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로나무 Jan 06. 2021

달동네에서 맛보는 해산물

창신역에서 내려서 걸었다. 가파른 골목길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가며 올라간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많이 걸린다. 모든 곳이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서울 하늘 아래 이렇게 가파른 언덕길로 골목들을 볼 수 있다는 게 다른 나라에 온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아이들 어릴 적 살던 보광동 근처도 점점 더 골목길들이 허물어지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한참을 올라가자 성벽들이 보인다. 성벽들 사이로 등을 설치해서 성벽은 하나의 설치 구조물로 이 골목길들과 옛집들을 감싸 안고 있는 듯 보였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아니었으면 올라올 일이 없을 것 같은 이곳 이화동에 하나 둘 카페들이 들어서고 음식점들도 있었다. 와보고서야 비로소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남다르다. 달동네라는 이름은 높은 곳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는데, 1960년대 이후 약 40년 동안 도시빈민 주거지역의 전형이었던 달동네의 도시 빈민촌은 이른바 달동네 문화라고 부를 만큼 능동적이고 건강한 빈민 문화를 상징했다고 한다. 달동네라는 말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서울을 거쳐 평택 고모님 댁에 놀러 갔을 때 본 TBC(동양방송) 드라마의 제목이었다.


4일 정도 고모님 댁에 머무는 동안 매일 그 드라마를 보았다. "나는 위대한 세일즈 맨이다."라는 대사로 유명한 추송웅, 이낙훈, 강부자, 김을동, 노주현, 이미숙, 연규진, 백찬기, 차화연, 장미희, 서승현, 김인문 등 지금도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사람들이 등장했다. 15가지 각기 다른 직업이 등장하는 것만큼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달동네 이름에 걸맞게 모두를 주인공으로 다루었다고 하니 오히려 시대를 엄청 앞서간 느낌이다.


오늘날 특정한 한 사람이 주인공인 장면은 영화속에서나 볼 수 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허리띠를 풀어야만 다독거리며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세련된 사람이 나머지 촌스런 사람들을 굽어 살피는 신파극은 이제 수명이 다했다. 어떻게 한 사람 이나 특정한 집단이 세상 모든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사람들 모두 동등한 수평적인 시대로 막 진입하고 있다. 그리고 선민의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서서히 그 존재의 취약함을 드러내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아니 그들 끼리만 소통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달동네라는 드라마는 드라마틱하게 거기 우뚝 서있다. 드라마 주제곡은 지금도 그 선율이 기억날 정도다. 옅게 번지는 노랫말과 음은 지금 아주 강렬하게 다시 다가온다. 아무래도 그 이유는, TBC 뿐만 아니라 MBC도 유선을 별도로 신청해야 했던 태백에서의 삶이었고, 새로운 문화나 드라마에 대한 호기심이 높을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살고 계신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 곳은 내국인들과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서울 하늘의 불빛들이 화려하게 보인다. 아마도 예전에는 컴컴하고 서울 시내는 밝았을 것 같은데. 이 골목길에 들어서 있는 가게들은 각자 독특한 아이템과 디자인으로 멋지게 골목을 장식하고 있다. 그래서 많이 놀랐다. 허물어져가는 집을 리모델링해서 살고 계신 어르신의 멋진 집도 이 골목을 환하게 밝히는데 한몫을 하고 있었다.


생선 모둠회는 신선했다. 부드러운 질감으로 유추해보면 바로 회를 뜬 것이 아니라 조금 숙성시켜놓은 것 같다. 미리 주문하면 그 시간에 맞춰 준비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순과 고추냉이는 회의 맛을 돋보이게 하는 음식이지만 나는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음악 장르라고 생각한다.


 무순의 약간 매운맛은 서서히 옅어져서 마침내는 사라져 버리는 그런 매력적인 맛이다. 고추냉이는 산골짜기 언덕에서 야생으로 자라거나 경작한 것을 이용한다고 한다. 뿌리와 줄기, 색소를 넣지 않은 고추냉이는 은근한 매운맛이 무순을 닮았다. 가끔은 눈물이 날 정도로 매운맛의 고추냉이도 맛보았지만, 이 가게의 고추냉이는 연한 매운맛이라 은근히 생선회를 부추긴다.


 보리새우튀김은 보통의 새우튀김과 달리 새우깡처럼 자꾸만 손이 간다. 고소하고 감질맛이 계속 연이어 미각을 자극한다. 문어 튀김은 부드러운 문어 살을 얇은 튀김옷이 안고 있다가 고소함과 쫀득함을 한꺼번에 맛보게 한다. 문어의 살은 질기지 않아서 좋다. 치즈 크로켓도 바깥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다. 맑고 시원한 가락국수 국물과 쫀득한 면발에 바삭한 새우튀김은 아주 간단한 식사메뉴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 음식들을 먹으며 땀 흘려 여기까지 걸어 올라온 보람을 느낀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운 겨울바람과 함께 먹는 명태조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