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구기면서 깨닫는 기쁨과 겸손한 마음가짐
지난 2년간 계단을 오르며 스타일을 구길 일이 별로 없었다. 뭉기적 거리기는 하지만 일단 시작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바로 시작하는 그 깔끔함. 세트(21층)를 거듭하면서 이미 단단해진 프로세스에 나를 살짝 기울이면 관성으로 향하는 몸.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 그리고 땀을 씻어내는 시원함. 그것들이 하나로 합쳐져 즐거운 계단 오르기가 된다. 약간은 힘들다가도 그 힘든 순간이 즐거움으로 바뀌는 그 지점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으로 계속 간다. 아마도 퇴근 후 바로 누워만 있었던 후유증일 거라고 추측만 한다. 깊게 자지 않고 약간 떠있는 상태로 자는 듯 깨는 듯한 느낌으로 깜깜한 방 속에서 시간만 보냈다. 늘 문을 열기 전에는 '오늘은 쉬어도 괜찮지, 어떻게 사람이 매일매일 운동을 하고 사냐?'라는 문구를 몸에 지니고 산다. 오늘은 하지 말까?라는 아내의 말에 그래도 같이 운동하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터임을 알기에 실망을 줄 수 없어 문을 나섰다.
첫 세트부터 몸이 천근만근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오른다. 세 번째 세트 정도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은 매번 처음은 힘들어도 뒤로 갈수록 몸이 적응되고 관성의 영역으로 넘어가서 편안하게 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선선한데도 전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 이럴 때도 있구나!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건 완전히 오산이었다. 처음 계단을 오를 때처럼 호흡도 가쁘고 힘이 들었다. 신체 컨디션은 내가 알고 있는 영역의 세계가 아닌가 보다.
다섯 번째 세트를 마치고 나서는 다시 몸 전체가 괜찮은 것 같았으나 여섯 번째 세트부터 아홉 번째 세트까지는 스타일 완전히 구겼다. 아내 앞에서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밑천이 다 드러나고 말았다. 거기에 치과 진료했던 후유증까지 미세하게 밀려와서 겹치다 보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게 된다. 운동을 억지로 하지 말라고 남들에게 말을 해놓고선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기도 생긴다. 그동안 제법 익숙해진 내가 이 정도도 소화 못하다니 하는 마음 말이다.
반전은 바로 운동을 마친 이후에 찾아왔다. 양쪽 무릎 컨디션과 허리 컨디션도 정상적이지 않았고 몸 전체가 무거운 상태로 운동을 마쳤는데 마치는 다리 스트레칭을 할 때 편안한 시원함이 밀려왔다. 종아리와 허벅지와 엉덩이와 허리 근육들도 제각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어쨌든 아홉 세트를 마친 성취감도 밀려오고 땀으로 젖은 몸 위로 상쾌한 기분이 같이 다가온다. 누구를 위해 보여주지 않아도 내면과 내실을 다지면 그만인 이 운동의 특성을 제대로 깨닫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는 나 자신을 알기 위해 계단을 많이 만날 것이다. 그 계단에 투영된 나를 만나고 이해하는 것이 삶을 사는 기본이 될 것이다. 나를 잘 알고 있다거나 이것은 내가 자신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부질없는 생각이며, 그 부질없음에서 조금씩 벗어날수록 나는 스스로 자유로워질 것이다. 매 순간 나에 대한 자각, 그것이 내가 마주하는 진실이다.
(189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