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으로 GPS를 만지작거리며 잠시 혼잣말로 투덜거리던 강호병은 갑자기 GPS를 노도의 절벽을 향해 던져버렸다.
하얀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까만색 GPS는 작고 까만 점 하나로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시퍼런 바닷속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모니터를 통해 보는 해저(海底)의 모습은 기괴했다. 바다 밑바닥은 수중글라이더의 조명이 비치는 곳만 겨우 커다란 훌라후프 크기 정도의 동그라미 모양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을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햇빛도 들지 않아 주위는 온통 컴컴했다. 가끔 동그라미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기도 하고 약간 타원형으로 일그러지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빛을 비추는 물체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사실 조명이 비치는 곳도, 말로는 빛나고 있다고 하지만 바위에 가까이 붙어서 조명이 환하게 비칠 경우를 제외하고는 겨우 사물의 형체만 어렴풋이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일 뿐, 보통 사람이 보면 어디가 바위고 어디가 흙인지, 어떤 것이 돌이고 어떤 것이 바다 생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바다 밑이라면 가끔 물고기라도 눈에 띌 만한데 그런 장면도 없었다.
때는 2011년.
7월도 막바지에 이른지라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바깥 날씨는 찌는 듯 더웠다.
경남 남해군 노도 앞바다에 거대한 군함 한 척이 벌써 사흘째 정박해 있었다. 좀 더 먼바다 쪽으로는 광양만으로 드나드는 대형 화물선이 수시로 눈에 띄는 곳이긴 하지만, 이 지역에 군함이 떠 있는 경우는 대단히 드문 일이었다.
간간이 해경 경비정이 목격되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5인치 함포가 오히려 왜소해 보일 정도로 선체가 크면서도 날렵하게 생긴, 이른바 전쟁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제대로 된 군함이 이곳 노도와 앵강만 지역에 나타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위용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발트빛 바다 위에 더 있는 연회색 군함은 한여름 햇빛을 받아서 그런지 오히려 하얗게 밝은 빛을 반사하면서 마치 유람선인 양, 움직이는 듯 마는 듯 한가롭게 떠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의 최신예 함정으로 이미 유명해진 문무대왕함이었다.
함대함 미사일과 함대공 미사일을 장착하고 있으며 헬기장도 두 개나 갖추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인 4,500톤급 문무대왕함의 영상정보분석실은, 근무자가 전혀 더위를 느끼지 않고 작전에 임할 수 있을 정도로 냉방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진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근무자들은 정복을 제대로 반듯하게 갖춰 입은 상태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질서 정연하게 여섯 대씩 세 줄로 배열된 열여덟 대의 모니터는, 푸른빛 동심원 사이로 쉴 새 없이 반짝이는 수많은 점들을 통해, 뭔지 모를 여러 가지 형태의 신호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방 맨 뒤쪽 구석에는 그런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거기에는 누가 봐도 임시로 갖다 놓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그 방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철제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책상 앞에는,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제멋대로 헝클어뜨린 채 약간 마른 체형의 중년 남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인터내셔널 젠틀맨이라 불릴 정도로 깔끔하고 멋진 대한민국 해군 제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목이 늘어진 허름한 붉은 티셔츠 한 장만 걸칠, 다소 뀌죄 죄 해 보이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더구나 티셔츠에는 빛바랜 둘리 그림까지 커다랗게 그려져 있어서, 진지한 그의 표정과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다소 우스꽝스럽다는 느낌조차 만들어내고 있을 정도였다.
그는 상체를 뒤로 가득 젖힌 채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찡그려가며 심각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가끔씩 허리를 앞으로 굽혀서 게임기 조이스틱처럼 생긴 물건을 두 손으로 요리조리 움직이곤 하는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싶을 정도로 낡고 허름한 파일이 한 권 있었다. 정성을 들인 흔적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무렇게나 멋대로 휘갈겨 쓴 ‘작업일지’ 위에는, 낡아서 군데군데 도색이 벗겨진 검은색 구식 휴대폰과 싸구려 볼펜 한 개가 역시 던져지다시피 놓여 있었다.
영상정보분석팀장 강호병이었다.
말이 좋아 팀장이지 이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 혼자가 전부였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노트북 모니터에는, 해저의 수중글라이더에서 전송되어 오는 영상이 천천히 움직이며 펼쳐지고 있었다.
