀한 물을 펑펑 쓴다고 DMZ 신이 노하셨는지 어느 날 갑자기 단수가 됐다. 확인한 결과 GP 아래 계곡 급수장에 있는 펌프가 돌아가지 않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CP에 알렸다. 동기인 CP 보급계 최병장은 최대한 빨리 AS를 보내겠다고 흔쾌히 대답했지만 녀석의 전력으로 보아 의심이 드는 것을 속일 수 없었다. 하여튼 뭔가 찜찜했지만 속는 셈 치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비상용으로 저장해 놓은 물탱크의 용량으로 보아 아무리 아껴 써도 3일이었다. 우린 그날부터 절수를 시작했다. 빨래와 목욕 금지는 물론 대원 1명 당 세면용으로 하루에 한 바가지 정도 급수하는 긴급조치를 단행했다. 물론 식수도 제한했다. 물 담당은 주방장 오일병이었다.

하지만 3일이 지나도 역시나 AS는 오지 않았다.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최병장을 닦달했다. 녀석은 항상 그렇듯 천연덕스럽게 며칠 더 있어야 할 거 같다고 했다.

"그럼 물차라도 보내야 할 거 아냐!"

"그것도 알아봤는데 물탱크 트레일러를 달고 지프차가 거기까지 갈 수 없대. "

"왜?"

"힘이 딸려 무리하게 가다가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거야. 거기 지형을 봐라. 너도 알잖아."

"그럼 우리 보고 어떡하라고?"

"머... 길러서 해야 하지 않을까... 며칠이면 될 거 같은데..."

"머? 길러서?"

그래도 우리는 버틸 때까지 버티기로 했다. 한여름 씻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게 고역이었지만, 사실 페바에서 훈련 나갈 때면 일주일 동안 제대로 씻지 못하는 건 보편타당한 현상이었다. 특히 겨울철 훈련 때는 물을 구할 수가 없어 거의 씻을 수가 없었다. 중대 인사계가 그랬다. 그것도 훈련이라고. 한여름 일주일 동안 빨지 않고 땀에 절은 뻣뻣한 군복을 입고 있어 보라. 지금껏 맡아보지 못한 신비로운 냄새를 경험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그건 페바에서의 일이고 여긴 상황이 달랐다. 현재의 우리는 쾌적한 근무환경을 필요로 했다.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그런 씻는 문제로 사기저하를 유발하는 것은 군 전력상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런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물을 펑펑 쓸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다고 강력하게 최병장에게 주장한 것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가장 적응력이 강하다고 자부하던 나도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상의를 벗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웠지만 우린 씻을 수가 없었다. 내일이면 이빨 닦을 물도 배급받을 수 없을지 몰랐다. GP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웃음기도 사라지고 생기도 사라져 사기가 바닥을 쳤다. 비라도 오려나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물당번 오일병은 독하게 물을 지켰다. 녀석이 야속했다. 왕고참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해결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가장 단순하면서 확실한 방법이었다. 바로 급수작전이었다. 최악의 경우 물을 길러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는 최병장의 말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은 설마 물을 길러야 한다는 상황에 직면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니들끼리 알아서 지지고 볶고 잘할 건데 뭐라며, 녀석은 시치미 뚝 떼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날 제리캔과 물통이 될 만 한 통을 가지고 취수장으로 내려갔다. 물론 그것도 작전이기 때문에 우린 전원 무장을 했다. 취수장은 GP에서 5~6분 내려간 계곡 끝머리에 있었다. 우리 GP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었다. 해발이 높은 GP는 더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할 것이다. 아무튼 샘물을 파서 만든 저수장엔 맑고 시원한 물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 물을 보자마자 우린 고참 쫄병을 망각하고 그 물에 달려들었다. 무슨 사막의 오아시스라도 만난 듯했다. 우리는 잠시 여기가 비무장지대라는 것을 잊고 서로에게 등목을 해주며 물에 탐닉했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후 그 오아시스를 뒤로 하고 다시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20리터짜리 제라캔과 플라스틱 말통을 매고 악전고투 끝에 봉우리까지 올라갔다. 내려올 때는 몰랐는데 올라갈 때 보니 경사가 아주 심했다. 더구나 소총까지 매고 20㎏짜리 물통을 짊어졌으니 속도가 제대로 날 리 만무였다. 내려올 때 5분이 올라갈 때는 20분이었다. 씻었던 몸은 다시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매일 자고, 먹고, 경계근무 만하는 생활을 3개월 가까이했으니 말이 수색대지 몸은 두더지처럼 벙커를 벗어나지 않는 방송병의 체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하루에 한 번씩, 세 번을 더 한 후 드디어 펌프가 수리되었다. 우리는 그날 기념으로 목욕탕에 물을 가득 담아 신나게 샤워 파티를 벌였다. DMZ 신이 또 노하시어 다른 벌을 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사실 겨울이 되면 물과의 전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우리 소대가 올 겨울에 GP로 다시 투입될지는 모르지만, 겨울의 적은 바로 물이라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취수장 물과 급수배관이 영하 20도 이하에서는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GP에서 펌프장까지 가는 산길을 해빙해야 하고, 매일 물을 길어 날라야 하는 노역을 견디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노역쯤은 상황이 닥치면 씩 한번 웃고 감행할 수는 있지만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게 최소한의 바람이었다. 극한은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만약 샘물을 혹한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해 결빙이 된다면 그때는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그 상황을 묵묵히 헤쳐나가는 우리를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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