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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Oct 21. 2020

대학로 근처 스페인 여행

스페인을 떠올리면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지만 이미 나는 수많은 스페인을 만났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라는 소설에서 나는 로버트 조던의 엄청난 용기와 비극적인 죽음, 조던과 마리아와의 사랑, 산골짜기를 넘나들던 파르티잔들의 삶의 이야기를 보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의 기록은 값진 체험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고난의 시간을 보낸 뒤 각자 보람을 한 아름 안고 돌아온다는 그 길을 언젠가는 걸어보거나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생각했다. 거장 가우디의 건축물 중 성가족 교회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코로나라는 불청객으로 나의 스페인 방문은 기약 없이 뒤로 밀렸다. 


새로운 음식점을 찾는 것은 일상 속에서 우리 할 수 있는 가장 흥미진진하고 작은 모험이다. 기대에 못 미쳤을 때 갖게 될 실망감이 앞을 막아서지 못하도록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그것도 한식이 아니라 외국음식일 경우에는 더더욱 모험이 된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깨달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처럼 입맛 까다롭고 작은 것에도 세세하게 의견을 올리는 환경에서 살아남아온 가게들이라면 그냥 믿어도 되지 않을까라고 혼자 생각하던 터였다. 작고 아담한 가게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언뜻 그냥 지나칠 것 같은 곳이다. 헨젤과 그레텔에 등장하는 과자로 된 집은 아니지만 불현듯 그 동화가 생각나게 하는 풍경이다. 뭔가 비밀이 숨어있을 것이란 나의 기대를 넘어선 풍경이 나를 사로잡았다. 


평소 아내의 도자기를 늘 접하고 또 이를 통해 유럽과 일본, 중국으로 도자기 안목을 넓혀온 덕분에 오늘처럼 벽을 장식하고 있는 도자기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플라멩코 춤을 추고 있는 남녀를 그려놓은 그림, 액자에 들어있는 수많은 사진, 장식물들은 하나 같이 여기가 스페인임을 말하고 있었다. 바로 작은 스페인 박물관에 초대받은 느낌이 들었다. 천정에는 기타가 꽂혀있었다. 이 역시 스페인을 대표하고 클래식 기타를 대표하는 세고 비를 떠올리게 했다. 그의 <Passacaille> 연주는 은은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아마도 이 가게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음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도자기들은 화려한 색감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재질은 단단하고 질감은 부드러워 보였다. 테이블에 내어놓은 음식을 담은 그릇들도 모두 스페인에서 만든 도자기라고 설명하신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이지만 이미 나는 스페인 한 복판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22년간 거주하다 귀국하셨다고 하니 스페인 현지의 맛을 기대한다. 애피타이저로 파인애플 요리를 작은 접시에 내주셨다. 인간이 음식을 만들어 저장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소금에 절이거나 식초에 절이거나 설탕에 절이는 것인데. 파인애플에 옅은 신맛과 옅은 단맛을 씌운 위에 건강한 느낌을 주는 보랏빛은 본래의 파인애플의 노란 빛깔을 우아하게 만들고 있다. 미각을 자극하기에 더 없는 맛이었다. 토르티야는 감자 오믈렛이다. 감자의 깊고 은은한 맛에 오믈렛 형태로 다양한 채소가 들어가고 그 위에 감질나는 크림을 얹어 한 입 베어 문다. 크림의 맛은 약간 신맛이 감도는 상큼한 맛이어서 감자의 질감을 살리면서도 뭔가 이국적인 맛을 선사한다. 처음에는 살짝 얹었는데 나중에는 아예 두세 스푼을 얹어서 먹는다. 


감바스 알 삘삘은 마늘빵 슬라이스와 보글보글 끓는 올리브 오일에 양파와 새우, 양송이버섯, 마늘 조각이 잘 어우러져 보기에 좋았다. 마늘빵에 뜨거운 올리브 오일을 바르고 새우와 양송이버섯을 얹어 입안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도록 한다. 육지로 올라온 새우가 양송이버섯 밑에서 쉬는 그림을 상상한다. 올리브 오일의 감칠맛이 주도하고 각각의 식재료들은 나름대로의 장기를 발휘하는 그런 요리다. 관건은 뜨거운 기름이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느냐 아니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 그 뜨거운 신선함 상태를 바로 맛보느냐이다. 


2014년 니스의 스페인 요리 식당에서 먹었던 빠예야는 약간 거칠고 토마토 베이스가 강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하는 짠맛은 빠예야에 대한 친밀도를 떨어뜨렸다. 아마도 스페인 원래의 맛을 충실히 구현했던 것 같다. 이 가게의 빠예야는 짜지 않아서 좋았다. 거기에 생쌀과 해물과 채소 재료들이 처음부터 같이 익어서 그런지 쌀알을 으깨면 우리가 흔히 먹는 볶음밥과는 다른 질감을 느낄 수 있다. 한번 더 들렀을 때는 먹물 빠예야를 먹었다. 두 종류 빠예야의 공통점은 고소함이었다. 바닥을 긁어먹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해물 스튜요리는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하셨다. 잘 익힌 토마토와 치즈가 베이스로 깔려있고 약간의 고기와 해물과 채소들이 녹아있다. 음식의 모양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먹어도 그 모양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스튜는 재료를 한데 섞어 소스팬에 넣고 장시간 푹 끓여 만드는 국물 있는 요리라고 알고 있었다. 마침 국물이 먹고 싶어 주문했는데 국물이 없어 조금은 당황했다. 그러나, 곧 그 맛에 적응되며 다양한 재료를 입안에 넣기 전에 이미 팬에서 익어 있어서 쉽게 먹을 수 있었다. 


잠시 스페인을 다녀온 것처럼 가게 인테리어도 완벽한 스페인이고 음악도 스페인이며 음식도 스페인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한두 번의 방문으로 그 내공을 깊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에는 문어요리를 먹어봐야겠다. 코로나가 멈춰지면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거리에서 오늘 먹었던 이 음식의 맛들을 현지식으로 만나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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