두 손으로는 조이스틱처럼 생긴 컨트롤러를 쉴 새 없이 조작하면서 수중글라이더가 보내오는 영상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줄곧 노려보고 있는 영상정보분석팀장 강호병의 이마에는 유독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한 것이 벌써 사흘이나 되는지라, 붉게 충혈된 눈에는 평소의 그 답지 않게 웃음기도 사라져 있었다. 미동도 없이 뚫어져라 화면을 쳐다보다가 뭔가 뜻대로 잘 풀리지 않는다는 듯, 가끔씩 거의 쥐어뜯다시피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흔들어대는 통에, 가뜩이나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은 땀에 범벅이 되어 제멋대로 헝클어져 있었다.
이번 구역이 예상 탐사지역 가운데 마지막 섹터라고 생각하면서 수중글라이더를 바다 밑에 투하한 것이 벌써 약 72시간 전의 일이었다. 그동안 수집한 자료와 정보를 총동원해서 분석한 바에 의하면, 늦어도 오늘쯤은 모니터에 뭔가 잡혔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은 촉박한데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으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경우에도 웃음을 잃지 않아 ‘만고 태평’이라는 별명을 가진 강호병 팀장마저도 극도의 긴장상태에 이른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은 긴장감을 깨뜨리듯, 강호병의 휴대폰이 웅웅 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런 심각한 순간에 누가 전화를 하느냐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강호병은 저 혼자 떨면서 움직이고 다니다가 파일 위에서 막 책상으로 떨어지려고 하는 전화기를 곁눈으로 흘깃 보더니 곧바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39 사단장이자 지금의 탐사를 총지휘하고 있는 김경태 소장의 전화였다.
“응, 그래, 나야. 김 장군!”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지로 누르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두 눈을 찡그리고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강호병은 나직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러는 중에도 눈은 여전히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었다.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듣고 있던 강호병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한 번 더 마음을 다잡는 듯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말했다.
“아니,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우리 올챙이가 지금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으니 이제 뭔가 나오겠지. 조금만 더 기다려봐라.”
올챙이는 강호병이 붙여준 수중글라이더의 애칭이었다.
수중글라이더란 일종의 해저탐사장비인데, 모양이 마치 어뢰처럼 생겼다. 앞부분에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으며 몸통 양쪽에는 비행기처럼 날개가 붙어 있어서 글라이더 자체를 상하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뒤쪽에는 수직 꼬리날개가 붙어 있어서 좌우로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장비다.
길이는 3미터 남짓 되며 지름은 50센티미터 정도의 크기로, 한번 물밑에 들어가면 한 달 정도는 여유롭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한마디로 하늘의 무인정찰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해저관측장비다.
지금까지 강호병이 움직이고 있던 조이스틱은 바로 이 날개들을 움직이는 한편 추진동력의 강약까지 조절하는 장치인 것이다.
김경태 장군과 강호병 팀장은, 공식적으로 작전 총책임자와 탐사대 영상정보분석팀장이라는 지위상의 차이가 있었지만, 원래 두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강호병 팀장으로 말하자면, 그의 손에 들어가면 고치지 못하는 카메라가 없고 그의 눈을 벗어날 수 있는 화면상의 에러는 있을 수 없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진주 MBC 기술부에서 베테랑으로 이름난 인물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주꾼들이 그러하듯 강호병도 대인관계에는 서툴렀던 탓인지 항상 동료들보다 진급이 늦더니, 급기야 다른 동기들이 모두 국장으로 진급한 뒤에도 만년 기술자 신세가 되어 그럭저럭 눈칫밥을 얻어먹는 처지로 지내고 있었다.
그런 강호병 팀장을 김경태 소장이 일부러 이번 작전에 투입하기 위해 차출한 것이었다. 강호병의 입장에서도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고 싶던 차에 마침 잘됐다는 생각으로 주저 없이 이번 작전에 뛰어들게 되었다.
전화를 받으며 잠시나마 긴장을 풀려는 듯, 전화기를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운 채 바로 옆 소형 냉장고에서 막 꺼내온 캔 콜라 뚜껑을 당기던 강호병이 갑자기 목소리 톤을 높이며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뭐? 왜? 아직 기한이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도대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이 새끼야! 지금 와서 작전을 중지하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이게 장난이냐?”
오른손으로 휴대폰을 고쳐 잡으면서, 왼손에 들려 있던 콜라 캔을 집어던지듯 테이블을 치며 내려놓는 통에 사방으로 거품이 튀었다. 느닷없이 펄펄 뛰는 강호병의 서슬에, 같은 방에 있던 군인들이 모두 놀란 토끼눈으로 강호병을 쳐다보고 있었다.
