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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Dec 12. 2020

우거지 된장국의 깊은 맛

처음 국물 한 술을 떴을 때 오늘 밥은 여기서 시작하고 여기서 마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은 단맛과 구수한 맛에 뒤이어 맑고 개운한 맛이 줄줄이 입안으로 들어온다. 된장 알갱이가 느껴지면서 도대체 이 된장은 어디서 세월을 보냈을까 얼마나 잘 숙성되었기에 이런 맛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 이것은 사람이 만든게 아니라 틀림없이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 우리 인간에게 선물하는 수많은 명품중 하나일 것임에 틀림없다. 4명 모두 코로나 방역 수칙을 지키는 방법의 하나로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된장국의 맛에 흠뻑 젖어 말을 잠시 옆으로 치워버린 느낌이다.


한 입 씹히는 우거지도 상당량의 바람과 일조량을 받았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질감이지만 여기서는 그만 된장의 보조 역할에 머물고 만다. 아무려면 어떤가 ? 부드러운 주꾸미와 쫄깃한 오징어와 고소한 오리고기를 한 입 싸서 육류와 해물의 조화로운 맛을 감상하기도 하지만, 다시 된장국으로 숟가락이 향한다. 어제 먹은 막걸리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해장효과는 덤이다. 한 그릇을 더 달라고 했지만 그것으로는 도저히 된장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다. 염치없지만 또 한그릇을 달라고 했다. 그것도 당당하게. 왜냐하면 너무 맛있어서 당장 한 그릇을 더 먹지 않으면 두고 두고 후회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감자의 식감은 어머님께서 해주시던 감자볶음의 질감과 맛을 기가 막히게 닮아있다. 부드러운 질감과 쫀득하게 밟히는 감자전분의 향기를 맡으며 감자가 살아있던 땅속 어딘가의 대지와 흙내음을 떠올린다. 자연스럽게 어릴적 먹던 감자와 그 감자를 둘러싼 추억들도 감자줄기처럼 따라나온다. 어이없는 추억도 떠오른다. 감자는 줄기일까요 뿌리일까요라고 묻는 금성출판사의 과학책의 표지도 떠오른다. 감자를 가장 강렬하게 표현한 사람은 고흐라고 생각한다.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왠지 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소박함이나 소중함을 넘어서 한 끼니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리고 진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 내 고향은 감자가 맛있는 곳이고 거기에는 고흐가 벨기에서 보았던 그 광산이 있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는 광부이셨다. 그러니 그 연대감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인 것이다.

거의 비워버린 우거지 된장국의 바닥에는 된장알갱이들이 자신들의 멋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웬만하면 음식을 만드시는 분의 영역을 존중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궁금해서 안되겠다 싶어 여쭤보니 된장의 출처는 태백된장이다. 된장이 숙성된 곳에 대한 진한 연대감이 다시 밀려온다. 오늘 나는 식사를 한 것이 아니라 대접을 받았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예술의 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식재료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들을 잘 다루는 일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일과 같다. 더구나 매일 같은 종류의 식재료이지만 그 생산과정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예리한 관찰력과 분석력 또한 필요하다.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들이느냐에 따라 음식의 질이 결정되므로 인내심과 시간과의 관계를 고려한 결정적인 판단력 또한 필요하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고흐가 자신의 그림이 사람들애게 위로가 딘다면좋겠다고 꿈꾸었던 것처럼 사람들이 이 음식을 먹음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주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 오늘 나는 음식장인이 선사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예술작품을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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