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랐던 그 날
漁夫郭陶爲漁出海, 只舟還人未還.
-<蓬萊縣志> 王三十七年 夏七月丙寅-
어부 곽도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는데
고깃배만 돌아오고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봉래현지> 진시황 37년 여름 7월 병인일-
기원전 210년 7월 병인일.
동쪽 옛 제(齊) 나라 땅을 순수하던 진시황의 어가가 수도 함양을 향해 방향을 바꾸던 바로 그날이다.
아침.
중국의 산동반도 봉래(蓬萊, 지금의 봉래시) 포구.
봉래현은 망망대해를 접한 마을답지 않게, 해안선을 따라 평평한 숲이 짙게 깔려 있고 그 숲과 바다 사이에 가느다란 도로가 둥그렇게 하얀 띠처럼 이어져 있는, 평화스럽기 그지없는 어촌이었다.
바다 쪽으로 뻗어나간 땅 끝에서부터 이어져 온 길고 푸른 숲이 끝나는 지점에, 육지 쪽으로 움푹하게 들어가 넓은 땅이 펼쳐지면서 300호 정도 되는 촌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포구는 마을과 숲 끝의 가운데쯤에 있었는데, 마을과 포구 사이는 꽤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숲은 한여름 기운을 받아 검푸르고 무성한 잎으로 뒤덮인 채 울창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해가 이미 훤히 떠올랐는데, 포구 앞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손으로 땅을 치며 울부짖고 있는 한 아낙네 곁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아낙네의 사연은 이러했다.
전날 아침에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던 남편 곽도(郭陶)가 아무런 이유 없이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 이른 아침에 포구에서 곽도의 배가 발견되었는데, 아무도 없는 빈 배만 동남풍에 밀려와 물결에 흔들리고 있는 것을 그의 아내 구 씨(具氏)가 처음으로 발견했다는 것이다.
거의 매일같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 오던 곽도는 나이가 이제 갓 쉰을 넘은 건장한 사내였다. 가끔 바다에서 밤을 새우고 돌아오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런 경우는 반드시 그 전날 출항하기 전에 미리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을 했던, 성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런 다른 말도 없이 나간 사람이 하룻밤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전에 없던 일에 밤새 한잠도 못 자고 기다리던 아내 구 씨는 말이 채 밝기도 전부터 어둠이 서린 포구로 나와서 바다를 향해 목을 빼고 남편을 기다렸다.
먼동이 틀 무렵 저 혼자 해무 속에 흔들리면서 이리저리 흘러 다니던 남편의 배를 발견한 구 씨가 마을 사람들을 소리쳐 불러 함께 끌고 왔는데, 아무도 없는 빈 배였다.
주저앉아 울부짖는 구 씨를 에워싼 채 웅성거리는 마을 사람들 뒤로, 멀리서 풍악 소리도 요란하게 울리며 떠들썩한 행차가 언덕을 넘어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풍악을 울리며 흥겨운 모습으로 나타난 무리는, 다름이 아닌 봉래 현령 일행이었다.
며칠 전에, 진시황의 열여덟 번째 왕자 호해(胡亥)와 황제의 시종 조고(趙高) 일행이 황제의 순수 행차에 필요한 건어물을 사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봉래항을 찾아왔다가 오늘 새벽 일찍 떠났는데, 현령은 그들의 행차를 전송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며칠 전, 진시황의 순수 행차가 인근 마을 평원진(平原津)에 도착하면서부터 진시황이 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오랜 여행으로 인한 피로 때문에 건강을 해쳐 입맛을 잃은 진시황은 급속히 기력이 떨어졌다고 했다. 다행히 진시황은 동쪽 제나라 해안 지방에서 나는 건어물을 좋아해서, 그것으로 요리를 해 올리면 그나마 조금씩이라도 음식을 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진시황의 순수 행차를 수행하던 열여덟 번째 왕자 호해와 환관 조고를 비롯한 수행원들은 건어물 집산지로 이름난 봉래항을 찾아와서, 이틀 동안 온 고을을 발칵 뒤집어놓다시피 하면서 황제가 좋아하는 건어물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고을 사람들도 때마침 한여름을 맞아 보관하기 어려운 건어물 때문에 고심하고 있던 터였는데, 그렇게 한꺼번에 대량으로 처분할 기회가 생겼으니 온 고을이 갑자기 활기가 돋아 흥청망청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심지어는 멀리 떨어진 남쪽 옛 오(吳) 나라 지방의 영파 상단(寧波商團)까지도 열 척이나 되는 배로 건어물을 싣고 와서 한몫 보려고 설쳐댈 정도였다.
봉래 주민들은 그 배가 오나라에서 온 배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10년은 못 되었지만 오래전에 그처럼 큰 배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서불이란 사람이 동남동녀 5000명을 데리고 불로초를 찾는다고 떠날 때, 봉래 주민들은 그런 배를 한꺼번에 100척이나 넘게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배를 난생처음 본 마을 조무래기들은 큰 구경이나 났다는 듯 틈만 나면 포구로 나가 먼발치로 배를 구경하곤 했다.
그러나 흥청거리는 분위기 속에 파묻혀서, 도대체 그들이 어떻게 그 먼 곳 영파에서 며칠 만에 건어물을 싣고 이곳 봉래항까지 제때에 맞춰 올 수 있었는가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배들은 마치 진시황 일행이 건어물을 사들이는 날짜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봉래항에 들어왔는데도 말이다.
이틀 동안 한밤중까지 불야성을 이루고 있던 건어물 시장은, 사흘째 되던 날 새벽 무렵 호해 일행이 출발 준비를 갖추고 건어물 수레를 완전히 꾸린 다음에야 비로소 조용해졌다.