“야! 이 눈치 저 눈치 다 보면서 도대체 뭘 하겠다는 말이냐? 아, 애초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잖아, 이 새끼야!”
강호병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 갑자기 말을 더듬으며 답답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린 채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곧바로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애써 표정을 고치고 말을 이어갔다.
“아, 그래. 됐다고, 이 새끼야! 안 하면 되지 뭐! 이게 뭐 내가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냐? 니이미……! 됐어! 끊어라, 이 새끼야!”
강호병이 잠시 멈칫거리는 것으로 보아 전화 저쪽 편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듯했지만, 이미 강호병은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래, 알았어! 누가 뭐라 그러냐? 너네 군바리 새끼들 하는 짓이 맨날 그렇지 뭐, 됐어! 아, 글쎄 끊어라잖아, 이 새끼야!”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 손을 부들부들 떠느라 전화도 제대로 끊지 못하던 강호병은 전화기를 패대기치려다 말고,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영문도 모르고 깜짝 놀라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대원들을 의식하고는 도어를 부서져라 꽝 하고 닫으며 갑판으로 뛰어 올라갔다.
마침 문무대왕함은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로 널리 알려진 남해(南海) 노도(櫓島)를 왼편에 둔 채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노도 남쪽 사면의 깎아지른 해안 절벽에 파도가 부딪치면서 생긴 하얀 포말이 눈부시게 빛났다. 노도 넘어 멀리 높다랗게 보이는 금산 정상 부분은 암벽 능선이 빛을 내듯 깨끗한 빛깔을 자랑하며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너무도 밝은 햇살에 멀리 뭉게구름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얗게 솟아오르는 멋진 날씨였다.
“아이고 니이미, 날씨는 또 왜 이리 우라지게 좋냐?”
갑판 끝에 서서 노도를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강호병은, 체념한 표정으로 미간을 찡그리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를 찾느라 무심코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강호병의 손에 뭔가 잡히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김경태 장군이 준, 라이터 크기의 최신형 GPS였다.
GPS를 보니, 이번 작전에 참여해 달라는 김경태 장군의 권유를 받던 날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오늘 같은 일이 생기리라는 걱정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서 뭔가 흥미로운 사건으로 빠져 들어간다는 묘한 쾌감마저 들었던 날이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어느새 그날로부터 벌써 두 달이나 흘렀다.
5월 중순이라고는 해도 마치 여름처럼 더웠던 그날, 운전병 없이 직접 승용차를 목고 나온 김경태를 만난 곳은 김경태가 단골로 다니던 일식집이었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어울릴 때면, 당구장이든 훌라 판이든 상관없이 아직 누구보다 개구쟁이 같은 모습을 보이곤 하던 김경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출신에다 명색이 장군이랍시고 친구들 앞에서도 평소에 폼 잡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김경태가 운전병 없이 직접 차를 몰로 혼자 나왔다는 것은, 폼이고 뭐고 따질 겨를이 없을 정도로 어떤 이유에서든 예사롭지 않은 일이 있다는 신호였다.
평소에 친구들을 대하던 김경태의 태도에서는 진지함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을 잘 아는 강호병도, 이러한 김경태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긴장감을 느끼는 통에, 전에 없이 어색하게 생선회만 몇 점 뒤적거리다가 그만 젓가락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식사가 끝났다는 것을 알고 디저트를 가지고 온 여종업원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팁으로 쥐여주고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하면서 잠시만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한 다음, 여종업원이 나가자마자 김경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표정을 바꾸었다.
“야, 호빙아!”
경상도 토박이인 김경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항상 ‘호병’을 ‘호빙’이라 불렀다.
경북 출신이었던 물리 선생님께서 하시던 사투리 발음을 흉내 내던 것이 지금까지 별명처럼 입에 붙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친구 강호병에 대한 김경태의 사랑과 신뢰가 담긴 표현이었다. 물론 강호병도 그렇게 불리는 것을 전혀 싫어하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부르면서 시작한다는 건 친구로서의 사적인 감정이 강하게 실려 있다는 뜻이었다.
“너 아니면 안 될 일이 하나 생겼다.”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이제 막 반주 한 잔에 기분이 좋아지려던 강호병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냐, 갑자기? 남 밥도 못 먹게 무게만 잔뜩 잡더니?”
