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디엠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호용 Oct 16. 2023

DMZ, 어둠 속으로

흔히들 빛 입자 하나 없는 짙은 어둠을 칠흑 같다고 말한다. 어둠의 밀도가 높아지면 마치 블랙홀처럼 어떤 알 수 없는 강한 흡입력이 만들어지고, 그 힘은 자신을 주시하는 누군가를 빨아들인다. 면도날에 베이는 듯한 섬뜩함이 순간 의식을 지배한다. 어둠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제 오후 옆 사단 GP에서 북한 GP와 교전이 있었다. 총알 몇 발이 오고 가는 교전이었다고 한다. 우리 GP처럼 북한 초소와의 거리가 800미터 정도 되면 소총으로 교전하기가 힘들지만 M60 기관단총으로는 충분한 거리이다. 그 GP는 상대 거리가 1,000미터라고 하는데 그 정도는 완벽한 교전이 가능하다. 사실 GP 하나의 화력으로 보았을 때 북한군 GP의 화력이 우리를 압도한다. 우리는 방어를 목적으로 최소한의 화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들은 공격을 염두에 둔 화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에서 날라 온 탄흔이 우리 GP 벙커에 정확히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최소한 14.5mm 정도 되는 중화기 이상의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어쩌다 한번 교전이 벌어지면 전면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만 시키려는 듯 북한군은 간혹 그렇게 시비를 건다. 그것은 심리전의 일부이다. 그리고 우리 측 GP도 반드시 그에 대응을 한다. 그것 또한 심리전이다. 군 사기 상 절대 밀려서는 안 된다고 군 교전규칙은 말한다. 이런 작은 교전은 휴전 후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전설에 의하면, 북한 침투병이 우리 측 GP로 잠입해 전체 병력을 살해하고 북으로 넘어갈 경우 우리도 침투조를 북으로 보내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필히 했다고 한다. 성공 유무는 모르지만 보복은 정당성을 담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총알 몇 발에 몇십 배의 대응은 하지 않는다. 확산을 서로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민정경찰'이란 완장을 차고, 무장을 하지 않아야 할 비무장지대 안에선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그 교전의 여파는 A형 근무로 이어졌다. 사실 실제로 교전이 있었는지 훈련을 목적으로 설정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실전과 훈련의 경계선에 대해 우리는 의문을 제기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A형 근무는 한마디로 올나이트 경계근무를 말한다. 그러니까 전 부대원이 교대도 없이 초소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것이다. 철책과 달리 GP는 그래도 근무 조건이 좋은 편이다. 소대장 임의로 요령을 부릴 수 있고, 초소가 옥외에도 있지만 벙커 안에도 있어 한결 안전성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밤을 새워 경계근무를 선다는 건 고단하긴 마찬가지다. 더구나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다. 설령 훈련이라고 하더라도 공간적으로 실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겨울 이외에는 그나마 A형이든 B형이든 어떠한 악조건이라도 못할 건 없다. 하지만 겨울엔 상황이 아주 많이 달라진다. GP야 공간이 좁으니까 그렇게 문제가 안 되지만 철책에서는 혹독하다. 엄동설한 영하 20도가 넘는 불모지화 된 산등성이 환경에서 바람도 제대로 막아주지 못하는 허름한 초소에 6시 이상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더구나 바람이라도 불면 살을 에는 추위에 초병은 모든 걸 포기하게 된다. 딱히 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방적인 한파와의 눈물겨운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 지구를 지배할 만큼 놀라운 적응력을 가진 동물이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초병은 상의와 하의를 굴러다니지 않을 만큼 껴입은 채 벙어리장갑으로 동료와 권투를 한다. 상급자에게는 일방적으로 맞을 경우가 많지만 더러 홧김에 본래의 실력을 발휘하여 상급자를 좀 심하게 다루다 그게 탈이 되어 얼차려를 받는 하급자의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것도 지겨우면 피티 체조를 하고, 몸이 좀 훈훈해지면 잠시 그 열기를 음미하다가, 다시 추워지면 또 무언가를 찾아 밤새도록 계속 뛰고 움직인다. 본능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놀라운 건 그 혹한에서도 철모를 깔고 앉아 주무시는 득도한 고참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겨울엔 오히려 눈 오는 날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싸리빗자루로 자신이 맡은 할당 철책로를 쓸고 눈이 쌓이면 또 쓸고 하면서 겨울밤 긴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추위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제설작업이라는 사실을 한 번만 경험해도 동감이 간다.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그렇게 밤새 빗자루질에 몰입하다 보면 드디어 먼동이 뜨고 철책로는 본의 아니게 완벽한 제설작업이 된 채로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GP장의 지시로 완전 무장을 하고 두 명씩 한 조를 이루어 각자 주어진 초소로 이동했다. 옥외 초소와 벙커 초소로 분산 배치되었다. 날씨는 칠흑 같이 어두웠다. GP 내의 모든 전등은 소등됐다. 초소 배치가 완료되었을 때는 플래시 불빛도 사라졌다. GP는 암흑이 되었으며 무거운 침묵이 그 암흑을 짓누르고 있었다. 질식할 것 같은 어둠이었다.


