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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27. 2020

식재료 장인이 선물하는 주꾸미 오징어와 훈제오리의 융합

마음에 맞는 사람과 따뜻한 밥 한 끼 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다.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과 먹는 밥은 고역이다. 맛없는 음식이라도 마음 맞는 사람과 있으면 그 음식이 산해진미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음식을 맛으로 먹지만 결국 맛을 느끼는 궁극적인 주체는 나의 뇌다. 그러니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먹는가 불편한 마음으로 먹는가에 따라 음식 맛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소중한 내 주변의 자산들을 잘 찾고 잘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팍팍한 일상은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일상의 보물, 보약 같은 음식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사람에게는 미각 수용체가 150여 개 있다. 맛은 단순히 짠맛,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등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 미각 수용체가 서로 얽혀 빚어내는 맛은 복합적이다. 그러니 사람마다 다르다. 그런데 그 경향이 비슷한 사람과 밥을 먹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비슷한 입맛을 만나니 메뉴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며, 서로 맛에 대한 경험을 허심탄회하게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으면서 맛을 보고 맛을 본 느낌을 서로 나누면서 맛을 공유한다. 그런 후배들과 아주 가까운 음식점으로 향한다.


마치 구내식당 같은 편안함과 아늑함을 주는 곳인데, 국은 매번 바뀐다. 오늘은 북엇국이다. 그동안 먹었던 김칫국, 아욱 된장국, 시금칫국, 소고기 뭇국 등을 잊을 만큼 시원한 맛을 선사한다. 반찬으로 나오는 국인데도 국물 맛은 진하다. 아마도 아침부터 오래 끓여두셔서 북어의 진액이 다 빠져나온 느낌이다. 무는 달다. 오징어 주꾸미 무침이 채 나오기도 전에 한 그릇 더 달라고 한다. 따뜻하면서 오래 끓여 식재료가 우러난 시원한 국물을 마실 때 나는 오감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육류와 해물을 같이 먹는 음식문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8년 전남 장흥 토요 우시장을 방문하면 서다. 소등심을 굽는 판에 키조개를 같이 구워서 먹는 독특한 문화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처음은 아니었다. 홍어 삼합도 육류와 해물의 조합이다. 바다와 육지가 서로를 그리워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육류와 해물은 입안에서 새로운 맛의 느낌을 탄생시킨다. 상추에 오리고기 한 점, 주꾸미 한 점, 오징어 한 점, 마늘과 된장을 올려 입안에서 이 식재료들이 뒤엉키며 입안을 자극하는 즐거움을 천천히 즐긴다. 주꾸미와 오징어의 양념이 겉은 붉되 자극적이지 않고 그마저도 훈제오리에 의해 중화가 된다. 해물의 담백한 맛과 오리고기의 고소함과 약간의 느끼함이 복합적으로 얽히는 그 순간의 맛을 조용히 음미한다. 가지 무침과 오이 무침들은 이 융합과정에서 응원군 역할을 수행한다.


오징어에 포함된 타우린 성분은 소고기의 16배에 달한다. 피로 해소와 기력 향상에 좋다. DHA, EPA, 셀레늄도 각각 제 역할을 내 몸에서 수행한다. 주꾸미 역시 오징어보다 높은 타우린 함량이 들어있다. 오리고기의 불포화지방산이 몸에 좋은 것은 오래된 사실이다. 자식 목에 넘어가는 고기도 뺏어 먹는다지 않는가? 상추에는 수면유도제인 멜라토닌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불면증에 효과가 있으며, 락투 카리 움 성분은 진정효과가 있다. 얼 독을 풀어주고 피를 맑게 해 주며, 해독작용도 뛰어나다. 필수 아미노산 성분 외에 철분이 포함되어 빈혈 예방에 도움을 준다. 또한 루테인 성분이 풍부해 눈의 신경과 세포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으며, 눈의 점막을 보호하고 안구가 건조되는 것을 예방해준다. 풍부한 칼슘과 칼슘의 흡수를 도와주는 비타민 A가 있어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이밖에 뭉친 기운을 풀어주고 경맥을 뚫어 열을 내리는 효과가 있다.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등의 영양소는 섭취 시 천연 강장제 역할을 한다.


식재료들을 사전에서 찾아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그리고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놀래고 나서는 금방 잊어버린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맛을 느낄 수 있지만, 식재료의 성분에 관해서는 맛으로 가 닿을 곳이 아니라 오직 내 뇌리 속에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매번 들여다 보고 감탄하고 잊어버리는 과정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음식을 통해 자가면역체계강화하고 마스크를 철저히 쓰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도 그 여운이 입안에 남아있다. 계산을 하며 덕담을 드린다. 식재료를 제대로 다루는 맛을 본다고 말씀드린다. 그 정도는 해야 음식 장사하며 먹고살지 않겠느냐고 약간은 농담을 섞어 화답하시는 말씀의 톤에서 내공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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