보통 때 같으면 똑같이 농담으로 받아쳤을 김경태는 예상과 달리 강호병의 푸념을 아예 무시한 채,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얼굴을 앞으로 내밀면서 고개를 약간 숙이더니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말을 이어갔다.
“너, 전에 내가 이야기하던 서불과차도(徐巿過此圖)에 관한 얘기 기억나지?”
그런 김경태의 태도에 머쓱해진 강호병도 금방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서불과차도라면……, 남해 금산 어디엔가 있는 바위에 그려져 있다는 그 그림 말하는 거지?”
강호병도 방석을 당겨 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본 적은 없지만 나도 얘긴 몇 번 들었어. 여기저기서 그와 관련된 글도 좀 읽어봤고.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캐러 왔던 서불이라는 인물이 새긴, 글자인지 그림인지……. 근데, 그거 뭐가 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면서?”
강호병의 말이 끝났지만 그 사이에 김경태가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켜느라 잠깐 뜸을 들이고 나서 말했다.
“어쩌면 이번에 그 서불과차도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릴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 사실을 상오 녀석이 풀어낸 것 같아. 작년에 걔가 발표했던 논문, 너도 기억나지? 그게 가설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서 이번에 국정원 차원에서 조사를 시작했어.”
김경태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한번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고 나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작년에 상오가 발표한 논문을 보고 중국 정부도 이미 행동에 들어간 것 같아. 하지만 그 장소가 우리나라 영해이기 때문에 자기들도 마음대로 못 하고 있는 거지. 최근 들어 중국 어선들이 우리나라 남해 쪽으로 자주 드나드는 것도, 알고 보면 이번 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거야. 실제로 중국 어선이 허가 없이 두미도나 사량도 부근까지 들어온 적이 있기도 하고 말이야!”
강호병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앞으로 내밀었다. 황당하다는 말 대신에 짓는 강호병 특유의 표정이었다.
그것도 잠시, 강호병은 김경태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반쯤 웃음기를 머금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럼 요즘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에 출몰하는 중국 어선이 진짜 어선이 아니란 말이냐? 그럼 뭔데? 간첩선이란 말이야?”
김경태는 강호병의 질문에 대답도 없이 눈을 내리깔고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걔네들도 분명히 뭔가를 알고 있다는 눈치거든. 우리 남해안에 나타나는 중국 어선들이 모두 첩보활동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어선 속에 섞여서 어선으로 위장한 탐사선이 올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지. 지난번에 상오가 발표한 논문에서는 일부러 구체적으로 위치를 명시해서 드러내지 않았지만, 걔가 나한테 따로 한 얘기가 있거든.”
강호병은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김경태의 술잔이 비었다는 사실도 알아챌 겨를이 없었다. 김경태는 제 손으로 맥주를 한 잔 가득 따라 마시고 난 다음 말을 이어갔다.
“상오가 세운 가설이 맞는다면, 남해 금산 일대에는 우리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보물이 묻혀 있을 거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커다란 금인도 남해 바다 어딘가 잠겨 있을 거고…….”
김경태는 담뱃재를 재떨이 벽에 살살 돌려 털어내면서 말을 이어갔다.
“어쩌면 중국 역사마저도 다시 써야 할지 모를 일이야.”
두 손을 깍지 끼고 양 팔꿈치를 식탁에 고인 채 멀뚱멀뚱 자신을 바로 보고 있는 강호병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김경태가 말을 계속 이어갔다.
“오늘 내가 너를 만난 이유는 이 일과 관련해서 너에게 특별히 부탁할 일이 있어서다. 이번에 우리가 극비리에 수행해야 할 작전인데……. 우리나라 남해 바다 어딘가에 금인이 가라앉아 있다는 증거를 찾아내야 돼. 상오 얘기는, 남해 바다 어느 지점에 분명히 금인이 가라앉아 있을 거라는 거야. 그래서 이번에 정부 차원에서 그걸 찾아보기로 한 거지. 기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군함이 동원되어야 하는 일인지라, 불가피한 군사작전으로 진행하게 됐어. 작전 책임자는 나고…….”
진지한 표정으로 마치 브리핑하듯 상황을 설명하던 김경태는, 재떨이에 얹힌 채 거의 타들어가면서 푸른 연기만 올려대던 담배에 맥주잔을 기울여 불을 껐다.
김경태는 오른손 검지를 펴서 강호병의 얼굴을 향해 톡톡 치듯 흔들면서 말을 이었다.
