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로나무 Oct 24. 2020

더위를 이겨내는 힘 - 민어회와 민어탕

- 맛은 일반화가 불가능한 개별적 영역


우리 입안에는 대략 150가지 미각 수용체가 있어 맛을 구별한다고 한다. 거기서 시작해서 뇌에서 최종적으로 맛을 알고 기억해둔다. 사람마다 미각 수용체의 활성화 정도는 다를 것이다. 그리고 음식에 관한 기억 혹은 유전자에 남아있는 흔적들 역시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그리고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우리가 기억하는 과정  역시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맛은 일반화가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개별적인 사람들의 개별적인 특성이 가장 일상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음식을 먹는 곳이다. 내가 느끼는 맛은 오직 세상에 나밖에 모른다. 내가 맛을 느끼게 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로움에 감사드린다. 


민어는 다 자라면 크기가 1m가 넘는 대형 어종이다. 식성은 육식성으로 어패류, 다모류, 갑각류를 주로 잡아먹는다. 우리나라는 주로 서해와 남해에 서식하며, 수심이 40-120m의 뻘 바닥에 머물다가 밤이 되면 어느 정도 떠올라 먹이를 찾는다. 가을에는 주로 제주 근해에서 월동을 하고 봄이 되면 북쪽으로 이동하며, 산란기를 맞으면 얕은 연안으로 접근한다. 그 시기는 6-9월이다. 민어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 함량이 높으며, 비타민 칼륨 인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있다. 성질이 따뜻하여 설사나 기운이 없을 때 먹으면 좋으며,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좋은 보양음식이라고 한다. 민어 부레에 있는 콘드로이틴 성분이 피부 탄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음식을 공부하면서 놀라게 된다. 각각의 식재료가 갖고 있는 효능을 읽어보면 마치 이런 생각이 든다. 음식이 아니고 그냥 약이라는 생각 말이다. 몇 년 전 후추의 효능을 알게 된 뒤로 식재료의 효능을 버릇처럼 백과사전에서 찾으며 놀랐는데 오늘도 민어를 공부하면서 또 놀랜다. 후추의 피페린 성분은 염증 제거, 염증 유발 성분 억제, 항암작용, 위액 분비 촉진 및 소화작용을 활발하게 해 주고, 장내 독소 및 노폐물 제거에 도움을 준다. 무기질 성분이 혈관 내 나트륨 성분을 배출해줌으로써 혈액 순환에 도움을 주고, 베타카로틴 성분은 항산화 작용을 하며, 단백질의 당화 결합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주는 등 당뇨로 인한 합병증 예방에 도움을 준다. 그때 놀랐다. 이거 음식이 아니고 완전 약이네 약!!


두툼하게 썰어놓은 민어회 한 접시를 한참 물끄러미 바라본다. 볼수록 색깔이 맛깔스럽다. 한 점을 고추냉이 장에 찍어 먹는다. 부드러운 질감과 씹히는 맛, 그리고 그 뒷맛의 시원한 고소함을 차례차례 느낀다. 부위에 따라 맛에도 약간씩 차이가 있다. 그래서 1열을 한 점 먹고 2 열 한 점 먹고 이렇게 열을 교대해 가면서 그 맛을 음미한다. 자주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니 최대한 맛에 집중한다. 그리고 짠 하고 등장한 민어의 부레. 마치 홍어회에 등장하는 홍어애를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갈등관계와 대조를 이룬다. 부레의 모양과 약간은 물컹한 느낌이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오늘은 그 부레를 잘 못 드시는 분들이 계셔서 혼자 저 많은 부레를 독차지했다. 절반은 물컹하고 절반은 씹는데 저항감이 느껴질 정도로 그렇게 반복해서 씹다 보면 바닷속에서 민어가 자유롭게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도록 해 준 공기주머니를 따라 나도 바다를 헤엄친다.


민어탕 국물을 한 술 떠서 맛을 본다. 언제나 처음 이 국물 맛은 새롭고 신선하고 감동적이며 일상생활에서 맞게 되는 가장 큰 생활의례의 순간이자, 힐링의 시간이다. 국물 맛은 약간 두툼하다고 해야 하나? 맛을 표현할 때면 언어 사용의 한계를 절감한다. 내가 느끼는 맛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살 속에 머물고 있던 기름기가 국물에 녹아들어 그런 맛을 내는 것 같다. 이는 맑간 국물 맛과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뒷맛은 민어의 지방때문이겠지만 아주 고소하다.


그리고 살을 한 점씩 발라내 먹는다. 끓여 나온 민어 살은 입안에서 바로 녹지 않고 씹히는 질감을 선사한다. 잠시 입안에서 머물다 위와 장으로 넘어간다. 점점 먹을수록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장전체로 퍼진다. 아늑한 기분이 든다. 밑에 가라앉은 한토막의 살을 발려 먹고 보니 뼈가 실해 보여 10kg은 족히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곧은 뼈의 질감이 젓가락을 통해 느껴진다. 방금 먹은 민어가 헤엄치고 다녔을 서해나 남해 바닷속 풍경을 상상한다. 민어탕 한 그릇을 먹으며 입으로는 맛을 보고 나의 머리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한 그릇을 먹는다는 것은 주인장이 펼쳐놓은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일이다. 식재료가 살아있던 곳으로 날아가는 상상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류와 해물의 만남 - 전복삼합과 전복닭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