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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26. 2020

겨울에는 기름기 살짝 머금은 과메기를 떠올린다

- 과메기와 아귀탕과 노가리

포항에 연고가 있었던 친척 누나가를 뵐 겸, 포항공대 선후배들과 만날 겸 이곳을 들렀다가 과메기 맛에 완전히 빠졌다. 은은한 기름을 두른 부드러운 식감의 과메기는 먹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먹는 과메기는 기름기가 빠져 딱딱하다. 물론 조금씩 씹다 보면 과메기의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는 있었으나 그것은 약간 억지스러운 면이 있는 느낌이었다. 과메기의 본고장 포항에서 과메기는 마치 바다에서 펄쩍펄쩍 뛰어다닐 때의 생동감을 살 속에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입안에서 스르륵 녹기도 하고  비릿한 내음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니 매년 겨울만 되면 포항공대로 출장을 갔다. 포항공대는 업무적으로도 서로 주고받을 일이 많은 대학이어서 갔지만 아무래도 회의하는 동안 마음은 콩밭에 가있었다. 반들반들한 빛깔의 과메기가 상에 올랐다.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지만 아주 넘치지 않는 자태의 과메기를 한 잎 물자 부드러운 식감이 밀려온다. 성급한 마음을 누르고 김을 깔고 그 위에 다시마를 올리고, 미나리와 파를 올린 뒤 마늘과 된장을 올려놓으면 먹을 준비가 완료된다. 한 입 물면 입안으로 물밀듯이 밀려오는 그 맛. 그 과메기가 포항 구룡포 막걸리와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내 몸속에서 나누다 보면, 어느새 한 접시가 빈다.


술 먹은 장을 달래주기 위해 아귀탕을 주문한다. 아귀 내장의 고소함이 국물 전체에 우러나온다. 그런데 그 아귀탕 국물 맛에 다시 술잔을 기울이게 된다.  포항공대가 처음 자리 잡을 때부터 포스코와 포항공대의 관계에 관한 역사가 안주로 같이 올라온다. 많지 않은 전공을 가지고 집중하는 대학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 사이에 이 대학에 애정을 바쳤던 몇몇 선각자들의 미담도 훈훈하다. 고소한 내장과 살을 연신 흡입한다. 성가신 뼈를 발려내는 건 일도 아니다. 맛있으면 그것조차 원래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포항시 도심 한편에 포차로 향한다. 노가리를 주문하길래 언뜻 딱딱하고 불에 그슬린 노가리를 떠올렸다. 아 그런데 이건 노가리라고 할  수 없다. 거의 촉촉한 명태에 가깝다. 노릇노릇 구워진 노가리는 촉촉함을 머금고 있어서 애써 씹지 않아도 스르륵 씹히며 넘어간다. 크고 부드러우면서 입안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노가리는 처음이다. 배가 불러 너무 많이 먹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자리가 끝날 무렵 나는 갑자기 과메기, 아귀탕, 노가리를 먹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사람들의 내공을 생각했다. 무수한 반복과 시도 속에 이런 깊은 맛이 남겨졌으리라 짐작한다. 음식은 그 음식만이 덜렁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만든 축적된 역사의 결과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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