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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09. 2021

막걸리 안주 갑오징어와 굴전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사람이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 사람이 사람의 성장을 도와준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이 따뜻해야 한다. 거기에 한 사람이 더 들어오려면 세 사람이 서로에 대해 따뜻하다고 동의해야 가능한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거기에 한 사람이 더 들어온다면 그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네 사람이 각자의 따뜻한 마음을 열어 보이는 자리는 추위를 녹이고도 남을 뿐만 아니라 어떤 술이나 음식도 맛있게 만들 수 있다.


호를 처음 보는 순간 반드시 이곳은 곱창집일 것이라고 단정했고 실제로 그 메뉴가 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 어느 여름날 직장동료가 저녁 술자리를 이곳으로 정했다. 사람의 편견은 모질다. 낮부터 그 동료에게 비아냥거렸다. 정작 저녁을 먹으며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내공을 깊이 간직하고 계신 두 분의 음식 솜씨에 감탄했다. 갑오징어와 꼬막무침에 직접 담근 복분자를 막걸리와 섞어 내어놓으셨는데 그만 음식에 반하고 말았다. 그 뒤로는 점심메뉴로 엄나무 닭곰탕을 먹으러 가끔 들렀다.


음식들을 즐겼던 시간은 지나갔고 아스라한 추억만이 남아있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다가올 한 끼니 앞에서 오직 추억만을 선사할 뿐이다. 된장국은 옅음에서 출발해 깊음으로 흐르고, 따뜻함에서 출발해 시원함으로 흘러가며, 배춧잎은 부드러운 속살을 입안 가득 선사한다. 그리고 막걸리 한잔을 들이켜고 부드러운 갑오징어 한 점의 맛을 음미한다. 쫀득한 질감을 누르고 부드럽고 약간은 가벼운 맛을 느낄 수 있다. 군산에서 먹은 갑오징어는 쫀득하고 입안을 휘감는 질감과 함께 진한 먹물로 자극했던 반면에 이 갑오징어는 은은하고 가벼워서 손이 가게 된다.


겨울을 빛나게 하는 음식으로 굴만한 식재료는 없을 것이다. 그 촉촉한 생굴에 살짝 얹은 밀가루는 굴의 바다 맛을 꼭꼭 싸안고 있다가 입안에서 씹으면 한꺼번에 맛보게 한다. 곧바로 다시 막걸리 한잔을 부르게 된다. 만약 이 따뜻한 분들과의 밀린 대화가 없다면 순식간에 취할 것이다. 굳이 세세하게 설명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생략하며 떨어져 나가는 것들을 포함한다면 2시간의 대화는 12시간으로 불어날 것이다. 그만큼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는 압축적이며 엔돌핀을 돌게 하고 마침내는 마음속으로 춤추게 한다. 그 뿐인가 배려의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또 다른 기분좋게 해주는 세로토닌이 분비되는 것을 상상한다


음식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역할을 다하고 몸안으로 사라지게 되면 뒤 탈이 없다. 끼니를 채우고 술안주가 되는 모든 일들이 다 덤이다. 몸안으로 퍼져나간 그 음식들은 그날의 피로를 풀어주고 다음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에너지를 밤새 온 몸에 공급할 것이다. 내가 내 몸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내 몸 생태계가 잘돌아갈 수 있도록 좋은 사람들과 긍정적 호르몬이 뇌를 즐겁게 하고 미각을 자극하며, 적절히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다. 나머지 세포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생태계에게 맡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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