나는 동쪽 벙커 초소에 윤 일병과 함께 배치되었다. 녀석은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밖을 향해 사주 경계를 하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날 무렵 나는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줄 요량으로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신상에 대해 호구조사 하듯 자세하게 물었다. 물론 목소리를 최대한 작게 했다. 이렇게 단 둘이 있을 때의 대화는 군대 문화의 특상상 경직될 수도 있지만 상급자가 조금만 다가간다면 상대방의 마음의 문은 쉽게 열릴 수 있다. 서로 진솔해질 수 없더라도 인간적인 면을 서로 공감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부산 출신인 윤일병은 광복동에 있는 여러 다방에서 디제이를 했었던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디제이를 했다면 목소리는 물론 말재주도 좀 좋아야 하는데 그는 왠지 소대원들과 섞여 있을 때는 말수가 적었다. 아직 일병 때라 군대 문화에 녹아들지 못한 원인도 있었다. 영혼이 자유로운 인간은 이런 특수한 조직에서는 살아남기가 녹녹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1년 전 우리 소대 고참이었던 장병장도 윤일병과 같은 연예계 주변에서 일을 했었는데 결국 병장까지 달았는데도 불구하고 제대 몇 개월을 남겨두고 의가사 제대를 했었다. 하여튼 윤일병은 부산 특유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대해 전달력 좋은 톤으로 흥미롭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나는 녀석의 사돈의 팔촌뻘 되는 여동생이 서울의 모 대학 1학년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정도로 샅샅이 호구조사를 끝내고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녀석에게 남기복 병장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1월이었다. 처음 배치된 자대는 연대 예비 소대였다. 대남방송 소리가 웅웅거리는 GOP에서도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그곳은 살풍경한 동토의 땅이었다. 아마도 첫 번째 야간 경계근무일 게다. 그때 나와 함께 한 고참이 그 당시 남기복 일병이었다. 말이 이병 일병 사이이지 그는 일병 말호봉이어서 나보다 1년 이상 짬밥 수가 더 많았다.


낯선 환경에 아직 적응되지 않는 나에게 그는 다른 고참들처럼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선한 눈빛으로 차분하게 대해 주었다. 그는 나에게 처음으로 카시오페아 별자리 위치를 알려주었고,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란 시를 읊어주었다. 윤동주의 시는 알고 있었지만 그가 차분하게 들려주는 그 시는 색다른 정감이 울어 나오게 했다. 초롱이 빛나는 깊은 새벽 겨울 하늘을 보면서. 그리고 그는 이런 노래를 혼자서 읊조렸다. 아다지오 알레그로처럼 느리게.


눈 녹인 삼팔선에 봄은 왔건만

삼팔선은 녹슬고 청춘은 빛나...


느린 박자로 부르는 이 노래가 차디찬 밤하늘에 서글프게 울리고 있었다. 나의 영혼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처음 듣는 그 멜로디를 쫓아가고 있었다. 코끝이 찡해야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나는 담담했다. 이 낯선 환경은 아직도 나의 감성을 옥죄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더 이상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조금 전에 속삭였던 말들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정적은 이제 칠흑 같은 어둠과 섞여 우리를 서서히 휘어 감고 있었다. 숨소리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잦아들어 미세하게 공기를 흔들었다. 나는 참호 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은 모든 사유와 의식을 서서히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제 남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마치 우주의 암흑물질처럼 나도 어둠이 되었고 윤일병도 어둠이 되었다. 어둠이 된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솟는 느낌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마치 바늘로 가슴을 깊이 찌르듯이. 그것은 시간과 공간과 그리고 의식이 단 하나의 단어, 어둠으로 표현되는 세계였다. 이 어둠으로부터 나는 도망갈 수 없었다. 아무리 몸부림을 치더라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이 공간을 지배하는 에레보스는 에어리언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내 목을 핥고 있었다.


