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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10. 2021

겨울제철 방어 세비체

- 무진기행에서 시작된 점, 선, 면

인연의 끈은 1991년 어느 날 처음에 점으로 출발했다. 그 점은 바로 무진기행이다. 무진기행은 김승옥을 대표하는 소설인 동시에 이 멋진 선배님을 처음 만나게 된 학교 앞 카페이기도 하다. 안개 낀 무진은 소설의 내용과 상관없이 언제나 포근한 이미지로 나를 감싸 안는다. 그해 겨울은 추웠다. 군대 면제와 졸업은 행복과 재앙의 결합처럼 느껴졌다. 바로 그때 거시적인 안목과 사람에 대한 깊은 통찰 그리고 세상이 넓지만 그 넓은 세계 속에 마련된 질서의 규칙들이 생각보다 단순해서 쫄 필요 없다는 명확한 진리를 알려주셨다.


무진기행에서 결성된 스터디 그룹의 목표인 언론사 진출에는 다섯 명 중 단 한 명만 성공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스터디 그룹을 통해 나는 인생살이의 기본적인 통찰을 수업받았다고 생각한다. 지 않고 당당하게 세상을 살게 된 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이후 틈날 때마다 1:1개 인지도를 받으며 늘 신선한 에너지를 공급받았고 마침내 여섯 권의 책을 쓰신 노하우까지 얻게 되고 나서 이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선배와의 인연은 그렇게 점에서 출발해 선으로, 다시 면과 입체로 차곡차곡 쌓였다.

겨울은 방어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신선한 방어라도 씹으면 기름기가 좀 넘친다는 아주 미세한 꺼림칙함을 안고 있던 터였다. 세비체(cebiche, ceviche)는 페루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먹는 날생선 샐러드이다. 생선이나 해산물을 회처럼 얇게 떠 레몬즙이나 라임즙, 고수, 고추 양파, 소금 등을 재워 두었다가 먹는 음식이다.  방어 세비체는 처음 먹어본다. 얇게 썰어놓은 방어와 양파는 눈 녹듯이 입안에서 녹아내렸다. 제주의 삼치회를 못 먹는 아쉬움 가득하던 차에 방어 세비체는 잠시 그 아쉬움을 뒤로 밀어냈다.


완도, 장흥, 구례, 강진 등 남도기행에서 얻은 음식에 대한 깊은 통찰 중 하나는 해산물과 육류의 결합이다. 그 이전에 홍어, 수육, 김치의 홍어삼합은 단편적인 경험이었다. 일상적으로 그렇게 먹는 남도 사람들의 문화를 통해 육류와 해물의 섞는 입맛에 길들여졌다. 방어 세비체의 부드러운 살결과 삼겹살의 쫀득한 식감은 우아하게 결합했다. 이 새로운 메뉴는 지난 시간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나름 생존전략의 하나로 혁신의 방법이라고 하신다. 살아간다는 것의 위대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떻게 살아아 할 것인지의 답은 어디에도 있음을 깨닫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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