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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Dec 18. 2020

짜파구리를 떠올리는 도시락과 사발면

12시 20분부터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 회의 전 도시락이 지급된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육개장 사발면을 준비했다. 최근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그로 인해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가급적 주변 식당에 가서 대각선으로 앉거나 밥 먹을 때 외에는 마스크를 쓰고 대화도 거의 하지 않았었다. 맛있는 도시락을 만나기는 쉽지 않고, 더구나 그 많은 포장용기들을 생각하면 답답한 생각마저 들 정도다. 이 차고 넘치는 용기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럼에도 오늘은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도시락의 메인 요리인 갈비가 나의 선입견을 완전히 밀어냈다. 먼저 맛본 양장피는 본래의 맛이 무언지 몰라도 아마 식당에서 먹었어도 똑같았을 거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약간은 자극적인 소스에 다양한 채소와 해파리의 식감이 식사를 하기 전의 애피타이저, 그리고 식사 중 갈비와 잘 어우러졌다. 샐러드의 양상추는 싱싱했으며, 소스는 달지 않고 채소의 식감을 잘 살려주었다.


갈비의 덕목은 적당히 잘 구워짐과 부드러운 식감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만나는 갈비탕의 갈비가 질기거나 딱딱하면 그만 먹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경험에 비추어 내 나름대로 생각한 갈비에 대한 덕목이다. 도시락으로 배달되는 동안 식은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이 갈비는 그 부드러운 식감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치와 우엉과 다른 반찬들도 메인인 갈비를 잘 받쳐주고 있었다. 다음번에는 도시락이 아니라 직접 이 가게에 가서 갈비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발면을 괜히 준비했나 싶다가 갑자기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가 생각났다. 육개장 사발면과 갈비는 잘 어울린다. 칼로리를 생각하면 조합을 생각할 수 조차 없다. 오늘처럼 우연히 서로의 만남을 확인한다. 육개장 사발면은 1982년 처음 출시되었다. '우리 입맛에 어울리는 얼큰한 육개장 맛'이라고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으나 실제 육개장 맛과는 전혀 다르다. 전형적인 라면의 맛이다. 처음 이 육개장 사발면을 먹었을 때 어떻게 뜨거운 물만 넣어도 라면이 익는지 신기하게 생각했던 추억을 사무실에서 혼자 먹으면서 되새긴다. 사발면의 면발은 너무 일찍 개봉하면 딱딱하고 너무 늦게 개봉하면 퍼져서 먹기 거북하다. 그 쫄깃한 면발과 갈비의 부드러움을 입안에서 같이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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