어둠에 취해 있던 순간, 갑자기 총소리가 벙커 안을 뒤흔들었다. 그 소리는 공명되어 벙커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나와 윤 일병은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 총소리는 연속으로 계속 들려왔다. 기겁을 한 와중에도 그 소리는 하나의 소총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도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건지 망설였다. 하지만 어디다 대고 갈겨야 할 건지는 결정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떤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총소리가 멈추었다. 장전한 탄창 하나를 다 소비한 듯했다.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한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나는 윤 일병을 남겨둔 채 플래시를 켜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플래시 불빛들이 여기저기서 반사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소리의 근원지는 바로 20여 미터 떨어진 옆 초소였다. 통로에서 초소 안을 비추자 최 일병인 듯한 실루엣이 밖을 향한 채 사주경계를 하고 있었다. 아직도 화약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는 불빛에도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곧이어 소대장이 왔다.


"머야!?"


소대장은 내가 비추고 있는 플래시 위에 자신의 플래시를 비추었다. 그리고 몇몇 대원들이 모여들었다. 최 일병은 여전히 자세를 풀지 않고 있었다. 


사실 북한군 침투조가 오늘 같이 비상이 걸린 날 우리 GP의 경계망을 뚫고 침투할 확률은 극히 낮았다. 평상시 같으면 그들의 능력으로 보아 2중 철책이든 3중 철책이든 철책을 절단하고 침투할 수 있겠지만 오늘 같은 날은 침투의 고수라도 성공할 확률은 제로였다. 그들은 우리의 동태를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들이 응징을 당할 당사자라는 것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경계강화는 그들 몫이었다.


오인 사격이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오인 사격이 아니었다. 오인이란 말 그대로 사람이 아닌, 즉 고라니 정도 크기의 동물이어야 하는데 그 초소 앞의 지형 특성상(경사가 심한 너덜지대) 그 만한 동물이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되었다. 물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상식적인 상황 추론은 사실 판단의 근거로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움직이는 물체를 보았다면 옆 동료와 협력하고 판단하여 대처를 해야 하는데 이번 오인사격은 최 일병의 독단적인 사격이었다. 같은 조인 조 상병은 왜 최 일병이 사격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어둠 때문에 최 일병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녀석이 좀 이상했노라고 그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하여튼 이번 사건을 CP에 보고한 결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결론이 났다. 너무 경계에 집중하다 보면 착시 현상이 일어날 수 있었고, 사실 그런 상황은 철책에서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린 어수선한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최 일병은 예외였다. 그는 며칠 후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분명 나한테 다가오고 있었어요. 소리까지 들렸는데..."

"너무 집중하다 보면 착각할 수도 있어. 헛게 보일 수 있다니까. 잊어버려."


그 사건으로 최 일병은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듯했다. 혼자 가리사니 없이 먼산바라기로 있는 시간이 많았고, 특히 야근 경계근무를 할 때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그리고 취침 중에 안 하던 잠꼬대도 하고, 가위에 눌린 듯 심하게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녀석의 말수는 적어지고 얼굴도 수척해졌다. 아마도 정신적인 내상을 입은 게 분명해 보였다. 그것은 극심한 공포인지 모른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난 후 녀석은 소대장과 마지막 면담을 하고 GP를 떠났다. 패닉 초기 상태로 보이는 최일병을 이곳에 계속 상주시키는 것은 위험할 수 있었다. 그를 위해서나 GP를 위해서나 전출이 정답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GP에서 나간 최 일병은 군 병원에서 한 달 정도 정신과치료를 받은 후, 후방 다른 부대에 배치되었다가 한 달 만에 다시 군 병원에 입원했고 거기서 의가사 제대를 했다고 한다.  


하여튼 최 일병이 떠난 후 한동안 GP는 깊은 적요에 빠져 있었다. 멀대처럼 키가 크고 선하게 보였던 녀석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날 오인사격 사건의 여파가 우리들 내면에 동질화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최 일병이 보았던 어둠 속의 그 이상한 물체를 자신들도 보았을 것이다. 그 물체의 실체는 공포였다. 최일병은 단지 그 공포를 극복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게 무엇이라고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대원들의 무거운 침묵은 그것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DMZ 그리고 생존의 법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