“이번 작전에서 네가 할 일이 뭐냐 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어느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그 금인을 바다 밑에서 식별해 내는 일이야. 대단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니, 한번 해봐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상상 속의 어떤 물건을, 그것도 바다 밑에서 찾아낸다는 게 쉽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영상분석이라면 그래도 네가 우리나라에서 일인자 아니냐? 다른 사람은 보안을 위해서도 함부로 쓰기 어렵고…….”
우리나라에서 일인자라고 말할 때 김경태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세워서 강호병의 얼굴 앞으로 쑥 내밀었다. 하지만 강호병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가볍게 앞뒤로 끄덕이면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김경태도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비비면서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앉은 자세로 허리를 쫙 펴고 가슴을 내밀면서, 내뱉듯이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자. 나머지 일은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넌 내가 지정한 날에 우리 작전에 동원된 배에 타기만 하면 된다. 회사 동료들과 집에는 아마존 지역에 장기출장 가는 것 정도로 처리가 될 거다. 뭐, 다른 질문 같은 거 없지?”
말을 마치자, 김경태는 강호병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왼손 엄지와 중지를 튕겨 딱 소리를 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벽에 걸린 양복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라이터 비슷한 물건을 하나 꺼냈다.
“이건 우리 특수부대가 작전용으로 쓰는 건데, 너니까 내가 개인적으로 특별히 하나 주는 거다. 수심 500 미터까지 완벽 방수 보장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본의 아니게 물에 빠뜨리게 되더라도 수압에 의해 여가 이 렌즈에서 자체로 빛이 점멸하도록 만들어져 있지.”
김경태는 한쪽 눈을 약간 찡긋거리듯 힘을 주고 있었다. 이건 그가 또 뭔가 잘난 척하면서 폼을 잡고 있다는 의미다.
“그걸로 끝이라면 내가 이렇게 무게를 잡으면서 주겠냐? 이건 최소한 10년 정도는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전송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물론 수신 장치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 일부러 두드려 부숴버리지 않는 이상, 절대 잃어버릴 일이 없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평소에는 네가 지니고 있다가, 뭔가 발견하면 다이버에게 주든지 아니면 네가 직접 물밑에 내려가든지 해서 정확한 포인트를 찍어놓도록 해라. 비싼 거니까, 잃어버리지는 말고…….”
강호병이 장난스럽게 말을 받았다.
“잃어버릴 수가 없는 물건이라며?”
“미친 새끼, 이러다 말 거면서 이런 건 지랄한다고 줬냐? 에라, 이 새끼야!”
두 손으로 GPS를 만지작거리며 잠시 혼잣말로 투덜거리던 강호병은 갑자기 GPS를 노도의 절벽을 향해 던져버렸다. 하얀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까만색 GPS는 작고 까만 점 하나로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시퍼런 바닷속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손을 떠난 GPS가 물속으로 떨어질 때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강호병의 눈길은 줄곧 까만 점으로 변해 가는 GPS를 뒤쫓고 있었다. 그 시간이 그에게는 무척 길게 느껴졌다. 그 눈에 아쉬움이 짙게 서려 있었다.
잠시 후, 우두커니 서서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 강호병에게, 수중카메라 담당 손권우 중위가 다가와서 수중글라이더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벌써 20분 동안 정지상태로 있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으로 보아, 손 중위도 뭔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감을 잡은 것 같았다.
강호병은 손 중위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멀리 부소대 쪽을 쳐다보면서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게 그런 물건 다시 볼 일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으니 알아서 철수시키세요. 바위에 처박아 부숴버리든가…….
아무 잘못도 없이 핀잔만 들은 손 중위는, 평소와 달리 까칠해진 강호병을 대하기가 멋쩍었는지 전에 없이 깍듯하게 경례를 붙이고 돌아섰다.
그새 함장에게도 철수 명령이 하달되었는지, 문무대왕함은 어느새 노도를 뒤로한 채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배는 상주 앞바다를 지나 미조항을 비스듬히 돌면서 진해만을 향하고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고, 뭉게구름은 풍성하고 한가로운 느낌마저 주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상주 해수욕장은 한창 피크를 이룬 여름휴가철을 맞아 울긋불긋한 비치파라솔로 덮여 있었다. 그 뒤로 펼쳐진 남해 금산 푸른 숲 위에 우뚝 솟아 있는 하얀 바위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아름다움을 빛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