무려 수레 열 대 분량의 건어물을 실은 호해 일행을 전송하기 위해 새벽같이 길을 따라나섰던 봉래 현령은, 내친김에 진시황 순수 행렬의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까지 보고 오려고 작정을 했으나, 황제가 피로에 지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조용히 어가를 호송해야 한다는 이유로 간곡히 만류하는 호해 왕자의 뜻을 이기지 못하고 중간에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황제의 일행을 잠시나마 멀리 서라도 수행하고 왔다는 사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감격에 겨워하던 현령은, 곽도의 실종으로 인해 자신의 흥겨움이 깨지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곽도의 실종은, 마을 사람들과 군인들의 형식적인 수색 작업조차도 거치지 않고 바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고기잡이 나갔다가 실수로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고 곽도의 아내는 울부짖으며 하소연했지만, 그 이후로 누구도 곽도의 실종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바로 그 전날 밤.
어부 곽도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기잡이를 끝내고 포구로 돌아와서 선창 가에 배를 묶었다.
곽도는 고기를 담은 대바구니를 어깨에 걸쳐 메고 별다른 생각 없이 평소대로 집을 향해 총총히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각, 마을 어귀로 접어드는 언덕 모퉁이 숲 속에,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곽도는 꿈에도 눈치 챌 수가 없었다.
곽도가 빠른 걸음으로 숲 모퉁이를 막 돌아서는 순간, 좁은 길을 가로막고 있는 낯선 마차 한 대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차는 아니었다. 첫눈에 보기에도 크고 튼튼할뿐더러 흐릿한 달빛 아래에서도 번쩍거리는 장식을 단 모습이 예사 마차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마차는 바다 쪽으로 붙어 있었기 때문에 곽도는 눈길을 계속해서 그 마차에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마차를 피하기 위해 숲으로 바짝 붙어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순간, 곽도의 뒤편 어두운 숲 속에서 굵은 동아줄로 만든 올가미 하나가 날아왔다. 올가미는 정확하게 곽도의 목에 걸렸고, 짧고 나지막한 외마디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진 곽도의 몸뚱어리는 순식간에 숲 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끌려가는 것도 잠시였을 뿐, 빽빽하게 늘어선 나무 둥치 사이에 곽도의 어깨가 걸리자 밧줄은 곧바로 팽팽하게 조여들기 시작했다. 곽도는 자신의 목을 휘감고 있는 동아줄을 두 손으로 당기며 안간힘을 써봤지만, 붉게 부풀어 오르는 얼굴과 튀어나올 듯 충혈된 두 눈은 이미 어쩔 수 없음을 알아챈 듯 공포와 절망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잠시 후.
숲 속을 빠져나온 두 그림자가 있었다. 하나는 덩치도 크고 살집도 꽤나 있어 보이는 체형이었고, 다른 하나는 체구도 약간 작을뿐더러 몸을 움직이는 모습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어린아이 티를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커다란 그림자는, 조금 전 곽도가 보았던 그 마차에 사람 크기 정도의 커다란 포대 하나를 싣더니 곧바로 곽도가 지나왔던 길을,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잽싼 걸음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작은 그림자가 먼저 마차에 올랐다.
큰 그림자는 곽도가 묶어놓은 배의 동아줄을 풀더니, 온 힘을 다해 바다 쪽으로 배를 밀어 넣었다. 그는 잠깐 동안 서서 어두운 바다로 밀려가는 배를 확인한 다음, 곧바로 마차로 돌아가서 작은 그림자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됐습니다. 왕자님! 이제 그만 가시죠.”
마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유유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곽도의 아내 구 씨가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각.
동이 트기 직전 이른 새벽에 봉래항을 떠나 넘실대는 동쪽 바다의 짙푸른 파도를 헤치며 동남쪽을 향하는 세 척의 배가 있었다.
황제 일행이 좋은 건어물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 옛 오나라 땅 영파에서 왔다던 바로 그 열 척의 배 가운데 일부였다.
일반 상인들에 비해 유달리 건장해 보였던 그 배 선원들의 말에 의하면, 자기들은 단지 황제 일행이 그네들의 건어물을 구입해 주기를 기대하고 올라왔기 때문에, 황제 일행이 떠나고 나면 자기들도 떠날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적어도 봉래현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거친 파도를 헤치고 온 배라서 그런지 그들의 배는 주위의 다른 배들에 비해 그 크기에서부터 월등한 차이를 보일 정도로 호화롭고 튼튼한 것들이었다. 웬만한 크기의 배에서는 아예 볼 수조차 없는 선수와 선미의 작은 돛대는 제외하고라도, 중간에 어른 팔로 한아름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돛대만 해도 세 개나 될 정도로 큰 배였던 것이다.
배의 높이도 흔히 볼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웬만한 누각 하나 정도는 충분히 되고도 남을 정도의 높이여서, 선원들이 배에 오르내릴 때에도 기다란 사다리처럼 생긴 나무다리를 두 개나 겹쳐 이어서 걸쳐놓고 다닐 정도였다.
불어오는 맞바람을 헤치고 가느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뱃전에는, 상단의 행수 차림을 하고 있기는 하나 어딘지 모르게 기품이 있어 보이는 초로의 남자가 감개에 젖은 표정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 걸음 뒤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또 다른 남자가 말을 건넸다.
“황상 폐하, 배가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선실로 드십시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초로의 남자는 여전히 앞만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괜찮다. 아홍(阿弘)! 너는 내 마음이 어떤지 알지 않느냐? 이제 며칠 후면 나의 평생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내 어찌 이 정도의 파도를 두려워하겠느냐?”
말없이 머리를 조아리는 환관 아홍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평복 차림의 진시황은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지그시 눈을 감고 파란만장했던 지난 세월을 회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