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오르며 상처 난 감정을 가라앉히고 치유하기

-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

by 새로나무

의기투합해서 일을 벌이고 그 일을 통해 서로 역할과 관계를 설정할 수는 있지만, 사람 간 신뢰는 그동안 각자 살아온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양보 및 타협이 동반되지 않으면 형성하기 어렵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일정한 경로의존성이 있어서 쉽게 그 선입견을 탈피하기 어렵다. 신뢰를 형성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은 가운데 어떤 일을 추진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쉽게 균열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균열은 각자의 삶에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감정적인 부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감정에 영향을 받는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은 그러한 의도를 깔지 않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말이나 행동에 의해 강한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 감정은 어느새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연합함대와 맞먹는 규모의 무적함대로 나를 공격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공격의 주체는 그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한번 흥분하기 시작한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감정의 미세한 변화를 추적하여 정밀 타격하지 않으면 그 감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스로 확장한다. 내가 나로 인해 피해를 볼 것을 뻔히 알지만 알고도 당하고 만다. 이렇게 속수무책일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때야말로 계단에게 구원 요청을 할 시점이다.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르며 호흡은 가빠지고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처음에는 아니지만 지하 1층부터 21층까지 네 세트 정도 마칠 무렵 그 감정의 파고가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직 편안한 지점까지는 거리가 제법 되지만, 몸 주변에 우둘투둘 돋아난 감정의 찌꺼기들은 조금씩 털어낼 수 있다. 내 마음도 차분해진다. 그리고 감정의 원인에 대해 조금씩 거리를 두고 생각한다. 거리를 둠으로써 나는 좀 더 편안한 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다. 계단은 나의 감정을 치유함과 동시에 신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새롭게 생성된 에너지가 나의 몸과 마음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코로나와 더불어 나의 일상의 삶의 방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마지못해 어떤 일을 하면서 시간과 인생을 소모하기에 내 삶의 순간순간은 너무 소중해서 그런 것을 쉽게 떨쳐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는 데는 여섯 세트로 충분하다. 그 이후는 몸에 집중한다. 몸에 집중하니 마음도 편해진다.


계단을 오르기 전에는 운동은 운동대로 명상은 명상대로 따로였다. 심지어는 단전호흡을 하면서 눈을 조용히 감고 있을 때 몸보다는 마음에 신경을 집중한다. 그런데 계단을 오르며 내 몸과 마음은 아주 가까워진다. 몸의 변화와 마음의 변화가 제각각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의 변화가 마음의 변화에 영향을 주고 마음의 변화가 몸의 변화에 영향을 준다. 오늘처럼 마음이 흔들릴 때 몸은 계단을 오르며 마음이 가라앉을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했다. 감정적으로 동요가 될만한 일들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로 인해 오늘은 계단 창문을 열지 않았다. 왠지 열어놓았다가는 감기에 걸릴 것만 같아서다. 날씨가 추우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도 드물다. 추워지더라도 계단을 오르는 데는 별다른 지장이 없다. 바람막이 점퍼와 긴 바지만 있으면 웬만한 추위가 오더라도 괜찮다.

(189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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