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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징 Sep 08. 2023

안 써지는 글 써지게 만들기

연재의 긴 호흡에 지쳐 원고가 도저히 안 써질 때


오늘도 원고가 잘 안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을 딱딱 쳐내는 루틴 잡힌 작가가 되고 싶은데, 시간에 맞춰 자리에 앉아도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은 돌아가지 않으니 이것 참 난감한 일이다. 쓸 내용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떤 내용으로 원고를 풀어나가야 할지 가닥은 있는데 왜 써지지 않는 건지? 신내림이라도 받은 듯 원고가 줄줄 잘 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요즘은 그 신도 잘 찾아오질 않는다. 굿이라도 해야 하나 싶다. 


장편 소설을 하나 쓰려면 매일 나와 이런 싸움을 계속 해야 한다. 글이 안 써져 자괴감이 들어도 어떻게든 진도를 빼야 한다. 죽겠네, 죽겠어. 글이 안 써진다는 푸념의 글이라도 써보려고 했더니 그건 저번에 이미 한 번 써서 또 쓸 수가 없다. 그러니 오늘은 방향을 좀 바꿔서, 안 써지는 글을 어떻게든 써지게 만들기 위해 내가 어떤 방법을 써왔는지 돌아볼까 한다.      





칭찬 스티커 붙여주기     



목표를 정하고, 달성한 날엔 스티커를 붙여주는 방법이다. 목표는 아주 작고 소소해야 한다. 달성할 수 있을 만큼. 나는 “4천 자 이상 글쓰기”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그리 작은 목표는 아닌데, 대신 ‘무엇이든’이라는 조건을 앞에 붙여두었다. 그러니까 그게 웹 소설 원고든, 에세이든, 하다못해 2차 창작이든 오늘 하루 쓴 글이 4천 자 이상이 되면 스티커를 붙여주는 거다. 투두 리스트에 체크하는 것보다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 성취감을 자극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된다. 나는 매주 주간 습관 트래커에 목표를 적고 달성할 때마다 동그란 스티커를 붙여준다. 한 달 단위로 붙이는 것보다 주간 단위로 붙이는 것이 ‘채웠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을 수 있어 효과가 좋았다. 이러면 2천 자쯤 쓰다가 하기 싫어 미칠 것 같을 때도 어떻게든 4천 자만 채우자고 나 자신을 달래게 되는 효과가 있다.      


썰로 풀어놓기      


명확한 문장으로 적지 않는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용을 막 적어두고, 작업이 좀 된다 싶을 때 문장으로 묘사해준다. 대체로 내가 글이 안 써진다며 힘들어할 때는 내용이 생각이 안 난다기보다 문장이 안 나온다는 경우가 많았다. 주인공 둘이 만나 파스타를 먹는 장면을 써야 하는데, 그 장면이 도통 안 나오는 거다. 그럴 땐 가다듬지 않은 날것의 문장으로 어떻게든 진도부터 빼둔다. “A와 B가 파스타 먹으러 감. A가 소개한 곳이긴 한데 둘 다 처음 가봄. 토마토 파스타를 먹을까 하다가 크림 파스타와 피자 시킴. 기다리는데 배고파 미치려고 하는 둘.” 이런 식으로. 자세히 묘사할 때보다 부담이 훨씬 덜해서 쭉쭉 진도를 뺄 수 있다. 그다음 한 문장을 자세히 푸는 방식으로 고쳐 쓰면 막혔던 부분이 어느새 완성되어 있다.      


고개 넘어가기     


글을 쓰면서 제일 짜증 나는 건 쓰고 싶은 장면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고 험난하단 거다. 야경이 보이는 장소에서 주인공 둘이 키스하는 장면을 쓰고 싶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써야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이땐 일단 쓰고 싶었던 장면부터 쓴다. 올라야 할 산의 정상이 어디쯤인지 먼저 보는 거다. 그리고 시작점부터 거기까지 이어간다는 느낌으로 글을 채워 넣는다. 키스하는 장면을 먼저 써버리고 나면 생각보다 그 전에 해야 할 말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입술이 거칠었다’라는 말을 써버렸다면 전날 주인공이 밤새워 일해야 했던 상황이 필요하고, ‘은은한 와인의 향기가 났다’라고 말해버렸다면 그 직전에 두 사람이 와인을 마시게 되는 장면이 필요하다. 정상을 보니 넘어야 할 고개가 몇 개가 있는지 비로소 보이게 되는 거다. 그리고 오늘은 고개 하나만 넘는다는 마음으로 쓴다. 하나씩 넘다 보면 어느새 정상이다. 하지만 그 장면은 이미 써놨으니, 넘어온 고개와 산 정상까지의 길만 잘 이어주면 된다.      


앞부분 다시 읽기      


앞부분을 읽다 보면 다시 뒷부분을 이어 쓸 의욕이 생기기도 한다. 내 글은 어쨌든 내가 썼으니 나에겐 재미있다. 내 취향에다 재미있는 글을 보면 자연스레 뒷 내용을 상상하며 읽게 되는데, 그 상상한 장면이 도망가기 전에 얼른 쓴다. 의외로 과거의 내가 글 속에 뒷내용을 쓸 때 도움이 될 떡밥을 하나하나 심어둔 경우도 있다. 쏙쏙 뽑아다 쓴다.      


다른 거 쓰기     


이러나저러나 죽어도 안 써지는 날도 있다. 원고를 꼴도 보기 싫을 때. 그럼 일단 눈을 돌린다. 그러나 아예 놀아버리면 오늘 하루를 날렸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손가락이 굳어버려 글 쓰는 것 자체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눈을 돌리되, 눈앞의 원고가 아니라 다른 글을 대신 잡고 써본다. 웹 소설 원고를 해야 하는 내가 지금 이걸 쓰고 있는 것처럼. 난 대체로 에세이와 2차 창작 원고를 도망갈 구석으로 항상 준비해놓고 있다. 이걸 쓰기 싫으면 저걸 쓰고, 저걸 쓰기 싫어지면 이걸 쓰는 식으로 돌아가며 쓰다 보면 뭔가는 완성되어 있다.           





흠. 생각보다 원고가 안 될 때를 이겨내는 나만의 방법이 꽤 여러 가지가 있었던 것 같다. 글쓰기 싫어하는 나는 미운 네 살보다 더 말을 안 들어서 온갖 방법으로 달래가며 키보드 앞에 앉혀놓아야 한다. 나 자신이지만 참 버겁다. 하나하나 짚어보면 결국 자잘한 성취감을 계속 쌓아가며 차근차근히 한 발씩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마라톤을 뛰려면 일단 내가 뛸 코스를 파악하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어디 있는지 확인한 뒤 적절하게 페이스를 조절해야 한다. 중간중간 물을 마시고 더위를 식힐 수 있는 포인트도 배치해야 하고. 도착지점이 아무리 멀어도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달려나가자. 포기하지 말고. 


오늘은 ‘다른 거 쓰기’ 방법으로 일단 날 달래놨다. 칭찬스티커를 붙이기엔 아직 글자 수가 모자라니까, 딱 모자란 만큼만 원고를 더 써봐야지. 오늘은 주인공 둘이 껴안는 장면까지 써보자. 투정 그만 부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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